무인도에서 탈출해야 하는 목적이 같았던 여섯 명의 군인들은 배를 수리할 수 있는 단 한명, 순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상의 신, 여신님을 만들어낸다. 서로 미친 척 보이지 않는 여신님을 상상하며 축제 분위기에 동화된다. 그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규칙들이 만들어졌고 보람찬 일상을 보내게 된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했던 그들도 살짝 미쳐 행복해진 셈이다.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을 곳에서 무엇에 희망을 걸고 살았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이야기. 무려 100일이라는 시간 동안 무인도에 갇혀 있던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수리하면 탈출할 수 있는 배가 아닌 여신님이었다. 눈에 보이고, 잡히는 것보다 마음 깊숙한 곳의 위안이 되는 여신님의 존재는, 그 힘은 신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공연은 '어린이들만 어르고 달래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른이야말로 끊임없이 어르고 달래며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 힘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순호는 "있다고 치면 기운 난다"며 보이지 않는 여신님을 믿고, 또 믿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었다. 비단 일상적인 헤어짐일수도 있지만 전쟁 통에 헤어진 그들을 보며 6·25의 비극이 포개졌다. 잠시 함께할 순 있었지만 영원히 함께할 수 없었던 그들의 청춘, 그리고 관객들의 환상에 맡긴 남과 북의 화합에 대한 열린 결말. 전쟁 통에 피어난 우정, 불가능해 보여서 더 애틋했고, 지속될 수 없어 안타까웠던 그들…. "다시 만나지 말자"가 서로가 살아있다는 메시지가 되었던 시대. 7월 말까지 공연되는 <여신님>이 조금 더 묵직한 사명감을 갖고 공연에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년 우연히 관람하게 된 <여신님>은 아담한 소극장에서 풋풋한 출발을 했었는데, 초연 당시만 하더라도 큰 홍보가 없던 공연이라 큰 기대가 없었다. 지쳐있던 마음에 단비를 내려주는 것 같았고 자극적이지 않고 순박한 동화 그 자체였다. 그런데 <여신님>에게서 느껴졌던 싱그러움이 사라졌다. 더 큰 무대로 가기 위한 전초전을 치르기라도 하는 듯, 여신님은 좀 더 커진 무대, 다소 비싸진 티켓 값으로 자신감 가득 돌아왔다. 바라건데 처음 그 연출, 감성을 다시 찾아 처음 만났던 소극장 무대에서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두 시간의 공연 관람 후 처음 든 생각은 '굳이 이렇게 스케일을 키운 이유가 뭘까' 하는 의문이었다. 제작사의 욕심이라 하기엔 배우들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창작뮤지컬이 기세등등해지는 건 응원할 일이지만. <여신님>을 아끼는 한 관객으로서 왠지 모르게 드는 씁쓸함을 쉬이 떨쳐낼 수 없었다. 공연은 모든 관객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화려한 수상경력, 단번에 받은 스포트라이트가 <여신님이 보고계셔>를 아직도 축제 분위기에서 꺼내오지 못한 듯하다. 물론, 이번 재연을 통해 여신님을 처음 접한 관객은 초연과 비교를 할 수 없을 테니 만족감이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재연이 무엇인가. 초연을 완전히 뒤엎어 돌아오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초연의 장점은 살리되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그렇게 좀 더 완성도 있게 공연을 가득 채웠어야 했다.
초연 땐 배와 무인도가 아담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재연은 무대 규모가 커져 방대한 느낌이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 무대는 커졌는데 제 기능을 못했다. 무대 곳곳의 공백에 눈이 가 시선처리가 흩어졌다. 무대 위로 배가 올라오면서 환상의 장치 하나가 사라졌다. 눈앞에 크게 자리하지 않았던 배가 찾기 쉽게 보이니 무인도에 갇힌 그들의 절박함이 잘 와닿지 않았다고 할까? 무대가 커진 만큼 정적인 무대를 장면마다 이동할 순 없었을까. 감출 땐 감추고 다시 나타나야 할 때 보여주는. 공연은 새로 만난 무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했어야 했다. 극 전환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의 기능을 다른 무언가가 채워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무대 위가 무인도인지, 배 안인지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것 같다.
사실 2층에서 관람한 터라 배우들의 동선과 전체적인 무대를 느끼기엔 부족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시선 처리 덕분에 큰 소외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신님'을 상상하던 배우들의 시선은 줄곧 위를 향했는데, 괜스레 두근거렸다. 여섯 명의 멋진 청춘들의 '여신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러 번 나를 설레게 했으니 그대들의 단점은 이제 그만 이야기 하는 걸로!
■ 글쓴이 김소희는?
'씨즈온' 문화 전문기자다. 공연을 보고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끊임없이 자극받고 감동하며 환호한다. 재미있는 공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daye5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