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초반 하루키, 그가 추구하는 세계의 '원형'으로
삼십대 초반 하루키, 그가 추구하는 세계의 '원형'으로
  • 윤빛나 기자
  • 승인 2014.05.0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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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일곱 편을 한데 모은 『중국행 슬로보트』가 서점가에 걸렸다. 제목이 생소해 신작으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하루키의 삼십대 초반 실험성을 엿볼 수 있는 1980~1982년 발표작들을 엮은 책이다.

저자가 직접 내용을 전면 수정했고, 몇몇 단편은 대폭 손질을 했다. 각 단편을 쓰게 된 계기와 집필 당시의 상황, 개고 방향을 말하는 해설도 실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하루키는 "보수공사를 하니 나라는 인간, 즉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대략적 모습이 이 첫 단편집에 제시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스타일이며 모티브, 어법 같은 것들의 원형은 빠짐 없이 나와 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고 전면 수정 판본의 출간 소감을 밝혔다.

하루키는 불가사의한 세계와 그곳을 헤매는 존재의 고독을 예민한 감성으로 포착하곤 한다. 이번 단편에서도 역시 위태로운 존재들은 하루키를 만나 자아의 고독, 세계와의 거리감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하루키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세계의 '원형'이 날것 상태로 녹아 있다.

표제작 「중국행 슬로보트」에서 주인공은 "맨 처음 중국인을 만난 게 언제였을까"라는 고고학적 의문에서 출발해 자신이 그동안 만났던 중국인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 특히 즐거운 데이트 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중국인 여자아이 이야기가 인상 깊다. 온갖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그 여자아이는 어떤 수많은 상념을 껴안은 채 주인공을 기억 깊숙한 곳으로 흘려보냈을까.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에서는 마치 자신처럼 소설을 쓰는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나'는 문든 가난한 친척 아주머니에 대한 소설이 쓰고 싶다. 친척 중 가난한 아주머니라곤 한 명도 없으면서 말이다. 스스로도 납득을 하지 못하던 나는 문득 등 뒤에 가난한 아주머니가 달라붙어 있음을 깨닫는다.

하루키는 자신의 대부분의 단편소설이 제목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내용을 정하지 않은 채 제목부터 잡고, 첫 장면을 써 보는 것이다. 제재니, 주제니 하는 틀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글로 써 내려가는 사이에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그러니 독자 입장에서는 각 단편의 제목을 보고, 그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예측해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일 것 같다.

한편 문학동네는 이어 『반딧불이』, 『빵가게 재습격』, 『회전목마의 데드히트』도 저자의 개고 사항을 반영해 출간할 계획이다.

■ 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264쪽 | 1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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