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장치, ‘루이지 밤파’ - '몬테크리스토 백작'(알렉상드르 뒤마 著)
풍부한 장치, ‘루이지 밤파’ - '몬테크리스토 백작'(알렉상드르 뒤마 著)
  • 독서신문
  • 승인 2014.03.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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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안 나오는 원작 이야기 <18>
▲ 몬테크리스토 백작 해외 영화 포스터와 국내 영화 포스터, 국내 출간된 소설 표지와 만화책 표지(왼쪽부터)

[독서신문] 국내에 처음 알려질 때 『암굴왕』이라는 제목으로 들어온 바 있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복수극의 정석이다. 1800년대 중반 최고의 대중소설가인 알렉상드르 뒤마는 이 작품을 통해 수많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수많은 인간관계들과 갖가지 복선과 충격적인 사건들을 잘도 펼쳐놓았다.

솔직히 지난번에 다뤘던 『삼총사』보다도 이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더욱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더 늦게 다루는 이유는 그만큼 이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을 더듬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려 14년 전 쯤으로 기억하니 세세한 것들이 기억이 안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필자는 당시 이 엄청나게 두꺼운 분량의 소설에,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빠져들어서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었다. 시간이 많은 시절이라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머릿속에 남아버린 충격을 하나 얘기하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철없는 대학생이었고,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필자로서는 그 충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장치가 얼마나 소설 전체를 풍성하게 만들어가는지 깨닫는 계기였던 것 같다.

말을 너무 돌려서 얘기하는 느낌인데, 이제 와서 결론을 얘기하자면 필자가 소설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바로 루이지 밤파의 등장 시퀀스다. 당시 꽤 두꺼운 5권 분량이었던 완역본에서는 2권 중간 부분에 이 루이지 밤파의 얘기가 나오는데(이도 사실 지금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겨우 알아낸 사실이다) 그게 한 권의 거의 절반 분량을 차지한다.

처음 소설을 읽을 때는 ‘도대체 왜 갑자기 엉뚱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렇게 오래 나오는 거지?’라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것도 살짝 언급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비중을 엄청 높여서 얘기하니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가뜩이나 에드몽 당테스(몬테크리스토 백작)의 근황이 궁금해 죽겠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천재적인 계산에 기초한 설정이다. 독자들은 뜬금없는 루이지 밤파의 이야기에 집중을 잃어버리지만(그럼에도 루이지 밤파도 충분히 매력적인 도둑이다) 또 한참을 읽다 보면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루이지 밤파의 인연에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소설의 주변 장치들을 어떻게 설정하는가는 소설을 풍부하게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이 비록 소설의 주요 플롯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장치가 없으면 소설은 마치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대작가들은 수많은 주변 장치들의 설명에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소설의 매력을 100배는 더 배가시킨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뒤마가 ‘루이지 밤파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 할애한 그 상당한 분량에 보통의 평가보다 몇 배는 더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주인공 당테스의 매력도가 루이지 밤파 이야기를 통해 몇 배는 더 높아진다.

사실 고백하건데 필자는 루이지 밤파라는 이름조차 잊고 있었다. 분명히 그 파트에 대한 충격은 기억이 나는데 구체적인 고유명사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겨우겨우 검색을 통해서야 그 이름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감이 좀 오시는지? 필자는 처음 소설을 접한 이후 몇 편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영화판을 접했다. 하지만 항상 루이지 밤파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 주변장치를 영화는 도저히 다룰 수가 없다. 명백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당연히(?) 필자의 머릿속에서 루이지 밤파라는 고유명사는 점점 잊혀져간 것이다. 이제 좀 이해가 가시는지? 14년이 지나도, 영화에서 절대로 못 봐도 여전히 생생한 주변장치. 이런 것이 바로 소설만의 각별한 매력이다.

/ 홍훈표 작가(exomu@naver.com)

■자유기고가 홍훈표
·연세대에서 경제학 전공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 단막뮤지컬 <버무려라 라디오> 극본 집필
·지촌 이진순 선집 편찬요원
·철학우화집 『동그라미씨의 말풍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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