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 '끝나지 않은' 비극을 들여다보다
1980년 광주, '끝나지 않은' 비극을 들여다보다
  • 윤빛나 기자
  • 승인 2014.05.2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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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한강 작가가 여섯 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독자들을 1980년 5월 광주로 데려간다.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요즈음이기에, 뻔하거나 진부한 소재로 느껴지지 않는다.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강의 새 소설 『소년이 온다』는 총 6장으로 구성됐는데, 각 장마다 화자와 화자가 지칭하는 인물이 달라진다. 이들의 목소리는 1980년에서 시작해 시간을 건너서 현재에 다다른다.

열다섯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를 계엄군이 쏜 총으로 잃고, 도청 상무관에서 희생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자처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이 어린 소년은 '시취를 뿜어내는 것으로 또다른 시위를 하는 것 같은'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무명천을 미리 적당한 크기로 잘라놓고, 옷핀에 갱지를 끼워 바로 숫자를 기입할 수 있게 준비했다. 신원 확인이 안 된 사람들의 간격을 수시로 더 좁히고, 관들의 간격도 더 좁혀서 새로 들어올 사람들의 자리를 만들었다. 유난히 죽은 사람들이 많았던 밤에는 간격을 만들 겨를도, 공간도 없어서 얼기설기 관들의 모서리를 맞대 모조리 붙여놇았다. 그 밤 빽빽히 강당을 메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문득 둘러보며, 마치 이곳에 집결하기로 약속한 군중 같다고 너는 생각했다. -본문 21페이지 중

소설은 그 이후 5년, 10년, 30년이 흐르는 동안 동호화 함께 도청에서 일했던 은숙 누나, 선주 누나, 진수 형 그리고 동호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 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누군 자살을 하고, 누군 정신병원에 간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2012년 겨울부터 3개월 동안 광주를 오가면서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인물들도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었고,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했다. 열흘간의 항쟁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트라우마에 집중하려고 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치욕스러운 고통이 되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모습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소설은 과거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또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 그리고 국가의 무자비함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따뜻했던 봄날의 오월을 지나 '그 여름을 건너가지 못한 동호, 이런 아침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동호'를 떠올리며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되새기고,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는지를 간절하게 묻는다. 우리는 안타까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입에 담고, 기록하고, 기억하면서 살 필요가 있다. 그것이 트라우마라 할지라도.

■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펴냄 | 216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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