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에 우리의 미래를 맡기려면?
과학기술에 우리의 미래를 맡기려면?
  • 독서신문
  • 승인 2014.04.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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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사회 속의 과학기술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2000년 6월 26일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영국 블레어 수상의 공동 기자회견이 백악관에서 열렸다. 인간지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통해서 인간유전체 지도의 초안(draft)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이 연구 성과는 미국 대통령과 영국 수상이 공동으로 발표할 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안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인간지놈프로젝트의 성공을 금세기 최고의 과학적 업적으로 평가하면서, ‘유전의 청사진’이 밝혀지게 됨으로써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에 있어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장밋빛 희망과 함께 유전 정보가 결코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하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되다는 점을 천명했다.

과학 분야 최고의 권위를 가진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의하면, 인류 역사에서 지난 2000년간은 종교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인간유전정보의 해독을 계기로 향후 인간관에 있어 종교와 진화론의 영향에 맞먹을 정도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인간유전체연구를 비롯한 생명과학기술, 나노, 로봇, 뇌신경과학 등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유례가 없는 새롭고 복잡한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에 대해 윤리적으로 책임 있는 자세와 발생 가능한 문제를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생명과학기술 분야 정부 부문 연구개발비(1984년~2008년)

과학기술과 위험사회

최근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는 위험에 대한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위험의 사회적 차원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전통적으로 그 원인에 초점을 맞춰 위험의 유형을 자연적, 기술적, 사회적 위험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널리 사용됐다.

자연적 위험은 천재지변이나 기후온난화 등 자연조건의 변화에 의해서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산업화 등 인간의 활동이 자연조건에 영향을 미치고, 유독물질 유출이나 교량 붕괴 등 기술적 위험도 설계와 운용방식에 있어 소위 시스템 실패(system failure)나 인간의 실수(human failure)라는 인재(人災)의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기술적 요인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던 폭력, 사기 등 사회적 위험의 형태도 악성 댓글이나 피싱(phishing)의 사례처럼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게 됐다.

울리히 벡에 의하면, “근대화가 19세기에 봉건사회 구조를 해체하고 산업사회를 만들어낸 것처럼, 오늘날 근대화는 산업사회를 해체하고 있으며 또 하나의 새로운 근대성이 출현하고 있다”. 20세기 말 이 새로운 근대성과 함께 출현한 ‘위험사회’는 산업사회와 뚜렷이 구분된다. 산업사회에서는 재화 또는 ‘좋은 것’(goods)의 분배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이며, 이 과정에서 사회계급(class)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계급이나 노동조합 등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욕구(need)에 근거해 연대를 이루며, 평등(equality)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집단행동을 취한다. 즉, 산업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좋은 것’(goods)을 더 많이 획득하겠다는 적극적인 목표를 지향하고, “나는 배가 고프다!”(I am hungry!)라는 구호를 외친다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위험사회는 위험요소(dangers) 또는 ‘나쁜 것’(bads)의 배분이 사회적으로 중요해지는데, 계급 정체성이나 조합원 자격이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막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된다. 즉, 사회계급 또는 다른 집단의 영향력은 감소되고 개인적 차원에서 모든 위험에 대응해야만 하는 개인화된 사회라는 것이다.

개인화된 사회에서 개인들은 불안(anxiety)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연대를 맺고, 이들이 추구하는 이상은 안전(safety)이다. 산업사회에서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추구했던 적극적인 목표와는 달리, 위험사회에서는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최악의 것’(the worst)을 막겠다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목표로 전환되며, “나는 두렵다!”(I am afraid!)는 구호가 이런 정서를 대표한다.

벡은 정치의 차별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강력하고 독립적인 사법제도와 미디어가 존재한다는 배경조건 하에서, 전문직과 조직 내에서 자기비판의 기회를 부여하고, 또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의학이 의학을 반대하고, 핵물리학이 핵물리학을 반대하며, 정보기술이 정보기술을 반대할 때, 시험관에서 배양되고 있는 미래에 대해서도 비로소 외부 세계에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자기비판을 허용하는 것은 위험요인이 아니라 조만간 우리의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인간의 과오를 미리 찾아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벡에 의하면, 합리성에 대한 과학의 독점은 자기회의(self-skepticism), 즉 성찰성(reflexivity)을 배제하게 되는데, “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라고 한다. 결국, 위험사회의 해법은 ‘성찰적’인 과학적 합리성, 그리고 다양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 ‘성찰적 근대성’(reflexive modernity)을 확보하는 것이다.

탁월한 과학기술자이자 성공한 대기업가인 빌 조이는 2000년 “우리는 왜 미래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해 과학기술의 발전에 동반되는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미국의 ‘정보기술에 관한 대통령 자문위원회’의 공동의장도 역임한 조이는 현재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GNR―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공학―은 파괴적인 자기복제의 힘을 갖고 있으며, 대규모 시설이나 자본이 필요없이 상업적인 용도로 제한 없이 질주하고 있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은 너무 위험한 기술개발에 제동을 거는 것뿐이라고 한다.

사회이론가 벡 이외에도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생명과학기술을 비롯한 첨단과학기술이 초래하는 위험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버마스(2002)는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부상하게 될 우생학, 미국의 정치학자 후쿠야마(2002)는 바이오테크놀로지 혁명의 결과 인간의 본성이 변화될 수 있다는 데 대해 경고한다.

마이클 샌델(2007)은 유전자 조작에 의한 인간개조 가능성, 즉 ‘디자이너 베이비’(맞춤 아기)의 문제를 비판하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비롯한 여러 저서에서 생명과학기술과 관련된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제정치학자 싱어(2009)는 로봇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되는 국제 분쟁과 전쟁의 양상에 다각적으로 주목하면서, 인간지놈프로젝트의 사례와 같은 ELSI 연구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 정리 = 윤빛나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윤정로 KAIST 교수가 ‘사회 속의 과학기술’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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