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감정이지만, 수면 위에 올리기는 힘들었던 '모멸감'
흔한 감정이지만, 수면 위에 올리기는 힘들었던 '모멸감'
  • 윤빛나 기자
  • 승인 2014.04.07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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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우리는 슬프거나 외로운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데 비교적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드러냈을 경우 위로받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하지만 '모멸감'의 경우는 다르다. 가령 학력이나 외모로 멸시를 당했을 때, 그 울적한 심경을 내비치면 그 자체가 또다른 모멸감을 유발할 수도 있다. 어렵지 않게들 품는 감정이지만, 드러내기 쉽지만은 않은 감정이다.

'모멸감'의 사전적 정의는 '업신여김 당하고 얕잡아 보임'이라고 돼 있다. 그 안에는 수치심, 열등감, 자기혐오, 분노, 두려움, 외로움, 슬픔 등이 뒤섞인 채 억눌려 있다.

책 『모멸감』의 저자는 이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프리즘 삼아,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조명하면서 삶과 마음의 문법을 추적하려 했다. 한국에서 모멸감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그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모욕을 주고받을까.

저자인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는 서문을 통해 모멸감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흔히 겪는 감정이지만 인간의 감정 스펙트럼 속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규명하기도 어려워 깊고 정밀한 논의까지는 미치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먼저 프롤로그에서는 모멸감이라는 키워드가 포착되는 맥락을 확인하고, 책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문제 의식을 요약한다. 1장에서는 모멸감의 기본 속성을 해명하고, 2장에서는 한국 사회의 정서적 지형을 조감하며 모멸감이 만연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분석한다. 나머지 3~5장에서는 모멸의 존재 방식을 일곱 개로 나눠 살펴보고, 모욕을 주고받지 않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며, 모멸에 대한 내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개인 수준에서 성찰한다.

특히 문헌을 비롯해 뉴스 기사,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 문학작품 등에서 수집한 실례와 생활 에피소드를 들어가며 흥미로운 논의를 전개해 어렵지 않게 책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더불어 우리를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시키기도 하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폭력으로 발화하게도 하는 어둡고 복잡한 마음자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한국 사회에서 모멸감이 날카롭게 경험되는 것은 조선시대에 형성된 귀천의식과 신분적 우열 관념이 자의적으로 청산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격하게 추진된 산업화와 급변한 사회 환경이 역사적 맥락이라는 분석도 흥미롭다.

한편, 이 책의 색다른 시도는 '음악'이다. 인문사회과학 저술에는 생소하게도,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열 개의 곡을 CD에 담아 함께 실었다. 음악사적으로도 불안이나 분노, 고독이나 초조함, 슬픔이나 기쁨 등을 주제로 한 곡은 많아도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다룬 곡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악플, 왕따, 감정노동, 갑을관계 등 모멸 권하는 현상이 만연한 우리 사회. 누군가에게 당한 모욕을 또다른 누군가에게 앙갚음하고, 은근히 깔보는 마음을 즐긴다. 심지어 아무도 대놓고 비웃지 않아도 스스로 열패감에 젖어든다.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한번쯤 들었던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과정이 꽤나 시원하면서도 즐거울 것이다.

■ 모멸감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 340쪽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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