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씨의 수필집 『하얀 숲』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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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수필가 김진수 씨의『하얀 숲 』을 정독한 후, 올가을엔 실용 서적, 교양서적, 고전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보다. 편협 된 나의 독서 습관을 고쳐 삶의 질을 높이는 지혜가 담긴 책들을 많이 읽어야 겠다.
최근 발간 된 수필집 중에 한권의 수필집이 유독 인상 깊다. 그것은 무엇보다 『하얀 숲』의 저자인 김진수 씨는 연령이 나의 친정어머니와 같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깊다. 또 칠순이 넘은 연령에도 불구하고 참신하고 잔잔한 문체가 매우 돋보인다. 이 수필집을 대하자 훗날 나도 나이 들어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한편으론 저자의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부러웠다.
이 책엔 주옥같은 수필이 총 42편이 수록돼 있다. 글마다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그 중에 ‘가을 단상’이란 수필이 있다. 저자는 이 글에서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라고 했다. ‘가을 단상’ 글 첫머리에 쓰인 그 내용을 읽는 순간 나의 젊은 날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갑자기 가슴이 저렸다.
날 좋아한다며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머슴애가 있었다. 옆모습이 유난히 멋진 아이였다.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해 누나랑 살았다. 그 머슴애 누나는 그 당시 청량리 어느 상가에서 아동복을 팔았다. 헌데 어느 날 그 상가에 큰 불이 났었다.
그 불로 누나가 일터를 잃자 그 머슴애는 다니던 대학교도 그만뒀다. 누나 대신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어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우연히 들린 서울 대 입구 어느 식당에서 그 머슴애를 만났다. 나를 본 그 머슴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들린 그 식당에서 참으로 슬픈 소식을 접했다.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뜨거운 음식물에 전신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또 들어야 했다. 얼굴에 화상이 심해 완치가 돼도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가 힘들다는 말이었다.
병원을 퇴원한 후 그 머슴애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난 그 머슴애가 자신의 보기 흉한 외모로 인해 입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
그 머슴애가 떠나던 그해, 소리 없이 가을은 깊어 단풍이 꽃처럼 어여뻤다. 나를 쫓아다닐 땐 그 머슴애가 찰거머리처럼 여겨져 몹시 성가셨었다. 허나 막상 불의의 사고를 당한 그 머슴애의 처지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그 연민은 곧 그리움으로 이어졌다. 눈을 들면 온통 그 아이 모습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이듬해 가을이 지나도록 그 머슴애 소식을 통 듣지 못했다. 그토록 나없인 못산다고 쫓아다니더니 그 머슴앤 기어이 내 곁을 떠난 것이다.
요즘도 지난날 그 머슴애가 좋아하던 음악인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 를 들으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여자는 마지막 남자를 기억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아직도 가을만 되면 그 머슴애를 떠올리곤 한다.
김진수 씨는 ‘가을 단상’이란 글을 통해 자신의 잃어진 청춘에 대한 회한과 가을의 스산함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그는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낙엽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어쩜 그 머슴애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내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멋진 모습만 내 가슴에 각인 시킨 채 말없이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 머슴애가 떠난 이후로 나는 계절병을 자주 앓았다. 가을만 되면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늘 가슴이 얼얼했다. 텅 빈 가슴이 되어 마음이 헛헛하기도 하다.
올해도 가을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내 가슴은 또 허허로울 것이다. 애틋한 나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선 김진수 씨의 『하얀 숲』을 머리맡에 두고 ‘가을 단상’수필을 자주 읽어야겠다.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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