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김누리 기자의 '연극으로 읽는 세상' _ <3> 공생의 좋은 예
[문화 칼럼] 김누리 기자의 '연극으로 읽는 세상' _ <3> 공생의 좋은 예
  • 김누리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4.1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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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누리 칼럼니스트
봄이다. 벚꽃은 비바람에 졌지만, 연극계는 여전히 봄을 만끽하고 있다. 연극계가 이처럼 화려하고 풍성하던 적이 있던가. 그간 연극계는 일종의 사막화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현대 사회는 지극히 영상문화 시대를 지향한다. 연일 포털사이트 뉴스 연예 부문을 차지하는 드라마, 영화 기사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사회와 대중은 그 무엇보다 영상매체가 가진 높은 접근성을 사랑하고 있다.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신인배우들이 연극무대보다 인지도를 꽤 보장하는 영상매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분명 당연한 결과이다.

또 극단마다 내려오는 전통적인 위계질서와 고된 육체, 정신적 노동에 비해 적은 수입도 연극무대에 대한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매해 심각성을 더해가는 연극계의 고된 살림사정에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정부의 지원정책과 인건비 문제, 공연장 운영의 경제적 난관, 지속적인 관객 개발 부족 등 그 원인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역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스타 배우가 없다는 것 또한 연극계를 더욱 침체시키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연극계가 올해 커다란 변화를 하고 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활약하던 배우들이 하나 둘 연극계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2월에 공연을 마친 연극 <웃음의 대학>에는 드라마 <신의 퀴즈>로 유명한 배우 류덕환과 현재 드라마 <기황후>에서 활약 중인 배우 조재윤이 출연하며 호평을 받았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에쿠우스>에는 브라운관에서도 익숙한 얼굴인 중년배우 안석환이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로 출연하며 강렬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또한 최근 시작한 연극 <메피스토>에는 배우 정동환이 '파우스트' 역할로 분하여 내공 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연기파 배우 조재현, 박철민, 정은표, 배종옥이 한 데 모여 연기 호흡을 맞추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관객에게도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이 연일 연극무대를 뜨겁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굵직한 배우들의 귀환에 따라 어깨를 들썩이는 연극계를 보고 있자면 상당히 기분이 좋은 동시에 흥미가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누군가는 이런 현상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 평소에도 영상매체와 연극을 오가며 활발한 연기활동을 펼치던 배우들이 있다  배우 조승우는 매해 뮤지컬과 영화, 드라마를 번갈아 하며 넓은 활동 영역을 자랑하고 있다. 영화 <타짜>, 드라마 <마의> 등으로 유명한 그는 실제 뮤지컬무대에서도 내공 깊은 연기와 강력한 티켓 파워로 흥행 대표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한편, 배우 이희준의 경우와 같이 직접 극단에 소속되어 개인적인 드라마, 영화 출연과는 별개로 정기적으로 극단의 공연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연극계에 불고 있는 봄바람은 최근 한 번도 겪지 못한 그런 종류이다. 달콤하다 못해 짜릿하다.

무대를 떠났던 배우들은 왜 돌아왔을까? 필자는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배우 스스로의 우선순위가 변화한 것이다. 대개 기존 배우들이 연극무대를 떠나는 이유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TV, 영화를 통해 상당한 부와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이후의 배우들에게 있어 우선순위는 변화한다. 당장의 생활 영위보다 연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얼마나 좋은 배우인가? 내 연기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나'를 정의하는 제2의 정체성인 '배우'로서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며, 연기에 대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깨닫는 것이다. 기존 영상매체에서의 연기는 연극에 비하여 극히 제한적이다. 아무리 화려한 액션과 감성적인 멜로도 카메라 시야 안에서 풀어내야 한다. 한편 배우마다 각각 이미지에 따라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활약할 수 있는 역할의 범위 또한 상당히 좁게 설정되어 있다. 이 때, 연극무대는 그 무엇보다 배우가 스스로에게 시험을 던져줄 수 있을 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연극만의 제한되지 않는 동선과 구애받지 않는 역할들이 배우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다. 최근 배우 김성령은 연극 <미스 프랑스> 출연을 결정하며 1인 3역 연기를 시도하게 되었다. 작년 인기리에 끝난 연극 <클로저> 역시 이윤지, 신성록 등이 출연하여 신선하고도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 대중과의 직접적 소통에 대한 배우의 갈망이다. 영상매체는 분명 배우와 대중을 가장 가까이 잇는 영역이다. 그러나 실제 TV와 영화는 배우가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한 것을 촬영한 영상을 일방적으로 대중에게 보급하는 형태를 띤다. 그에 비해 연극은 배우 스스로 자기 연기에 대하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보다 객관적인 대중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자리이다.

무대와 객석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한 공간에서 대중과 함께 마주하며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 배우에게 있어 이와 같은 연극 출연은 대중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도 작용한다. 애정이든 비난이든 현장에서 곧장 대중의 반응을 몸소 느끼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배우 스스로 활동 계획과 방향 설정을 하는 데 있어서 역시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봄'을 붙잡아 둘 순 없다. 배우들이 자의든 타의든 무대를 다시 떠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극계는 또 다시 대중들의 시선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고, 배우들은 개인의 연기를 돌아보고 발전시키는 데 막막함을 느낄 것이다. 결국 이들은 '공생'이 필요한 관계다. 그리고 실제 그를 위한 도전도 속속 시작되고 있다. 배우들 스스로 연극계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 발전시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연극, 드라마, 영화 각 분야에서 활약한 배우 조재현은 연극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며 그간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다양한 창작극과 번역극을 소개하는 <연극열전> 시리즈의 프로그래머로도 활동한 그는 최근 수현재컴퍼니를 설립하였다. 그 뿐 아니라 수현재씨어터라는 극장을 세워 보다 많은 이들이 연극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직접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준비하며 무대를 떠났던 동료배우들을 부르며 무대에 대한 향수와 열정을 전파하기도 했다.

또한 배우 김수로는 '김수로프로젝트'라는 특유의 브랜드를 연극계에 정착시켰다. 연극 <극적인 하룻밤>, 뮤지컬 <아가사>, 연극 <밑바닥에서> 등 창작, 번역을 불문하고 대중이 선호할 연극을 직접 제작하며 열정을 보였다. 직접 제작한 공연에 주연배우로도 참여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였다.

뭐든지 개별적으로 완벽한 것은 없다. 이미 연극계와 배우는 서로에 대해 지극히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서로가 공생할 방법을 함께 찾아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는 백 여 개가 넘는 공연들이 매일 매달 올라온다. 연극계는 배우가 자유로이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배우는 다른 매체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과 인프라로 연극계 발전에 엔진을 달아주는 것이다.

그저 서로를 소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함께 즐거운 교류와 가치창출의 장을 형성하는 것은 어떨까? 양 측이 함께한다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봄'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오래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 글쓴이 김누리는?
'씨즈온' 문화 전문기자다. 연극을 집중 취재하고 있다. 따뜻한 감성의 큰 흐름 속에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예리함으로 연극계를 조명하고 있다. kimnuri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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