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살펴보는 2013년 출판계
키워드로 살펴보는 2013년 출판계
  • 윤빛나
  • 승인 2013.12.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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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조용히 흘러갈 것 같던 2013년 출판계는 하반기에 '소설 열풍'이 몰아치면서 활기를 띠었다. 상반기에는 '힐링'을 주제로 한 책, 강의책 등 지난해의 트렌드를 그대로 이어 받아 큰 변화 없이 흘러가는 듯 했으나, '소설'이라는 고전적인 키워드에 불이 붙고 유명 작가들의 소설도 우후죽순 쏟아지면서 그동안 독서에 흥미를 잃었던 사람들도 옛 향수에 취한 듯 다시금 소설책을 손에 들기 시작했다. 3년 만에 문학 분야에서 밀리언셀러(조정래 『정글만리』)도 나왔다.
 
하지만 경기불황의 여파로 베스트셀러 도서에 대한 판매 집중은 더욱 두드러졌으며, 유명 저자의 도서와 기획력이 우수한 출판사가 출간한 도서가 판매를 주도한 한 해였다. 지난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국민 서적'이 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올해에도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한 책으로 등극해, 이 책처럼 베스트셀러의 흐름을 새롭게 바꿀만한 책은 찾지 못했다. 출판사의 사재기 행위도 여러 건 적발돼 그동안 감춰져 왔던 출판계의 검은 부분이 겉으로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빛과 어둠이 명확했던 2013년 출판계를 '키워드' 중심으로 살펴보며 지난 한 해 출판계 이슈들과 흐름을 되짚어 보자.
 

■ 소설
-경제 불황에는 '문학 인기' 속설 적중
 

 
올해 출판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의심할 나위 없이 '소설' 분야였다.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소설 신간이 끊임 없이 발표됐으며,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출간 당일 오프라인 서점에 책을 구매하려는 독자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또 조정래의 『정글만리』, 신경숙의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정유정의 『28』, 김진명의 『고구려 5』, 기욤 뮈소의 『7년 후』,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 등의 소설이 2013년 베스트셀러 차트 상위권에 올라 차트를 온통 '소설밭'으로 만들었다.

이같은 화제의 신간뿐만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와 같이 꾸준히 읽히는 소설까지 차트에 올라 소설 장르는 '인기의 균형'을 이뤘다.

경제 불황에는 '위로'와 '감성'을 자극하는 문학 분야에 대한 인기가 높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 속설이 맞아 떨어진 한 해였다. 또 『정글만리』, 『28』 등과 같이 호흡이 짧은 문장과 입체적인 서사 구조의 '영화 같은 소설'이 독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끈 것으로 나타났다.
 
 
■ 앨리스 먼로
-의외의 인물 노벨 문학상 선정에 '관심 집중'
 

2013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의외의 인물로 선정됐고, 그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 탓에 그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구매하는 국내 독자들도 자연히 늘어난 한 해였다.

지난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기다리는 이들의 눈과 귀가 스웨덴 한림원으로 향했다. 영예는 캐나다 작가로서는 최초이자, 여성 작가로는 열세번 째인 앨리스 먼로에게 돌아갔다. 사실상 장편소설 작가에 비해 홀대 받아 온 단편소설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꽤 반가운 소식이었다.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윙엄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앨리스 먼로는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길 꿈꿨다. 끝없이 쓰고 또 썼지만, 작가로 데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출간했던 때가 서른 일곱의 나이였으니, 그때까지 많은 거절과 좌절이 있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0대 시절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한 먼로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 외에도 『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 『사랑의 경과' 등으로 캐나다의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으로 꼽히는 '총독문학상'을 세 차례 받았다. 국내에는 『떠남』, 『행복한 그림자의 춤』, 『디어 라이프』 등이 출간돼 있어 이 책들이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 발표와 함께 깜짝 화제가 됐었다.
 
 
■ 스타 작가
-국·내외 할 것 없이 연이어 신작 발표
 
이처럼 유명 작가들의 신작이 한꺼번에 발표된 해가 또 있었을까.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알고 있을 만한 유명 작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신작을 발표해 책 애호가들이 눈 돌릴 틈이 없던 한 해였다.
조정래, 공지영, 정유정, 김영하, 김진명, 박완서 등 한국 작가부터 무라카미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 댄 브라운, 파울로 코엘료, 미야베 미유키 등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외국 작가들까지 가세했으니 그야말로 스타 작가들이 출판계를 리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신간 출간종수는 지난해보다 줄어들었지만, 유명 저자들의 출간은 오히려 늘어 났다. 이들이 출간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베스트셀러 중심의 구매행태가 더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 정글만리
- 3년 만에 문학 분야 밀리언셀러 탄생
 

매 해 불황을 거듭하는 출판 시장이지만, 어김 없이 밀리언셀러는 등장했다. 그것도 그동안 척박하기 그지없었던 소설 장르에서 나와서 더욱 의미가 깊다. 조정래의 『정글만리』는 지난 7월 15일 출간돼 12월 9일 총 판매 100만부를 넘겼다. 문학 분야 밀리언셀러로는 『엄마를 부탁해』(2008) 『1Q84』(2009)에 이어 3년 만이다.

이 책은 독특하게 인터넷 연재부터 시작했다. 지난 3월 25일부터 7월 10일까지 매회 원고지 30매 내외 분량으로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됐는데, 100만회 이상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책보다는 인터넷을 가까이 하는 요즈음의 흐름에 맞춘 이 전략은 젊은 세대에도 통했고, 연재를 통해 조정래의 작품을 가슴 깊이 새긴 독자들이 책 구매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 작가는 "최첨단과 언론의 지배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또 글로벌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며 "핸드폰으로 소설을 읽는 세상이다. 작가들은 좋은 작품을 전파하는 매개체를 얻음과 동시에, 수많은 기능으로 작품 전파를 방해하는 수단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정글만리』는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된 중국을 배경으로 돈을 좇아 움직이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과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적 시선을 다룬 작품이다. 조 작가는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20년이 지났다. 내 생각보다 중국은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며 "내가 중국을 무대로 글을 써서 우리 소설도 무대를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중국을 배경으로 택한 이유를 털어놨다. 장기적인 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제 대국이 된 중국이라는 소재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 TV
- TV 등장만으로 판매량 상승?
 
불씨가 꺼져 가는 독서 문화를 살리기 위해 TV가 힘썼으나, 희비가 엇갈렸다. 먼저 2001년 전국에 독서 붐을 일으켰던 MBC <느낌표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야심차게 시작했던 강호동의 북토크쇼 KBS 2TV <달빛 프린스>는 시청률 부진으로 8회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책들은 출판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그 중 특히 배우 이보영이 소개한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한국출판인회의가 교보문고·영풍문고·반디앤루니스·예스24·인터파크도서·알라딘 등 8곳의 서적 판매량을 종합하는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무려 16주간 1위를 차지했다. 이 책의 따뜻한 이야기와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힐링' 코드가 맞아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또한 드라마 <결혼의 여신>과 <주군의 태양>에 등장한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과 일본 그림동화 『폭풍우 치는 밤에』는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천재 화가 이중섭의 편지와 그림을 엮은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은 두 번의 개정판을 낼 정도로 매니아층을 갖춘 책이지만, 드라마에 등장한 후 출간 이래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애잔한 편지글과 그림이 독자들의 공감할 내용을 충분히 갖춰 시너지로 작용했다.

이 같은 현상은 기존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영화의 인기로 인해 원작 도서가 관심을 받았던 현상과는 명확히 다르다. TV에 등장한 것만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받은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기 드라마의 PPL(product placement)을 통해 쉽게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여도, 의도적이거나 매끄럽지 않으면 되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도 있다. 많은 노출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지 못했던 도서도 분명 있었다. 
 
 
■ 사재기
- 출판계 자정 노력에도 여러 차례 적발
 

 
풍문으로만 들려 오던 출판계의 '사재기' 행위가 표면으로 여러 차례 드러났다. 지난 5월 SBS TV 시사프로그램 <현장21>은 출판사 자음과모음에서 출판된 『여울물 소리』와 김연수 작 『파도가 바다에 대한 일이라면』, 백영옥 작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등이 사재기를 통해 베스트셀러를 조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황 작가는 당시 "내 이름을 검색하면 '사재기'라는 말이 동시에 뜰 정도로, 내 책이 출판시장을 어지럽힌 도서로 각인됐다"며 "이 사태가 개인의 불명예로 그칠 수 없는 사회문제임을 절실히 깨달았고, 순위를 조작하기 위해 대행업체까지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며 『여울물 소리』절판을 선언했다. 하지만 출판사는 사재기 의혹을 부인했고, SBS를 상대로 반론보도를 청구하는 소송도 제기했다.

출판계는 사재기 재발 방지를 위해 힘을 모았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 4층 강당에서는 '책 읽는 사회 조성 및 건전한 출판유통질서 확립 자율 협약식'이 열렸다. 협약식에서 출판·유통·소비자·서점·작가단체와 주요서점은 건전한 출판유통 정착을 위해 '책 읽는 사회 조성과 출판 유통질서 확립 세부지침'을 정하고, 이를 성실하게 준수할 것과 선진 독서문화 조성을 위해 베스트셀러 외에 다양한 양서 도서정보를 제공할 것을 협약했다.

하지만 지난 11월 말 인기 자기계발서 레이먼드 조의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관계의 힘』을 비롯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 『콰이어트』 등이 사재기로 적발돼 논란이 됐다. 『여울물 소리』이후 불과 6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해당 책들은 '책 읽는 사회 조성 및 건전한 출판유통질서 확립 자율 협약식' 당시 사재기로 의결한 도서(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3조제1항을 위반)의 경우 모든 서점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바로 집계에서 제외됐다.
 
 
■ 식단
-'몸 만들기'에서 '식습관'으로 관심사 옮겨가
 
살 빼기를 위한 헬스와 운동법, 다이어트 비법을 소개하는 책 일색이었던 건강 분야보다는 식습관을 바꿔 건강한 몸을 만드는 법을 소개한 책들이 인기를 끌었던 한 해였다. 한동안 수요가 많았던 '몸짱' 만들기 책보다는 나구모 요시노리의 『1일 1식』, 마이클 모슬리의 『간헐적 단식법』 등 기존의 식습관과는 다른 새로운 식습관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렇게 건강한 식습관을 제시하는 도서들이 연이어 출간되면서 독자들의 관심사는 효소, 해독주스 등 대체식에 대한 관심으로 넓어져 갔다.

특히 식이요법에 관심이 많은 것은 40~50대 중장년층이라고 여겨졌지만, 올해 <1일 1식>, <간헐적 단식법> 등이 인기를 끌면서 20~30대 독자들도 채식 주스, 효소 등 셀프 식이요법을 시도하는 등 관심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다.
 
 
■ 최인호
- 영원한 청년 작가, 영면에 들다
 

▲ 최인호 작가의 저서 『인생』,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할』 표지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등을 발표하며 '영원한 청년 작가'라고 불리던 최인호가 지난 9월 별세했다. 최 작가는 지난 2008년부터 침샘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최 작가는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가작을 거머쥐며 등단했고, 『상도』 『잃어버린 왕국』 『타인의 방』 『불새』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해 역사소설과 종교소설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10년 2월에는 월간 <샘터>에 34년여간 연재했던 소설 『가족』 연재를 중단하며 사실상 절필의 수순을 밟는 듯 했다.

하지만 2011년 현대인이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의 고리'의 부조리함을 파헤친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하며 원로작가로서의 건재함을 보여줬다.

정부는 고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하고 그를 기렸다. 별세한 작가 중 처음으로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주최한 올해의 아름다운예술인상 대상을 받기도 했다.

 
binna@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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