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이유정 기자의 '따뜻한 영화 비평' _ <3>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 - 막장도 고품격일 수 있을까?
[문화 칼럼] 이유정 기자의 '따뜻한 영화 비평' _ <3>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 - 막장도 고품격일 수 있을까?
  • 이유정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4.1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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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정 칼럼니스트
'왜 너는 나를 만나서'로 시작하는 노래, 아마 익숙할 것이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OST다. 이 드라마는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방영되었다. 종영 후에도 '민소희' 열풍은 상당기간 사라지지 않았다. 빠른 극 전개와 흥미로운 스토리로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많은 패러디 물을 양산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비현실적 설정 탓에 질타를 받기도 했다. 2009년 1월 커뮤니티 포털사이트에서 진행된 막장드라마 투표 결과 <아내의 유혹>이 3위를 기록했다. (1위 <너는 내 운명>, 2위 <꽃보다 남자>) <아내의 유혹>은 막장 드라마 논란의 시초가 되었던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3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막장 드라마의 예시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을 '막장'이라고 하는 것일까? 사전에 따르면 '막장'은 본래 터널공사에서 굴착을 진행하고 있는 최선단의 장소를 의미한다. 그런데 점차 뜻이 변하여, 현재는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 지나치게 많이 다뤄진 드라마를 일컫는데 사용된다. 막장 드라마에는 복수극, 출생의 비밀, 불치병, 근친 등이 공식처럼 등장한다. <아내의 유혹>에서는 복수극, 출생의 비밀, 불치병의 소재가 이용되었다. 또한 최근 큰 화젯거리였던 <백년의 유산>에도 다수의 막장 요소가 활용되었다. 대중이 보다 자극적인 스토리를 원하면서 막장 드라마는 점점 강세다. 비난하면서도 놓치지 않고 챙겨보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은 막장의 공식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쓸어담은 영화다. 아버지는 자살하고 어머니는 구강암이라는 불치병에 걸렸다. 첫째 딸은 남편과 이혼 위기에 처해있으며 그들의 딸은 마약 중독자다. 둘째 딸은 사촌 오빠와 사랑에 빠졌다. 셋째 딸은 호색한과 약혼했다. 극 후반부에서는 출생의 비밀까지 드러난다. 막장 드라마의 종결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영화는 우리를 심히 당황스럽게 한다. 너무 막장이라서가 아니다. 막장이라고 비난할 수 없어서다. <어거스트>는 포스터와 영화소개에 '고품격 막장 드라마'라는 문구를 박아놓았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막장 영화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영화는 트레이시 레츠의 희곡 <어거스트 : 오세이지 카운티>를 원작으로 한다. 희곡의 영향 탓인지 인물들은 눈에 띄는 이동 없이 대화 위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인물의 대사는 놀랄만큼 직설적이다. 어머니(메릴 스트립)는 이혼 위기에 처한 딸에게 "젊은 여자는 못 이겨. 늙으면 추해질 뿐이야"라고 독설을 날린다. 딸들은 "아빠가 자살했지"라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뱉는다. 장례식 날에 "아버지 재산은 다 내 거다. 알겠니?"라는 어머니의 대사는 충격 그 자체다. 영화에서 배려하는 가족의 모습은 없다. 아버지의 자살 원인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고 현재 상황을 비난하기 급급하다. 다툼의 과정에서 미안함을 느끼지만 결국에는 다시 또 뿔뿔이 흩어진다. 마지막까지 늙은 어머니 곁에 머무는 사람은 그녀가 무시했던 인디언 가정부 뿐이다. 전형적인 막장 영화를 만든 의도는 이것이다. 영화보다 더 막장일지 모르는 '가족의 초상'을 고발하고 있다.

'고품격 막장 드라마', 이 영화가 우리에게 내린 숙제다. 막장 드라마도 고품격일 수 있을까?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이 상업성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막장 드라마와 차이가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가벼워 보이는 막장 속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유명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발해 품격 있는 영화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 칭송할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것저것 끌어오다보니 몇몇은 생뚱맞은 설정이다. 어머니에 이어 둘째 딸까지 동시에 암이라는 설정, 사촌 오빠가 사실은 이모와 아버지 사이의 불륜에 의해 생긴 자식이라는 것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큰 사건 없이 대화만으로 전개되다 끝나는 구성도 국내 정서와는 맞지 않았다. 자칫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마냥 상업적이지 않은 막장 영화, 분명 저품격은 아니다. 그렇지만 고품격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 글쓴이 이유정은?
'씨즈온' 문화 전문기자다. 스크린의 마력에 푹 빠진 영화 마니아다. 대본에서 삶의 애환을 찾고, 액션에서 인생의 희열을 캐내고 있다. 그녀의 유려한 필체는 '보는 영화'를 '읽는 영화'로도 승화시킨다. yjlee12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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