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로 퐁티의 ‘살’
메를로 퐁티의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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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4.1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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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생 와이드 철학논술

[독서신문] Ⅰ. 개념 생각해보기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

 

메를로-퐁티는 전후 프랑스 지성계에 큰 획을 긋는 철학자로 라로셸 부근의 로슈프르에서 출생하였다. 프랑스 인문학 천재들을 배출해온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고등사범학교 재학 중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등을 알게 되어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이론가가 되었다. 후에 마르크스주의 정치 노선을 가던 사르트르와 사상적으로 관계를 완전히 끊게 된다. 1945년 리옹, 1949년 소르본대학을 거쳐 베르그송, 라벨의 뒤를 이어 1952년에 콜레주 드 철학교수가 되었다.
메를로-퐁티의 첫 번째 저서인 『행동에 대한 구조』는 1942년 프랑스대학출판사에 의해 출판되며, 대표적 저서인 『지각의 現象學』은 1945년 파리에서 출판된다. 이 책은 후기 후설의 현실세계와 관계된 현상학에 영향을 받아 자기 나름의 현상학을 계발하여, 신체·지각을 중심으로 주체와 객체, 인간과 세계, 나와 남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논하였고, 사르트르와 같이 자기의식을 가진 인간의 존재, 즉 자기에 대해서 있는 존재인 대자(對自)·지각하는 대상인 탁자, 의자, 나무, 책들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즉 자신을 상대화할 수 없는 물질적인 것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즉자(卽自)를 분명히 구별하지 않고 양자를 나누려 하여도 나눌 수 없다는 생각아래 이 둘의 통일 속에서 문제·의미·단서를 발견하기 위한 실존주의적 양의성(兩義性)을 내세웠다.
1945년 이후, 사르트르와 잡지 『현대』를 편집하는 동안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동의하면서 공산주의자에게 사르트르보다 더 호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사회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중에 발생하는 폭력을 강하게 비난하지만 사실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자본 그 자체가 일상적인 폭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휴머니즘과 테러』(1947)를 쓰게 된다. 이렇게 마르크스주의에 희망을 걸었으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충격을 받게 된다. 이상사회 건설이라고 믿었던 마르크스주의가 공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어 비공산주의 좌익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또한 한층 더 마르크스주의 정치 태도를 가지게 된 사르트르의 철학을 울트라볼셰비즘이라고 냉정하게 결정, 새롭게 정리된 정치사상서인 『변증법에 대한 모험』(1955)을 통해 사르트르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이에 대해 보부아르는 격렬하게 메를로-퐁티를 비판 하였으나 사르트르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1961년 메를로-퐁티는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53세로 세상을 뜨게 된다. 메를로-퐁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르트르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살아 있는 메를로-퐁티」글을 발표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했지만 연구 비망록과 초고들을 모아 유고집으로 발간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세계의 살’(la chair)이라는 개념을 들어 근원이라고 여겨졌던 인간 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존재론을 펼쳐 보인다. 메를로-퐁티는 ‘살’은 신체의 모양을 나타내지만 모든 존재자에게 모양을 부여하는 ‘존재의 원소’라고 말한다. 즉, ‘살’은 어떤 사물의 본체(本體)인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살은 존재의 원소’로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 그 자신이며, 지금 여기에 있는 신체의 감각능력이 존재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1. 『지각의 현상학』

퐁티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한 『지각의 현상학』(1945년)은 정치·미술·언어 등 다방면에 응용된다.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은 이전의 정신과 이성 중심 사유에서 몸과 욕망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몸에 대한 담론이 등장한 것이다.
남성은 정신/여성은 몸이라는 사유(페미니즘)에 의해 몸을 재해석하고,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모든 동식물에 대한 생태주의는 자연스럽게 몸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퐁티의 몸 철학은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다.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은 몸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책이다.
지각이 중요한 것은 세계내에서 대상을 찾아내고 타인과 자신을 인식하는 인간에 대한 존재방식이 지각내에 압축되어 들어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반성은 과학이 해명하지 못하는 지각적 의식의 원초적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재발견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심리학의 경험주의와 주지주의에 대한 모든 개념을 비판하여 본래 세계(현상적 장場)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퐁티의 생각이다. 이는 신체는 세계에 존재하면서 습관을 하나씩 쌓아 층(層)을 만들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면 온전한 몸에서 사고나 질병에 의해 손이나 발을 잘라낸 후 잘려나간 부분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습관적 신체는 물리적 실제도 아니고, 또 단순한 관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 몸에서 해방과 예속·진리와 오류를 나눌 수 없는 이유이다. 퐁티의 지각에 대한 해석은 몸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이어진다.


2. 『지각의 현상학』 요약

나는 나의 신체를 세계의 대상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한다. 나는 인식 수단인 나의 시선에 대한 인식을 억압하고 나의 눈을 물질 조각으로 취급한다. 이때부터 눈은 내가 외부 대상을 위치 짓고자 하는 객관적 공간에 자리 잡고, 나는 대상이 망막에 투영됨으로 지각적 조망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나는 나의 고유한 지각적 역사를 나와 객관적 세계와의 관계의 결과로 취급한다. … 그래서 온전한 의미에서 단일 대상의 정립은 모든 경험을 단일한 행위 안에서 끌어 모을 것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단일 대상의 정립은 지각적 경험과 지평의 종합을 초월한다―마치, 관계들이 상호 규정적인, 완결된 명시적 전체성, 즉 우주의 개념이 상호 함축적인 관계들의 열린, 끝없는 다양성, 즉 세계의 개념을 초월하듯이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나의 경험에서 분리시키고, 이념으로 넘어간다. … 이념으로서 신체, 이념으로서 세계, 공간의 이념, 시간의 이념. … 의식의 모든 삶은 대상을 정립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 대상의 정체가 확립되는 데서 의식이 자기 자신을 되찾고 자기 자신에 전념하는 한에서만 의식이 의식, 즉 자기에 대한 앎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일 대상의 절대적 정립은 의식의 죽음이다.


Ⅱ. 개념 확대하기

1. 정신과 육체

메를로-퐁티는 세계를 표상된 세계, 이념적인 세계로 변형시킨 데카르트의 코기토적 반성을 중요한 철학적인 문제로 파악한다. 데카르트부터 시작된 주체와 객체, 정신과 육체에 대한 이원론은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주체와 객체의 문제에서 관념론은 객체 인식의 근본이 되는 사실로 순수주체의 존재를 주장하였다. 사유하는 자아인 코기토의 관념론은 우리를 세계로부터 배척하여 상호주관성을 부정하였으며 이 부정은 시간성을 파괴하였다.
이와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실재론은 주체 없는 순수객체를 주장하였다. 주체 없이 세계 인식에 대한 근본이 되는 사실을 객체 자체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퐁티는 생생한 세계를 화석화시키는 이성 중심 신화에서 벗어나 사물, 타인, 관념과 우리와의 관계, 그리고 우리와 우리 자신간의 관계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에 전념하여 우리의 생생한 경험과 양립할 수 있는 코기토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론에서 주체와 객체의 대립은 형이상학적으로 정신과 물질(육체)의 대립을 발생시킨다. 만약 객체와 다르게 주체의 힘이 옳고 확실하다고 여긴다면, 물질세계의 인과관계를 벗어나게 될 수밖에 없고 그런 인과관계의 바탕이 되는 정신영역을 인정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세계에 대한 근본이 되는 사실이 객체자체에 있다고 한다면, 주체는 객체로, 정신은 육체인 외적사물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이다.
퐁티는 인식론 측면에서 실재론과 관념론을, 형이상학 측면에서는 유물론과 정신실재론에 대한 이원론 대립 문제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의 초기 저작부터 유고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의식은 지속적으로 탐구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목적은 의식과 자연의 관계들을 이해하는 것이다”는 말로 시작되는 첫 저서 『행동에 대한 구조』 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의 주요 저서인 『지각의 현상학』에서는 경험론과 지성론의 두 부분을 서로 상응하는 관계로 놓고 끝까지 비판을 전개해 나간다.
그가 남긴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지각하는 것과 지각되는 것의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관계를 뒷문장의 어순을 앞문장의 어순과 반대로 배열하는 방식인 교차대구법(交叉對句法 chiasmus)인 A속에 B가 있고 B속에 다시 A가 있다는 용어로 해석하려고 했다. 『지각의 현상학』에서의 현상학에 대한 정의이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의 존재에 대한 정의이든, 퐁티가 가장 크게 마음을 두고 생각한 것은 이원론에 대한 사유, 이분법에 대한 사유방식을 어떻게 극복 하는가에 있었다.
퐁티는 지각 문제에 있어 실재론, 경험론, 관념론, 지성론도 모두 틀린 이론이라고 비판한다. 지각경험의 근본이 되는 사실로 순수한 주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각된 대상의 경험에 대한 근본이 되는 사실이 전체에 걸쳐 대상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정신-신체에 관한 이원론의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관계에 대해서도 퐁티는 부분 밖의 부분으로 대상적인 신체도, 그런 물질 공간성을 완전히 빼버린 순수정신도 인정하지 않는다. 퐁티는 이원론을 두고 대립하는 두 이론 모두 객관적 사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지각도 신체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객관적 대상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2. 몸의 존재 방식

퐁티는 몸과 정신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의식은 몸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몸은 단순한 정신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정신활동 또한 몸속에 스며있으며 몸의 활동에 의해 드러난다.
이러한 몸에 대해 퐁티는 내 몸은 모든 다른 감각적 대상들에 ‘감각력을 지닌’ 대상이라고 규정한다. 나의 몸은 다른 모든 대상들처럼 감각적 성질의 복합체일 뿐만 아니라, 색깔과 소리에 반응하는 감각 주체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는 감각을 기다리며 귀를 빌려주고 바라본다. 그때 갑자기 감각적인 것은 나의 귀 혹은 나의 시선을 취한다”고 주장한다. 즉 나의 몸 일부 혹은 전체가 대상을 취하기도 하지만 대상이 나의 감각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몸의 감각작용은 일종의 “교류”이며 ‘지향적’이다. 감각이 지향적이라 말하는 것은 감각적인 것에서 어떤 실존의 리듬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신이 발동하기 이전에 감각은 밖에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애매하게 감지하고 몸이 일정한 방식으로 정립작용을 한다.
퐁티는 몸 감각의 존재 방식을 감각되는 것과의 ‘교류’, ‘지향적 관계’로 설명하지만, 때로는 “교접”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가령 나의 시선은 색과 한 쌍을 이루고 나의 손은 단단함과 부드러움과 한 쌍을 이루는, 즉 감각 주체와 감각적인 것 사이에 일종의 짝짓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하나는 능동적 역할을, 다른 하나는 수동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며, 몸과 대상과의 애매한 존재 방식을 의미한다. 몸이 감각 주체로 감각적인 것에 반응하고 진동하는 것은 바로 몸이 감각과 더불어 살아감을 표현하는 원초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퐁티의 입장은 먼저 감각적 다양성이 주어지고 정신에 의해 구성된다는 지성주의에 대립되고 있다. 지성주의는 내가 감각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감각적인 것이 나의 시선과 귀를 취한다는 방식을 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지성주의는 감각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Ⅲ. 개념 정리하기

1. 이중적인 몸

퐁티는 데카르트 코기토의 반성을 통해 주체는 ‘~으로 향하고 있는’ 지향성을 갖는 존재이며, 지향성 주체는 순수의식이 아닌 몸임을 주장하였다. “살아 있는 주체에게 그 자신의 몸은 당연히 모든 외재적 대상들과 다르다”는 것이 퐁티의 생각이다.
내 몸은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모든 대상들은 눈에 보여 지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것, 내 앞에 놓여있는 것들로 사물이다. 몸은 ‘나’라는 몸을 가지고 있는 ‘나’의 것으로 첫 바탕이면서 동시에 ‘나’라는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특별한 것으로 주체이다.
하나의 대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은(시각에서 사라질 때) 대상이 그곳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대상이 눈앞에 있을 때 그 대상은 있는 것이다. 몸은 ‘몸 자신(le corps propre)’이며, ‘나’라는 고유한 몸의 영속성은 대상의 영속성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몸은 나의 시각에서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몸은 근본적으로 대상과 다른 성격을 띤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몸으로부터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관찰할 수 없을 경우에도 몸은 언제나 나의 것으로 삶이 지속되는 한 나에게 계속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2. 몸과 공간

몸에 의한 공간은 외부에 있는 공간과 구별될 수 있으며 부분들을 펼치는 대신 부분들을 감싸고 있다. 왜냐하면 몸에 의한 공간은 무대 조명에 필요한 객석의 어둠이고 잠의 바탕이거나 또는 동작과 그 목적이 풀려 나오게 만드는 뚜렷하지 않고 어렴풋한 힘의 간직이며 정확한 존재들과 형태들과 활동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지점들이 자기 앞에 나타나게 해주는 비존재 구역이기 때문이다.(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Gallimard. Paris;1945)

우리 몸이 거주하고 있는 이 세계는 몸이 직접 경험하는 공간이다. 즉, 몸은 세계를 향해 자신의 과제를 몸으로 해결해 나가는 실존적 주체이다.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객관적인 몸이 아니라 관찰할 수 있는 모양과 상태를 가지고 있는 현상적 몸이기 때문이다.
공간은 몸에 의한 어떤 세계의 갖게 됨이고 세계에 대한 몸의 어떤 이해함이다. 지각되는 사물들은 ‘여기’에 있는 몸을 중심으로 좌우, 상하, 가까이 혹은 멀리 있다. 마찬가지로 몸은 다른 대상들에 의해 자신의 위치가 비추어져 결정된다.
그러나 몸에 알맞게 맞추어진 ‘여기’라는 단어는 타자의 위치나 외부 좌표에 의해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좌표에 의한 머무름, 하나의 대상 내에서 활동하는 몸의 고정된 머무름, 처리하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를 떠맡은 몸의 상태를 말한다.
이는 사막에서 길 잃은 원주민이 곧바로 자신이 있는 위치를 파악하여 확인하고 마을과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몸의 공간성’은 추상적인 좌표에 의한 형상과 점들로 설명될 수 없다. 몸의 공간성은 “외재적 대상의 공간성 또는 ‘공간감’의 공간성과 같이 위치의 공간성이 아니라 상황의 공간성”이기 때문이다.


3. 깊이를 통한 몸과 세계

공간과 함께 중요한 논의는 공간과 세계에 대한 최초의 경험을 본래 상태로 되찾아 주게 하는 ‘깊이(profondeur)’에 대한 지각이다. 퐁티에 의하면 깊이는 대상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특유한 것이 아니라 우리 지각에 속하는 지각경험이자 몸으로 체험된 경험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실존적 차원’이라고 말한다.
깊이는 사물들이 서로를 감싸고, 거듭 겹쳐지거나 포개지게 하고, 서로 영향을 주어 효과가 없어지게 하고, 떠들썩하던 일을 가라앉혀 그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두께, 진하고 빽빽한 농밀과 희미하여 분명하지 않는 애매성을 의미한다.

글을 쓰기 위해 서재에 들어설 때 책상, 의자, 노트북, 디지털 앨범들은 하나씩 고유한 의미를 갖는다. 공간에 배치된 사물들의 상황은 고유한 것이다. 디지털앨범은 정지된 기억을 보여주면서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보게 만든다.
노트북은 부팅되어 나와 마주하고 있다. 서재에 놓여있는 책과 대상들은 나를 마주하면서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손가락과 자판이 움직여지면 모니터에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다 어느 화창한 봄날 겨우내 닫혀있던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면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온다. 강렬한 햇살은 평범한 대상들을 변형시킨다. 햇살에 의해 사물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익숙해진 모습들이 다른 모습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창밖으로 향한 시선은 갓 피어오른 목련꽃을 향하고, 서재는 어둡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서재에 자리 잡고 있는 대상들은 배경으로 물러나 있다.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을 의식하는 지각은 세계와 최초로 만난다. 지각으로 만나는 대상에 대한 의미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구조를 만들면서 내용이나 뜻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며, 자기 의사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의미들이 바뀌고 깨지고 재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지각에 나타난다.
깊이는 어떤 것을 배경으로 숨기도록 허용하여 보이거나 들리는 것을 다른 시각이나 다른 소리와 공존하도록 만든다. 또한 깊이는 ‘드러나지 않고 속에 잠겨 있거나 숨어 있음’, ‘지평’이 녹아 하나로 합침을 넘어서 두드러짐, 드러나지 않고 속에 잠겨 있거나 숨어 있음, 마음을 가다듬어 정신을 바짝 차림을 유지하는 불-일치가 존재하는 조건으로 나타난다.


Ⅳ. 개념 찾아보기

▲ 황인술 논설위원 /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반성의 반성을 통해 밝혀 낸 지각의 주체로 몸은 순수한 질료의 대상도 아니고 의식에 의한 표상도 아니다. 퐁티의 몸 현상학은 완결된 구조가 아니라 열린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애매성으로 설명되는 열린 구조는 몸의 이중적인 성격에서 시작된다. 때문에 몸은 지각의 대상인 동시에 지각의 주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몸의 이중적 성격과 몸의 이중감각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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