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일본의 시어머니들
불쌍한 일본의 시어머니들
  • 독서신문
  • 승인 2014.02.1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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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에세이'
▲ 이하빈 작가

[독서신문] 일본의 시어머니들은 불쌍하다. 한국도 시어머니들의 권위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국이 일본보다는 낫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일본의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로부터 초대를 받아야 아들집에 갈 수 있으니, 연초가 되어 손자를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보기 힘든 지경이다. 마치 서양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엄연하고도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일본의 현실이다.

필자가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한 일본 아주머니는 아들이 2년 전에 결혼해 분가를 했는데, 아직까지 아들집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진 필자는 “한국 같으면 쳐들어갈텐데…”라고 공격을 하자, 그 아주머니는 “큰 일 날 소리 한다”며 펄쩍 뛴다. 구청에서 오랫 동안 근무한 뒤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한 아주머니는 그래도 매년 연초가 되면 자식 생각이 나는지 “한국은 어떠냐?”고 슬쩍 물어오곤 한다. 그때면 필자는 기다렸다는 듯 한국 특유의 경로사상까지 끄집어내면서 “일본 정도는 아니다”고 목에 힘을 주지만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매년 새해가 되면 고부간의 갈등을 다룬 기사들이 각종 매체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새해의 긴 연휴 동안 먼길에서 오는 손님을 대접하느라 안절부절 못했다는 시어머니들의 이야기에서부터 분위기에 들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몇 마디 했다가 아들이 이혼을 당한 사례까지 내용은 다양하지만 항상 사건의 중심에는 불쌍한 시어머니가 있다.

아들이 늦게 장가를 간 탓에 손자가 빨리 보고 싶어 며느리한테 재촉한 게 화근이 됐다거나, 고기를 구워 먹는데 시어머니가 고기가 모자라 며느리한테 “나중에 먹으라”고 했던 말 때문에 아들 부부가 파혼에 이르렀다는 등. 마치 코미디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일본의 며느리들에게는 충분한 공격의 소재가 되는 ‘중대 실언’이라는 것이다.

아들 부부의 파경을 원하지 않는 일본의 시어머니들에게는 어느새 ‘침묵이 금’이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굳어졌다. 자칫 이혼을 하면 구실 제공으로 인한 짐이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일본의 시어머니들은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을 자신들이 실천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고부간의 갈등에 아들이 잘못 끼어들어 낭패를 보는 경우는 한국보다 훨씬 흔한 일이다. 어머니와 부인 사이에서 방파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괜히 어머니를 두둔하다가는 이혼을 당하기 십상이다. 양쪽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일본 남자들이 그나마 살 길은 무조건 아내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가 고부 갈등을 조금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젊은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와의 대화를 거의 문자로 하니까 감정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시어머니의 입장에서도 며느리를 보면서 끓어올랐던 화를 좀 누그러뜨린 상태에서 글을 쓰다 보면 왠지 마음에도 없는 인자한 말이 나오더라는 얘기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로 고부간의 갈등을 치유하기는 불가능한 노릇이다.

‘아들의 행복을 원한다면 며느리를 잘 품어라.’ 일본의 시어머니들은 새해가 되면 늘 이 말을 금언처럼 가슴에 품고 다닌다.

/ 도쿄(일본) = 이하빈(르포 작가, 동경싱싱아카데미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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