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VS 영화] ‘오빠가 돌아왔다’, 막장 가족의 코끝 찡한 가족애
[소설 VS 영화] ‘오빠가 돌아왔다’, 막장 가족의 코끝 찡한 가족애
  • 양미영 기자
  • 승인 2014.03.10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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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막장 가족을 훈훈한 가족애로 예쁘게 포장한 가족 영화

▲ 김영하 작가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표지(왼쪽)와 노진수 감독의 영화 <오빠가 돌아왔다> 포스터.

[독서신문 양미영 기자]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빠가 돌아왔다’가 노진수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됐다.

술주정꾼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빠 ‘백원만’(손병호 분), 고등학교 때 집을 나갔다가 5년 만에 10대 동거녀를 달고서 집으로 돌아온 오빠 ‘백태봉’(김민기 분), 아빠에게 맞는 게 지겨워 집을 나간 후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 ‘고귀순’(이아현 분), 그리고 알거 다 안다고 말하는 시니컬한 여중생인 나 ‘백세주’(한보배 분). 가족 구성원이 이렇다 보니 정상적인 가족 이야기는 기대하지 말자.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이야기는 가출한 오빠가 5년 만에 10대 여자 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정상적이지 않은 이 가족은 만나기만 하면 싸움박질이다. 특히 아빠와 아들은 부자관계가 아닌 수컷들의 본능적인 기 싸움을 방불케 한다. 누가 이 집안의 1인자가 될 것인지 노골적인 힘겨루기로 판가름하려 한다. 물고 뜯는 맹수들의 서열다툼과 다름없다.


▲ 영화 <오빠가 돌아왔다> 스틸컷. 사진은 아빠 역의 손병호

첫 대면의 선방은 아빠가 날린다. 20여 년 동안 이 집안의 1인자였던 아빠는 그동안 해 온대로 폭력을 휘두르며 1인자 자리를 고수하려 한다. 하지만 아들이 달라졌다. 5년 전에는 자기한테 흠씬 맞고 옷이 벗겨진 채로 집밖으로 쫓겨났던 아들이 이제는 아빠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한다. 자신을 향했던 야구방망이를 뺏어들고 아빠를 흠씬 두드려 팬다. 어디 그뿐인가 옷을 홀딱 벗긴 후 줄넘기 줄로 아빠의 손발을 묶어 놓은 채 천연덕스럽게 여자 친구와 라면을 끓여 먹는다. 이제 확실해졌다. 이 집안의 1인자는 오빠다.

아빠는 복수의 칼을 간다. 아들의 예상치 못한 반격과 치욕을 떠올리며 아들을 청소년 성매매이자 미성년자 약취 유인으로 신고한다. 경찰서에서 갖은 고생을 겪고 나온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빠를 족친다.

아들이 아빠에게 폭력을 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분명 폐륜이다. 그런데 아들에게 맞는 아빠의 모습은 처참하거나 서글프지 않다. 한편으로 통쾌하고, 보는 이들의 웃음까지 자아낸다. 아들에게 맞을 때마다 ‘나 죽는다’며 엄살을 피운다거나, 아들을 향해 욕을 하며 허세를 부리는 아빠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또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개도 몇 대 맞으면 꼬리를 내린다는데 저 아빠라는 인간은 똥개보다도 지능지수가 낮은 게 아닐까’라고 반문하는 열 네 살 딸의 시선은 가족 관계가 얼마나 심하게 일그러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영화 <오빠가 돌아왔다> 스틸컷. 사진은 오빠 역의 김민기(뒤)와 아빠 역의 손병호

영화와 소설의 큰 줄기는 같다. 아빠의 폭력에 못 이겨 고등학교 때 가출했던 오빠가 5년 만에 여자와 함께 돌아온다는 점, 그리고 소설 속 화자이자 영화 속 내레이션을 맡은 중학생 딸의 시선으로 스토리를 끌고 간다는 점이다.

하지만 감독은 소설 속 캐릭터만 있던 막장 가족의 모습을 훈훈한 가족애로 포장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오빠가 데리고 들어온 10대 동거녀 ‘로미’(여민주 분)에게 가족들을 화합하는 역할을 맡겼다.

로미가 떠주는 수제비 한 국자에 아빠는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부모님이 안계시다며 울먹이는 그녀의 모습에 엄마는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길거리 가수로 전전하는 오빠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오디션을 볼 수 있게 응원하는 것은 기본. 싸가지 없는 막내 ‘세주’에게 과감히 머리끄덩이를 잡아 기선 제압을 t시도한다.

소설 속에서 소극적이었던 오빠의 여자 친구는 ‘로미’라는 사랑스럽고 순수한 캐릭터로 분해 가족들을 한데 모이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이 가족을 덜 막장스럽게 만든다. 특히 소설에서는 없던 ‘임신’이라는 설득력이 주어진다. 임신했기 때문에 오빠가 집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임신했기 때문에 로미가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어색하지 않다.

또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치고는 폭력도 섹스도 욕설도 난무하지 않는다. 소설 속 쌘 장면들이 훈훈한 가족애로 예쁘게 포장됐다. 소설 속 아빠가 무능력한 식충이로 묘사된 반면 영화 속 아빠는 나름 실력 있는 파파라치다. 파파라치 강의를 하고 전문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다. 또 소설 속 오빠가 먹고 살기에 급급한 택배기사로 묘사된 반면 영화 속 오빠는 ‘뮤지션’이라는 꿈을 가진 길거리 가수다. 돈벌이보다는 ‘실력을 인정받는 진정한 가수’를 꿈꾸는 사람이다.

▲ 영화 <오빠가 돌아왔다> 스틸컷. 사진은 앞줄 왼쪽부터 배우 김민기, 여민주, 이아현, 뒷줄 한보배

26페이지짜리 단편 소설을 94분의 스크린에 담은 노진수 감독은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인물 중심의 캐릭터만 있었던 소설을 스토리로 만들기 너무 어려웠노라고. 아빠를 때린 아들에게 잘했다며 소시지를 서비스로 주는 슈퍼 아저씨의 행동, 아들에게 안방을 빼앗긴 아빠가 댓돌 위에 올려진 아들의 운동화에 화풀이를 한다거나, 신음 소리에 이끌려 아들의 섹스 장면을 몰래 훔쳐보는 아빠의 행동, 줄넘기 줄에 묶여 ‘화장실이 급하다’고 소리치는 아빠에게 빈병을 굴려주는 아들의 행동은 감독이 생각해낸 독창적인 디테일이다.

감독은 말한다. ‘오빠가 돌아왔다’의 가족을 콩가루 가족, 독특하고 개성 있는 가족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우리네 가족과 별 차이 없다고. 보편적인 가족도 그 속에 갈등이 있고 부대낌이 있으며, 보기 싫어 집 나왔는데 떨어져 보니 보고 싶고 만나면 또 싸우는 게 가족 아니겠냐고. 이런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영화에 잘 녹아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던 것처럼 이 작품이 소설과 연극의 흥행을 넘어 스크린으로도 흥행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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