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을 통해 얻는 진정한 삶의 가치와 신념, 연극 '천로역정'
긴 여정을 통해 얻는 진정한 삶의 가치와 신념, 연극 '천로역정'
  • 김누리 객원문화기자
  • 승인 2014.02.2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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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누리 객원문화기자] 삶에 지친 이들을 향한 따스한 위로

우리의 인생은 흔히 아주 길고 긴 강에 비유된다. 한 번 흐르기 시작한 순간 결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인생은 기차역에 비유되기도 한다. 항상 언젠가는 반드시 어떠한 지점에 도달하며, 매번 출발과 도착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각자 인간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은 그 언제든 제 의지대로 시간을 돌이킬 수가 없기에 더욱 소중하고 그만큼 한없이 불안하다. 특히 돈과 명예, 지위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삶의 ‘행복’이 수치화되고, 아무렇게 재단되는 이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누구나 출발점은 같았으나 목적지도, 중간 거쳐 가는 지점도 종착지도 다르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목적지나 답은 없었다. 그래서 더 우리는 간혹 내 눈 앞에 펼쳐진 아득하리만치 긴 길 위에서 방향을 잃기도 하고, 장애물 앞에 고꾸라지기도 하며, 삶의 가치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주저앉는다. 연극 <천로역정>은 바로 그렇게 지독하지만 놓을 수도 없는 ‘삶’ 자체에 지친 이들을 따스하게 위로하며, 천천히 손을 잡아 이끄는 작품이다.

우선적으로 연극 <천로역정>은 사실 성극에 가깝다. 무엇보다 원작 『천로역정』(원제:The Pilgrim's Progress from this World to that which is to come)의 내용이 멸망의 도시에 빠져나온 필그림이 순례자로써 ‘하늘 성’으로 갈 수 있는 ‘좁은 문’을 찾아 떠나며 긴 여정을 거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원작의 저자가 바로 영국 근대 소설 발전에 영향을 준 인물이자 교회 설교가였던 존 버니언이다. 천로역정』은 존 버니언이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인정되지 않던 교파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감금되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자기의 신앙심을 구상화해 저술한 작품이었다. ‘천로역정』은 기독교 색채가 강하게 묻어날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자체가 가진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기성찰적인 교리를 녹여낸 내용은 단순히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공감 요소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 연극 <천로역정> 공연 장면. [사진 제공=씨즈온]

선택과 고난의 연속에서 찾는 삶의 가치

실제 삶이란 참 영위하기 쉬우면서도 사실 그만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알 수 없는 절대적 난제이다. 우리들은 항상 어느 순간마다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어떠한 것도 쉬이 스스로 정의할 수 없어 두려움을 맞이하곤 한다. 그 두려움이 서서히 익숙해지면 우리는 어느새 말 그대로 ‘삶’자체에 무뎌지며 진정한 자기 발전이나 성찰에 대해선 외면하기 바쁘다. 연극 <천로역정> 역시 그런 우리들을 조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우화 형식을 빌린 와중에 특히 연극은 ‘무지’라는 일련의 의식이나 감정을 의인화했다. 극은 매사 자신감이 넘치고 인생과 신앙생활에 대하여 쉬운 길을 선호하는 ‘무지’가 ‘하늘 성’으로 가기 위해 답을 구하는 장면에서부터, 결국 신의 사자와 같은 인물들에 의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꿈에서 진짜 주인공 ‘필그림’이 등장한다.

주인공 ‘필그림’은 여정을 떠나기 이전 다소 피폐하고 나아갈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제 자신에 혼란스러워하며 주변 현실에 절망하는데, 이 모습은 분명 결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필그림은 자기 어깨에 짊어진 짐을 벗기 위해 고향인 멸망의 도시를 벗어나 비로소 ‘전도’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좁은 문’이라는 목적지를 얻고 여정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필그림의 여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우리들의 삶이 늘 그러하듯 극에서도 우화 형식에 맞게 각각 새롭게 의인화된 ‘세속’, ‘욕망’,‘나태’, ‘탐욕’에 의해 필그림은 선택과 고난의 순간을 연속적으로 겪는다. 험하고 어려운 길이 아닌, 쉬운 길로 갈 것이냐. 또는 모든 여정의 목적을 벗어던지고 그저 현재 타고난 욕망에 맡겨 살아갈 것이냐. 발을 닿는 곳곳마다 필그림은 선택의 기회를 얻고, 수많은 유혹에 시달린다. 극 중 이런 그를 매 순간 붙잡는 것은 자신의 ‘신’과 그 신의 ‘말씀’이었다.

처음에는 소극적인 태도였으며 스스로에 대한 믿음조차 부족했던 필그림은 점차 여정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변화한다. 자신이 마주한 제‘삶’을 오롯이 인지하며 신의 ‘말씀’을 매 순간 제 몸과 마음에 새기고, 그를 통해 고난을 헤쳐 나간다. 그리고 이윽고 ‘좁은 문’에 다다르기에 이른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실제로 누구보다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자신의 삼임을 우리는 잠재적으로 의식하고 있다. 다만 인생의 매 순간 주어진 선택이 또 어떤 방향으로 나를 이끌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항상 애초에 도망칠 생각부터 하는 것이다. <천로역정>은 개인이 스스로 삶의 가치를 인지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데 용기를 가져다 줄 자기 나름의 ‘신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함을 필그림의 변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오히려 고난을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또 다른 삶의 동력으로서 인지하고, 자기 신념에 의해 후회 없는 일상을 보내는 것. 연극은 결코 특정한 메시지를 강요하진 않는다. 다만 직접 몸소 보고 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 연극 <천로역정> 공연 장면. [사진 제공=씨즈온]

삶의 여정을 견고히 재현하는 영리한 연출

연극 <천로역정>은 원작의 우화 형식을 보다 살리기 위해서 다양한 방향으로 노력을 강구한 흔적이 보인다. 공연이 소극장에서 이뤄지므로 무대가 필그림의 긴 여정동안 이루어지는 모든 사건에 대해 세세하게 사실적인 모습을 제공하진 못한다. 그러나 오히려 특정 캐릭터나 소품, 조명 등으로 가장 집중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우선 극 중 등장하는 각각의 캐릭터들은 저마다 가장 특색 있는 의상과 장신구를 선택하여 강한 차별성을 만들어낸다. 예로 들자면 필그림, 그리고 그를 돕는 ‘믿음’, ‘소망’ 등과 달리 현실의 쾌락과 욕망을 상징하는 ‘세속’, ‘탐욕’ 등은 외적으로 화려함을 추구하고 있다. 이렇듯 섬세한 캐릭터 구축과 더불어 본 극에서는 그 캐릭터가 순간순간 표현하려는 감정에 대하여 노래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전반적으로 연극의 형식이지만 연극 <천로역정>은 뮤지컬적인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며, 이는 훨씬 필그림이 겪는 숱한 고난과 역경의 여정이 주는 감동을 배로 만들며 극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기존에 있는 곡이나 개사를 한 곡, 창작곡들이 여러 곡 등장한다. 필그림이 자신의 고향 멸망의 도시 주인이자 악마인 ‘아볼론’과의 싸움 전후로 스스로의 삶에 대한 애정과 신념을 다지는 데 부르는 곡이나 ‘절망’과 ‘죽음’이라는 두 부부에 의해 감옥에 갇혀 자살을 강요받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지는 노래가 특히 극중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뿐만 아니라 내용이 전달하는 무거움을 피하기 위해 극 중 곳곳에 배치한 재미 유발 요소는 훨씬 관객에게 극에 대한 이해를 손쉽게 하도록 하며, 메시지를 느껴야 한다는 부담 또한 덜어주고 있다. 일정한 무대 밖으로 객석까지 배우가 나가서 관객 옆에서 연기를 펼치는 등 관객과의 소통에 대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연극 <천로역정>은 매회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의 연기, 아름다운 노래, 묵직한 내용이 더해지면서 보다 견고하면서 볼거리 또한 풍성한 작품으로써의 모습을 보인다.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 편의 든든한 위로와 응원이 될 연극 <천로역정>은 오는 5월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아트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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