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 김혜식
  • 승인 2007.10.0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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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씨의 수필집 『하얀 숲』을 읽고
▲ 김혜식(수필가)     ©독서신문
나는 수필을 사랑한다. 한편의 수필엔 작가의 혼이 배여 있고 정서가 녹아있다. 작가들의 내적 심상을 진솔하게 표현한 필력에 한껏 사로잡혀 에세이집을 밤새워 읽곤 한다. 그동안 내가 즐겨 읽은 책들은 솔직히 주로 시집, 수필집, 소설집 등이 전부이다. 
 이젠 수필가 김진수 씨의『하얀 숲 』을 정독한 후, 올가을엔 실용 서적, 교양서적, 고전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보다. 편협 된 나의 독서 습관을 고쳐 삶의 질을 높이는 지혜가 담긴 책들을 많이 읽어야 겠다.
 
최근 발간 된 수필집 중에 한권의 수필집이 유독 인상 깊다. 그것은 무엇보다 『하얀 숲』의 저자인 김진수 씨는 연령이 나의 친정어머니와 같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깊다. 또 칠순이 넘은 연령에도 불구하고 참신하고 잔잔한 문체가 매우 돋보인다. 이 수필집을 대하자  훗날 나도 나이 들어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한편으론 저자의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부러웠다.
 
이 책엔 주옥같은 수필이 총 42편이 수록돼 있다. 글마다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그 중에 ‘가을 단상’이란 수필이 있다. 저자는 이 글에서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라고 했다. ‘가을 단상’ 글 첫머리에 쓰인 그 내용을 읽는 순간 나의 젊은 날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갑자기 가슴이 저렸다. 

 날 좋아한다며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머슴애가 있었다. 옆모습이 유난히 멋진 아이였다.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해 누나랑 살았다. 그 머슴애 누나는 그 당시 청량리 어느  상가에서 아동복을 팔았다. 헌데 어느 날 그 상가에 큰 불이 났었다.

 그 불로 누나가 일터를 잃자 그 머슴애는 다니던 대학교도 그만뒀다. 누나 대신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어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우연히 들린 서울 대 입구 어느 식당에서 그 머슴애를 만났다. 나를 본 그 머슴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들린 그 식당에서 참으로 슬픈 소식을 접했다.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뜨거운 음식물에 전신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또 들어야 했다. 얼굴에 화상이 심해 완치가 돼도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가 힘들다는 말이었다.

 병원을 퇴원한 후 그 머슴애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난 그 머슴애가 자신의 보기 흉한 외모로 인해 입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
 그 머슴애가 떠나던 그해, 소리 없이 가을은 깊어 단풍이 꽃처럼 어여뻤다. 나를 쫓아다닐 땐 그 머슴애가 찰거머리처럼 여겨져 몹시 성가셨었다. 허나 막상 불의의 사고를 당한 그 머슴애의 처지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그 연민은 곧 그리움으로 이어졌다. 눈을 들면 온통 그 아이 모습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이듬해 가을이 지나도록 그 머슴애 소식을 통 듣지 못했다. 그토록 나없인 못산다고 쫓아다니더니 그 머슴앤 기어이 내 곁을 떠난 것이다.

 요즘도 지난날 그 머슴애가 좋아하던 음악인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 를 들으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여자는 마지막 남자를 기억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아직도 가을만 되면 그 머슴애를 떠올리곤 한다.

 김진수 씨는 ‘가을 단상’이란 글을 통해 자신의 잃어진 청춘에 대한 회한과 가을의 스산함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그는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낙엽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어쩜 그 머슴애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내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멋진 모습만 내 가슴에 각인 시킨 채 말없이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 머슴애가 떠난 이후로 나는 계절병을 자주 앓았다. 가을만 되면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늘 가슴이 얼얼했다. 텅 빈 가슴이 되어 마음이 헛헛하기도 하다.
 올해도 가을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내 가슴은 또 허허로울 것이다. 애틋한 나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선 김진수 씨의 『하얀 숲』을 머리맡에 두고 ‘가을 단상’수필을 자주 읽어야겠다.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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