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인간 대접을 받으면서 벌어진 일들
기업이 인간 대접을 받으면서 벌어진 일들
  • 윤빛나 기자
  • 승인 2014.03.20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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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1886년 어느 날, 미국에서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산타클라라 카운티 대 서든퍼시픽 철도 사건에서 나온 '기업이 인간이다'라는 판례는 최근까지도 미국에서 기업들에게 정부와 인간을 상대로 한 수많은 소송에서 승리를 안겨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업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의 저자는 어쩌다가 이런 판결이 나쁜 선례로 남아 '기업도 인간이다'라는 주장에 논거를 제공하게 됐는지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여러 문헌을 필사적으로 탐색한 결과, 이 판결이 실수와 왜곡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발견한다.

그는 이 판결이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후세에게 결과가 어떻게 왜곡돼 전달됐는지를 디테일하게 복원해내는데 성공한다.

미국의 수정헌법에서 평등하게 보호해야 할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는 'person'이고, 기업 즉 법인은 'artificial Person'이다. 같은 'pers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거대 기업들은 수정헌법의 'person' 안에 법인이 포함된다고 줄기차게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앞서 언급한 판례를 얻어내며 기업이 지배하는 나라 미국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었다.

이 책은 미국이 로비스트가 버젓이 활보하게 된 것도 저 판례 덕분(?)이라고 말한다. 기업도 인간이기 때문에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기업에게는 의사를 표현할 입이 없는 대신 자금이 있고, 이 자금은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자금으로 누군가를 후원하는 행위를 막는 것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이라는 황당한 논리도 1886년 판례를 근거로 힘을 얻는다.

현재 미국 정부는 기업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섣불리 기업을 조사할 수 없다. 법적 근거는 수정헌법 4조다. 거기에는 '인간은 부당한 수색에서 자유롭고 사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으므로 불시 점검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인간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기업의 사생활을 존중하게 됐고, 범죄를 저지른 기업들이 정부 조사를 거부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인간의 헌법'을 '기업의 헌법'으로 바꿔치기한 미국 기업의 문제는 미국에만 국한된 것일까? 미국 기업이 진출한 나라에서는 그 나라 노동자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까지 국가 간에 체결된 다양한 협정을 통해 거대 기업들은 전 세계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기업의 법인격을 무효화하는 것은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고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거대한 비전을 향한 첫걸음이지만, 쉽지 않고 또 기나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저자는 "한 번 시작해봅시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의 내용은 소수의 기업이 국가와 법에 의해 불평등하게 보호받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내용일 것이다.

■ 기업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
톰 하트만 지음 | 이시은 옮김 | 어마마마 펴냄 | 460쪽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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