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 속에서 자유와 소통을 체험하다, 연극 '관객모독'
파괴 속에서 자유와 소통을 체험하다, 연극 '관객모독'
  • 김누리 객원문화기자
  • 승인 2014.04.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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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누리 객원문화기자] 독일 유명 작가 페터 한트케의 1966년 발표작 <관객모독>이 5년 만에 국내 무대로 돌아왔다. 1978년 초연 이후, 꾸준히 새로운 시대상 반영과 실험적인 양식을 도입시키며 관객에게 연극 <관객모독>의 매력을 전달한 극단76이 기국서 연출을 중심으로 재공연을 확정했다. 이미 2004년 연극열전 시리즈로 높은 관객점유율을 보이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연극 <관객모독>이 전혀 다른 색깔을 자랑하는 두 팀에 의해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관록의 배우 기주봉, 정재진 등이 참여한 이번 공연은 더욱 탄탄한 배우들의 내공을 볼 수 있다.

▲ 연극 <관객모독> 포스터 [사진 제공=씨즈온]

파괴의 미학, 관념을 벗어던지다

연극 <관객모독>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기존 연극의 형식, 무대와 객석의 권력관계, 또는 배우와 관객 사이의 수동적 관계, 관객 개인의 고정관념까지 연극에 관련한 모든 요소를 철저히 부정한다. 어떠한 특정 사물도, 배경도 없는 무대에는 덩그러니 네 명의 배우와 네 개의 의자만이 자리한다. 네 명의 배우는 처음부터 당당히 객석을 향해 선전포고한다. “너희들이 기대하던 그 어떤 사건도 보지 못하고, 분위기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공연장에 오는 길부터 극에 대한 모종의 기대를 품고 왔을 관객들을 향해 조소한다.

이 연극은 오로지 네 배우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로만 90분을 채우는 언어극 작품이다. 기존 유명한 고전 작품과 같이 전형적인 사건 인과관계 설명에 치중하고 교훈 메시지가 섞인 작품을 지양한다. 배우는 직설과 독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또한 띄어쓰기와 친숙한 소재를 이용한 언어유희로 유쾌한 웃음을 전달한다. 관객 이해 수준을 운운하며 귀찮다는 듯 무대를 중간에 퇴장하는 배우의 행동이나 ‘무대감독’의 등장을 통한 배우들과의 대립 장면은 오히려 관객에게 참신함을 전달한다. 특정 순서는 없지만 일정한 주제 안에서 쏟아지는 말에 관객들은 다른 의미로 높은 몰입도로 극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연극은 관객이 그간 고정관념 속에 갇혀 가지지 못했던 연극 그 자체의 정의에 대해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도록 했다. 그리고 새로운 류의 연극에 대한 적극적인 호기심을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결국 관객이 무대는 더 이상 막연한 공포의 공간도, 신성한 공간도 아닌 보통 일상적인 공간으로써 새로 인식 가능하게 한다.

관객을 향한 ‘자유‘의 선물, 그리고 진정한 소통

극은 제목만큼이나 관객을 더없이 자극시킨다. 단순 형식의 파괴를 넘어서서 제목 그대로 관객을 모욕하며 기존의 배우와 관객 간의 권력관계를 속절없이 무너뜨린다. “넌 왜 그 어둠속에서 침묵해? 누가 침묵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솔직하고 거침없는 배우의 대사는 관객이 그간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던 ‘관객으로서의 태도’ 그 자체에도 의구심을 갖게 했다. 실제로 관객들은 스스로 무대와 객석에 위계질서를 만들며, 경직되고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예절’이며, 옳은 행동이라 판단했다. 오히려 연극은 이와 같은 생각을 품던 관객에게 연극은 양자 간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예술임을 묵직하고 날카롭게 전달한다. 극 상황 속에서 종종 관객들을 자극시키며 그들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고 반응하도록 했다. <관객모독>은 네 명의 배우를 빌어 관객에게 일종의 ‘자유’를 선물한 것이다. 관념에서 철저히 벗어나서 자신만의 생각을 보다 자유롭게 객석 바깥으로 토해내도록 했다. 또한 능동적으로 배우 및 연극 매체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했다.

배우들은 관객을 향해 셀 수도 없이 많고 또 강한 욕을 쏟아낸다. 오히려 반대로 관객도 배우들을 향해 온갖 욕을 쏟아낸다. 하지만 이들은 상처를 받지도 않고 웃기까지 한다. 서로에 대한 어떠한 개인적 평가나 눈치 없이 소통하는 장이 형성된 것이다. 이 연극은 파괴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소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이윽고 관객들 사이로 시원하게 뿌려지는 물세례는 말 그대로 ‘세례’의 행위와 같다. 정화의 과정과 같이 경계와 질서, 모든 규칙들을 씻긴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면서 개운한 마음을 가진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연극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지양하던 메시지 자체를 관객에게 새롭고도 강렬하게 전달했다.

연극 <관객모독>은 6월 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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