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묻는다,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연극 '내 안에 침팬지가 산다'
끝없이 묻는다,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연극 '내 안에 침팬지가 산다'
  • 윤현중 객원문화기자
  • 승인 2014.05.2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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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현중 객원문화기자]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쉬운 대답은 인간은 동물보다 진화해 뛰어난 두뇌를 바탕으로 자신의 본능을 누를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고, 동물은 자신들의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본능을 누르고 사는 삶과 본능에 충실한 삶 중 어느 삶이 더 행복할까? 인간은 당연히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인간이 선택한 본능을 누르고 사는 삶이 더 행복한 삶일까? 이 모든 물음에 정답은 연극 <내 안에 침팬지가 산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극에는 두 명의 사내가 등장한다. 한명은 자본주의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행복=성공=돈 이라는 생각을 가진 ‘허영세’라는 사내이다. 다른 한명은 경쟁사회에서 적응해 살아남으려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인간들이 만든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가기를 포기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밀림으로 떠나는, 침팬지가 되어버린 게임중독 사내다.

돈밖에 모르던 허영세는 이 게임중독 사내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행복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자신의 생각도 변화하게 된다.

▲ 연극 <내 안에 침팬지가 산다> 공연 장면 [사진 제공=씨즈온]

경쟁이 아닌 공존 속에서 행복의 가치를 찾는 침팬지 사내

물질만능주의 현 사회에서 행복은 개인의 것이지 전체의 것이 아니다. 각자 자신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서 공존이 아닌 경쟁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복을 얻기 위한 경쟁은 자연스럽게 사회구성원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는 물질, 돈을 얻기 위한 경쟁으로 이어진다.

제약회사의 영업 부장이던 사내는 무한경쟁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패한 뒤 다시 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침팬지크래프트’ 라는 게임을 폐인처럼 끊임없이 하면서 동물원을 탈출해 밀림으로 떠나는 침팬지처럼 경쟁사회에서 탈출해 경쟁이 없는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로 떠나려고 한다. PC방의 게임 폐인 남자는 공존하는 사회로 떠나고 싶다는 자신의 의견을 허영세에게 말하면서 벤담의 공리주의 즉,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이야기한다. 경쟁이 없는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행복의 합이 최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PC방의 게임 폐인, 즉 침팬지 사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행복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경쟁하는 삶 속에서도 돈이 아닌 자신만의 행복을 서서히 찾아가는 ‘허영세’

허영세는 글로벌 위기로 주식에 크게 실패한 증권맨이다. 형수의 눈칫밥을 먹으며 형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로 하루 종일 주식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에게 남은돈은 3천만원. 그는 이 돈을 이용해 단타로 주식시장에서 간신히 생활비 정도를 벌고 있다. 그는 돈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라는 돈에 살고 돈에 죽는 돈을 위해 사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초라한 자신을 유일하게 위로해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여수의사로 인해 행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침팬지 사내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허영세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주식시장에서 극적으로 번 돈 3억원을 자신에게 눈치만 주던 형수의 형편이 어려워지자 선뜻 내 놓고, 더 이상 돈에 속박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전형적인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각자의 역할에 맞춰 살며 마음속 자신의 꿈을 감춘 채 돈에 얽혀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 말이다.

▲ 연극 <내 안에 침팬지가 산다> 공연 장면 [사진 제공=씨즈온]

이 두 사내를 통해 바라본 우리의 행복

허영세와 침팬지 사내의 행복론은 매우 다른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상 비슷하다. 침팬지 사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회로부터의 도피에서 오는 행복이 아니다. 그의 대사 “부디 저는 경쟁에서 낙오된 패자라고 기억하지 말아주세요, 저를 저만의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선 개척자로 기억해주세요”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누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오는 행복이다.

허영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극 후반부로 가면 처음에는 돈의 크기를 행복의 크기로 생각했던 허영세가 침팬지 사내의 영향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소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즉, 두 사내 모두 타인이 규정하는 행복의 잣대 속에서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규정하는 행복의 잣대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고 행복을 쟁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을 위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일까? 백 마디 말보단 한 번의 공연이 더 와 닿는다. 결정은 <내 안에 침팬지가 산다>를 본 뒤에 해도 결코 늦지 않는다. 대학로예술극장3관에서 공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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