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면발처럼 뚝뚝 끊어내고 싶었던, 그녀들의 '무언가'
국수 면발처럼 뚝뚝 끊어내고 싶었던, 그녀들의 '무언가'
  • 윤빛나 기자
  • 승인 2014.01.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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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지난해 제58회 현대문학상, 제21회 대산문학상을 거머쥔 젊은 작가 김숨이 새 소설집 『국수』를 발표했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 밤의 경숙」 등 9편의 단편 소설을 실었다.

그녀의 단편들은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천착하고, 현대인이 앓고 있는 분열적 심리를 성찰하며, 우리 사회 곳곳에 틈입한 내적 붕괴의 조짐을 날카롭게 읽어내 작품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표제작 「국수」는 외롭고 고단했을 계모의 삶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화해를 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국수를 만드는 일련의 조리 과정에 대입시켰다. 주인공은 계모가 해줬던 것처럼 훗날 국수 반죽을 치대면서 의붓자식 넷을 키워 낸 계모의 고단한 삶을 이해해 간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주인공이 같은 운명을 가진 계모에게 국수를 끓여주면서 화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처음 집안에 들어왔을 때 마흔셋이던 계모는 일흔두살이, 열넷이던 '나'는 마흔세살이 됐다. 아이를 낳지 못해 재취로 들어온 계모가 온 첫날, 그녀는 꾹꾹 누르고 치댄 반죽을 밀어 뽑아낸 국숫발에 간조차 치지 않고 나와 동생들 앞에 한대접씩 놓아 줬었다. 그녀가 반죽에 몰래 섞어넣어 그렇게 꾹 눌러야만 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국숫발을 숟가락으로 뚝뚝 끊었었다.

지금 계모는 혀를 끊었으면 좋겠을 만큼 괴로운 식도암으로 혀 통증을 호소한다. 나는 그녀를 위해 끓인 국숫발을 뚝뚝 끊어 준다. 그녀의 혀가 국숫발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보여서다. 그때 심정과, 지금 국숫발을 끊어내는 심정은 분명 다르다.

「옥천 가는 날」도 「국수」처럼 전통 서사에 기대어 모녀간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룬다. 두 자매는 응급차에 어머니의 주검을 싣고 장례가 치러질 어머니의 고향 옥천으로 향한다. 자매가 좁은 공간에서 주검을 어루만지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황은 죽음과 삶이 이질감 없이 한데 섞이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하고 유일한 도피처가 되기도 하는 가족이란 관계의 심연을 들춰낸다.

현대인의 신경질적인 내면을 치밀하게 묘사한 「대기자들」도 눈에 띈다. 치과에서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주인공은 순서에 강박증적인 불안 증세를 보인다. 자신의 순서만을 되뇌면서 진료를 기다리고, 다른 환자들과 간호사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주인공의 병적인 불안감은 무엇을 쫓는지도 모른 채 불안에 떠밀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 밤의 경숙」도 그렇다. 주인공 경숙의 남편과 퀵써비스 기사는 사고가 나자 폭력성을 감추지 못한다. 불안하게 사태를 지켜보던 경숙은 신경증적인 헛소리를 계속한다. 콜센터에서 일하며 세상으로부터 고립돼 인간성이 말소된 처지에 이른 경숙,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퀵써비스 기사, 그에게 막무가내로 분노를 표출하는 남편은 모두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초상'이다.

이처럼 저자는 불안한 기운과 폭력의 잔해가 떠도는 우리 시대를 절묘하게 형상화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미묘한 조짐조차 놓치지 않는 것이다.

■ 국수
김숨 지음 | 창비 펴냄 | 372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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