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사회
술 권하는 사회
  • 황인술
  • 승인 2013.11.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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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생 와이드 철학논술
▲ 황인술 논설위원     © 독서신문
[독서신문] Ⅰ. 생각해보기 

시간의 근본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술이며 취함이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살아가는 존재로 주체는 나인데 나에 대한 변하지 않는 본질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술을 찾으며 그 속에서 쾌락과 자유를 맛본다. 몽테뉴는 술에 대해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했다. 의식하는 나로부터 벗어난 상태로 술은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밤낮없이 며칠 밤을 새우며 술을 먹었다. 우리도 많이 마셔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소중한 쾌락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해야 하는 이유이다. 술 마실 기회가 생기면 거절하지 말아야 하며, 술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할 일이다. 술에 취한다는 것은 자신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며 확실한 시련을 경험하게 하며,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제정신으로 하지 못하는 춤과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우리는 약의 재료가 되는 물질이나 술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일 이것들의 사용을 규칙으로 정하는 소외 장치들이 혁명적 연구를 통해서 뒤집어진다면, 이 사용과 다른 독립적으로 세계 바깥에서 그 자체로 다시 경험되고 복구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 고 했다.
  술을 먹는 사람이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건강한 모습이다. 근심과 답답함과 침울함이 엄습하는 깨지 않는 취기의 고통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이상야릇한 숙취의 쾌감. 시인 김수영은 술을 통해 동물과 같은 본능을 찾아 나섰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하고 시간과 돈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술을 먹으면 그 속에서 뭔가 인정받고 위로받는 삶의 비밀을 열게 될 열쇠를 쥐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일 것이다. 엄혹한 현실이라는 무겁고도 우울한 마음속 비밀에 대해 니체는 다음과 같은 말로 문을 열게 만들어준다.    “매우 건강한 몸을 가졌다면 나는 높고 깊은 사유를 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관찰력이나 판단력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하지도,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침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보다 조금 더 건강하다는 개념과 가치를 알 수 있었으며  아픈 사람들 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마음과 정신을 연마할 수 있었고 참되고 애틋한 경험을 하였다.”
 
▲ 문화체육관광부가 매월 실시하는 '한 달에 한 번 전통시장 가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재래시장인 서울 길음시장을 찾은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이 회식을 하고 있다.     


  술에 대해 들뢰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왜 건강한 삶을 선택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것은 건강한 삶보다는 죽음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건강할 때 술에 취해 죽음의 비밀을 살짝 엿보고 오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죽음은 건강한 시간에 그려볼 수 있는 것이기에. 발효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술이라는 비선형성 속에서, 전혀 발효와 상관없는 견고한 것들과 연결된 선형성 길에서 주체와 자신이 이질화 되어가는 비동일성과 합치되지 못해 대상들과 자신이 괴리되는 모순된 현실은 비극도, 자기 부정도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주체를 잃은 삶 위에 익명성으로 표류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뛰어나고 강인한 건강을 가진 체력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주체 없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술을 먹는다는 것은 건강을 앓는 것이다.
  주체라고 명명된 나와의 동일시는 상상 속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환각 속에서, 웃음 사라진 우울한 눈빛으로 깊은 물속을 헤매던 이가 문득 깨어나 새벽 공기와 마주치면서, 오직 자신만의 이름으로, 하지만 무명으로 우주 본성으로 되돌아갈 살아있는 시간의 근본을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 먹는 것이 술이며 취함이다.

Ⅱ. 생각확대하기
 
1. 공자와 평등
 
  공자는 계씨편(季氏篇) 1장(章)에서 ‘평등’을 거론한다. ‘평등’이 그 시대에도 중요했던 모양이다. 이는 나라의 안위(安危)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몇 명의 사람들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거의 모든 백성들이 가난하게 살게 되면 나라를 지키는 데 무관심하게 되고 나아가 나라가 전복되길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나라가 위험에 빠져도 아무도 위기를 극복하려고 나서지 않게 된다.
  페르시아 침입으로부터 아테네를 지켜낸 힘은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관심에서 시작된다. 이는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로 나타난다. 평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의 힘도 평범한 시민들로부터 나오며 이들 또한 자신의 처자식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고대 로마시대의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파트로네스(Partrones, 지방의 유력자, 후원자, 보호자. 말하자면 그 당시 지역의 유력한 귀족을 나타내는 말)가 있다. 파트로네스는 많은 클리엔테스(Clientes)를 거느린다. 유명한 명장 폼페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도 파트로네스였다.
  클리엔테스는 지지자, 후원자, 피보호자. 파트로네스의 보호와 후원을 받고 그를 지지하는 평민세력을 말한다. 왕이나 황제, 귀족, 기사계급(신흥 세력자, 경제권자들 지칭), 로마시민, 해방노예, 노예 등이 있는 시대에서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는 서로 돕고 지지하는 관계에 속해 있었다. 이 관계는 나라와 나라사이에도 적용이 되어 정복한 땅을 로마는 ‘클리엔테스화’시킨다.
  특이한 것은 ‘해방노예’라는 계급인데 고대 로마에서의 노예는 경제력이나 지식 등을 어느 정도 갖추면 노예에서 해방되어 선거권을 갖는 시민이 될 수 있었다. 교사, 집사, 비서 등은 노예 중에서도 상급이고 능력 있는 노예들은 비싼 돈을 치루면서도 파트로네스들이 서로 데려가려했다. 즉 파트로네스는 자신의 클리엔테스를 도와줄 의무가 있으며 클리엔테스는 자신의 파트로네스를 위해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
  현대와 와서 이와 같은 차별이 없어진 것 같이 보이지만 위와 같은 인간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아직도 존재한다.
 
공자는 계씨편(季氏篇) 1장(章)에서
季氏將伐顓臾하니 冉有季路 見(현)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로소이다.
계씨장벌전유하니 염유계로 見(현)어공자왈, 계씨장유사어전유로소이다.
孔子曰, 求아 無乃爾是過與아 夫顓臾는 昔者에 先王이 以爲東蒙主하시고
공자왈, 구아 무내이시과여아 부전유는 석자에 선왕이 이위동몽주하시고
且在邦域之中矣라 是社稷之臣也이니 何以伐爲리요
차재방역지중의라 시사직지신야이니 하이벌위리요
冉有曰, 夫子欲之언정 吾二臣者는 皆不欲也로소이다.
염유왈, 부자욕지언정 오이신자는 개불욕야로소이다.
孔子曰, 求아 周任이 有言曰, 陳力就列하여 不能者止라 하니 危而不持하고
공자왈, 구아 주임이 유언왈, 진력취렬하여 불능자지라 하니 위이불지하고
顚而不扶이면 則將焉用彼相矣리요 且爾言이 過矣로다
전이불부이면 즉장언용피상의리요 차이언이 과의로다
虎兕出於柙(합)하며 龜玉이 毁於櫝中이면 是誰之過與오 冉有曰, 今夫顓臾는 固而近於費니
호시출어柙(합)하며 귀옥이 훼어독중이면 시수지과여오 염유왈, 금부전유는 고이근어비니
今不取면 後世에 必爲子孫憂하리이다. 孔子曰, 求아 君子는 疾夫舍曰欲之요 而必爲之辭니라
금불취면 후세에 필위자손우하리이다. 공자왈, 구아 군자는 질부사왈욕지요 이필위지사니라
丘也聞하니 有國有家者는 不患寡而患不均하며 不患貧而患不安이라하니
구야문하니 유국유가자는 불환과이환불균하며 불환빈이환불안이라하니
蓋均이면 無貧이요 和면 無寡요 安이면 無傾이니라
개균이면 무빈이요 화면 무과요 안이면 무경이니라
 


계씨(季氏)가 전유(顓臾)를 정벌하려 하니 염유(冉有)와 계로(季路=子路)가 공자를 뵈러 와서 하는 말
  “계씨가 장차 전유에 일을 벌일 것 같습니다.”
공자 :  “구야 그것은 너의 잘못이 없느냐? 전유는 옛날에 선왕이 동몽산의 제주로 삼으셨고, 또 봉지는 노나라 영역 안에 있느니라, 그는 나라의 사직지신인데 어찌 정벌하겠는가?”
염유 : “그 분이 하고자 하는 일이지 저희 두 신하가 모두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로소이다.” 공자 : 주임(周任)이 말하기를 ‘능력을 펴서 지위에 나아가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그만두라’고 하였으니, 위태로운데도 붙잡아 주지 못하며 넘어지는데도 부축해주지 못한다면 장차 저 상(相, 도와주는 신하)을 어디에다 쓰겠느냐? 또 네 말이 잘못되었다. 호랑이와 들소가 우리를 뛰쳐나오며, 거북 등껍질과 옥(玉)이 궤 속에서 훼손됨이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염유 : “지금 전유는 견고하고 비읍에 가까우니 지금 취하지 아니하면 후세에 반드시 자손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공자 : “구야, 군자는 욕망을 솔직히 말하지 않고 언사로 꾸며대는 것을 미워한다. 나(丘)는 들으니, 나라를 소유한 자는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않음을 공평하지 않음을 걱정하고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음을 걱정한다 하였다. 대체로 고르면 가난함이 없고, 화합하면 부족함이 없고 편안하면 기울어짐이 없느니라.”
했다.
 
2.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자유와 평등의 관계
 

근대 이전 시대에는 인간 불평등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사회 그 자체의 근거를 제공하는 우주론 일부로까지 생각되었다. 이러한 생각을 제시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인데, 그는 “자유민과 노예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노예상태가 노예에게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은 명백하다. 마찬가지 이유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한쪽이 더 우수하고 다른 한 쪽이 열등하며, 한쪽이 지배하고 다른 한쪽은 지배 받는다”하고 있다. 인간 불평등을 이렇게 설명하는 경우에는 인간 불평등이 자연적인 동시에 신이 제시한 우주질서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불평등을 개선하거나 불식시킬 어떠한 노력도 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루소는 인간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인 불평등이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나이, 건강, 체력, 신장, 정신능력, 감각 등에 대한 차이를 통해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일종의 약속에 의거하여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정해지거나 적어도 허용되는 것으로, 사회적인 불평등 또는 정치적인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은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반하면서 누리고 있는 여러 가지 특권과 이권, 남보다 많은 재산을 차지하거나, 남보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거나, 남보다 많은 사람을 자신의 권위에 복종시키는 것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불평등 중에서 루소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불평등이다.
  인간에게는 2가지의 심리가 있다. 자유를 누리고 싶은 욕구와 함께 더불어 살고자 하는 욕구. 그러나 이 두 가지 욕구는 결코 동시에 완벽하게 충족 될 수 없다.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면 나의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 나의 자유만 찾을 때에는 결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수 없다. 함께 살아가면서 나의 자유를 찾고자 할 때는 나 자신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억누를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2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는 길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지배하려 한다면 그건 전쟁이다. 홉스가 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서로 양보하며 타협하며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자신의 자유는 더 큰 평화와 자유로운 상태를 위해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포기한 자유만큼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즉, 자유의 일정부분을 포기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택하는 것은 곧 2가지 욕구, 서로 동시에 충족될 수 없는 욕구들이 불완전하게나마 충족되는 순간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문명을 벗어날 수 없는 한 인간들이 추구하는 것은 불완전한 자유와 불완전한 공존이다.
 
민주주의 원리인 자유와 평등

  자유와 평등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요소로, 민주 사회에서 개인 간 상호 관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개념들이다. 앞서 살펴보았지만, 자유와 평등을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상호 보완하면서 민주주의를 끌고 나가는 요소로, 이 두 요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는 성립되기 어렵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란 각 개인이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자신의 욕구에 따라 삶의 조건들을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만일 이러한 자유가 제한되면 보람 있는 삶을 실현할 가능성은 그만큼 위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모든 개인과 집단이 자신들의 욕구 실현만을 주장하거 다른 사람들의 욕구 실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갈등과 충돌만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나아가 각자가 무제한적인 자유를 주장하는 사회에서는 상호간의 다툼 때문에 실제로는 욕구를 실현하기도 어렵게 되고 만다. 따라서 민주주의 아래에서의 자유 경쟁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제약은 사회 구성원, 다시 말해 모든 개인이나 집단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결코 선별적이거나 차별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 출처 : 서유석, 자유와 평등은 양립할 수 있는가.

Ⅲ. 생각 정리하기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12절


1. 『액체근대』(지그문트 바우만)
 
  빈부격차에 의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0.1대 99.9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세계 최고 부자 1000명의 부를 합하면 가난한 25억 명의 재산을 전부 합친 것의 두 배에 달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은 역사상 최초로 영구기관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지그문트 바우만, 이일수 역, 『액체근대』, 강, 2009, 22쪽.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암묵적 전제들 네 가지
- 경제성장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 영구적으로 늘어나는 소비(소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리라).
- 인간들 간의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다.
- 경쟁은 사회 질서의 재생산과 사회 정의의 필요충분조건이다.
 -49쪽.
 
  “프롤레타리아의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게 목표이다. 미국인의 하위 75퍼센트와 전 세계 인구의 하위 95퍼센트가 민족적, 종교적 적개심, 성적인 관습에 관한 논쟁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것이다. 가끔 일어나는 짧은 유혈 전쟁을 포함하여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의사사건(pseudo-events)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주의를 자신들의 절망에서 다른 곳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들은 별로 두려울 일이 없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다투면 부자들이 신이 나서 손을 비벼댈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65쪽
 
2. 술 권하는 사회(현진건)
 
  이 작품은 1920년대 동경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의 절망과 고뇌를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일제 탄압 하에서 모순과 부조리에 직면한 주인공이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무지한 아내를 이해시키는 것도 실패를 한다. 그리고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결론 내린다.
 
작품이해
갈래 : 단편소설. 사실주의소설
성격 : 사회 비판적. 사실적
배경 : 1920년대 서울
시점 : 3인칭 작가 관찰자시점
주제 : 일제 강점기의 모순된 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
출전 : 개벽(1921)
인물의 성격
남편 : 동경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으로 현실에 적응을 못하며 경제적으로도 무능하다. 현실을 개탄하며 술주정을 하면서 방황한다.
아내 : 배움은 적지만 순종적인 여인이다. 현실감각이 부족하며 지성적인 면에서 남편과 많은 격차를 느껴 안타까워하는 인물이다.
 
작품 줄거리
  남편을 기다리며 바느질을 하던 아내는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피가 난다. 손가락을 오락지로 매어두려고 해도 오락지가 손에 잡히지 않는데 아무도 묶어줄 사람이 없다. 새벽 1시가 넘었어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남편과 결혼생활은 7,8년 되었어도 같이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결혼 하자마자 동경으로 유학을 가더니 돌아와서는 돈벌이는커녕 돌아다니기만 하고 집에 있는 돈이나 쓴다. 남편만 돌아오면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점차 무너지고 있지만 그래도 남편을 기다린다. 그런 남편이 2시가 넘어 만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행랑할멈의 도움으로 간신히 방 안으로 모셔왔지만 남편은 벽에 기대며 쓰러진다. 옷을 벗기려고 해도 잘 벗겨지지가 않아 아내는 남편에게 술 권하는 사람을 원망한다. 그러자 남편은 사회가 자신에게 술을 마시게 했다고 부조리한 조선 사회를 개탄한다. 그러나 아내는 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 하고 그런 아내를 남편은 답답해한다. 그리고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절망한 아내는 혼자 말로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하고 중얼거린다.
발단 : 바느질을 하면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전개 : 아내의 회상-결혼 후 남편과 다정하게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다.
위기 : 만취되어 돌아온 남편
절정 : 술에 취한 남편은 자신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 부조리한 조선 사회라고 한탄함.
결말 : 말귀를 알아듣지 못 하는 아내에게 답답해 하다가 남편이 집을 나가버림.

Ⅳ. 생각찾아보기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를 밝히고, 둘째, 우리 사회에 내재된 불평등의 사례를 제시한 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황인술 논설위원(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참고
술 권하는 사회<전문>-현진건
 
  “아이그, 아야.”
  홀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바늘 끝이 왼손 엄지손가락 손톱 밑을 찔렸음이다. 그 손가락은 가늘게 떨고 하얀 손톱 밑으로 앵도(櫻桃)빛 같은 피가 비친다. 그것을 볼 사이도 없이 아내는 얼른 바늘을 빼고 다른 손 엄지손가락으로 그 상처를 누르고 있다. 그러면서 하던 일가지를 팔꿈치로 고이고이 밀어 내려놓았다.
  이윽고 눌렀던 손을 떼어 보았다. 그 언저리는 인제 다시 피가 아니 나려는 것처럼 혈색(血色)이 없다. 하더니, 그 희던 꺼풀 밑에 다시금 꽃물이 차츰차츰 밀려온다. 보일 듯 말 듯한 그 상처로부터 좁쌀낟 같은 핏방울이 송송 솟는다. 또 아니 누를 수 없다. 이만하면 그 구멍이 아물었으려니 하고 손을 떼면 또 얼마 아니 되어 피가 비치어 나온다. 인제 헝겊 오락지(실, 헝겊, 종이, 새끼 따위의 길고 가느다란 조각)로 처매는(친친 감아서 매는) 수밖에 없다. 그 상처를 누른 채 그는 바느질고리에 눈을 주었다. 거기 쓸만한 오락지는 실패 밑에 있다. 그 실패를 밀어내고 그 오락지를 두 새끼손가락 사이에 집어 올리려고 한동안 애를 썼다. 그 오락지는 마치 풀로 붙여둔 것 같이 고리 밑에 착 달라붙어 세상 잡혀지지 않는다. 그 두 손가락은 헛되이 그 오락지 위를 긁적거리고 있을뿐이다.
  “왜 집혀지지를 않아!“
  그는 마침내 울듯이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것을 집어 줄 사람이 없나 하는 듯이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안은 텅 비어 있다. 어느 뉘 하나 없다. 호젓한 허영(虛影)만 그를 휩싸고 있다. 바깥도 죽은 듯이 고요하다. 시시로 퐁퐁 하고 떨어지는 수도의 물방울 소리가 쓸쓸하게 들릴 뿐, 문득 전등불이 광채(光彩)를 더하는 듯하였다. 벽상(壁上)에 걸린 괘종(掛鍾)의 거울이 번들하며, 새로 한 점을 가리키려는 시침(時針)이 위협하는 듯이 그의 눈을 쏜다. 그의 남편은 그때껏 돌아오지 않았었다.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된 지는 벌써 오랜 일이다. 어느덧 칠판 년이 지났으리라. 하건만 같이 있어 본 날을 헤아리면 단 일 년이 될락말락 한다. 막 그의 남편이 서울서 중학을 마쳤을 제 그와 결혼하였고, 그러자마자 고만 동경(東京)에 부급(타향으로 공부하러 감)한 까닭이다. 거기서 대학까지 졸업을 하였다. 이 길고 긴 세월에 아내는 얼마나 괴로웠으며 외로웠으랴! 봄이면 봄, 겨울이면 겨울, 웃는 꽃을 한숨으로 맞았고 얼음 같은 베개를 뜨거운 눈물로 데웠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쓸쓸할 제, 얼마나 그가 그리웠으랴! 하건만 아내는 이 모든 고생을 이를 악물고 참았었다. 참을 뿐이 아니라 달게 받았었다. 그것은 남편이 돌아오기만 하면! 하는 생각이 그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준 까닭이었다.
  남편이 동경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가 무엇인가? 자세히 모른다. 또 알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어찌하였든지 이 세상에 제일 좋고 제일 귀한 무엇이라 한다. 마치 옛날 이야기에 있는 도깨비의 부자 방망이 같은 것이어니 한다. 옷 나오라면 옷 나오고, 밥 나오라면 밥 나오고, 돈 나오라면 돈 나오고...... 저 하고 싶은 무엇이든지 청해서 아니 되는 것이 없는 무엇을, 동경에서 얻어 가지고 나오려니 하였었다. 가끔 놀러오는 친척들이 비단 옷 입은 것과 금지환(金指環/ 금지환 : 금반지) 낀 것을 볼 때에 그 당장엔 마음 그윽이 부러워도 하였지만 나중엔 ‘남편만 돌아오면......’ 하고 그것에 경멸하는 시선을 던지었다.
  남편이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나가고 두 달이 지나간다. 남편의 하는 행동이 자기의 기대하던 바와 조금배치(背馳/ 서로 반대가 되어 어긋남)되는 듯하였다. 공부 아니한 사람보다 조금도 다른 것이 없었다. 아니다, 다르다면 다른 점도 있다. 남은 돈벌이를 하는데 그의 남편은 도리어 집안 돈을 쓴다. 그러면서도 어디인지 분주히 돌아다닌다. 집에 들면 정신없이 무슨 책을 보기도 하고 또는 밤새도록 무엇을 쓰기도 하였다.
  ‘저러는 것이 참말 부자 방망이를 맨드는 것인가 보다.’
  아내는 스스로 이렇게 해석한다.
  또 두어 달 지나갔다. 남편의 하는 일은 늘 한 모양이었다. 한 가지 더한 것은 때때로 깊은 한숨을 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무슨 근심이 있는 듯이 얼굴을 펴지 않았다. 몸은 나날이 축이 나 간다.
  “무슨 걱정이 있는고?“
  아내는 따라서 근심을 하게 되었다. 하고는 그 여윈 것을 보충하려고 갖가지로 애를 썼다. 곧 될 수 있는 대로 그의 밥상에 맛난 반찬가지를 붙게 하며 또 고음(고기나 생선을 푹 쌂은 국) 같은 것도 만들었다. 그런 보람도 없이 남편은 입맛이 없다 하며 그것을 잘 먹지도 않았다. 또 몇 달이 지나갔다. 인제 출입을 뚝 끊고 늘 집에 붙어 있다. 걸핏하면 성을 낸다. 입버릇 모양으로 화난다, 화난다 하였다.
  어느 날 새벽, 아내가 어렴풋이 잠을 깨어, 남편의 누웠던 자리를 더듬어 보았다. 쥐이는 것은 이불자락뿐이다. 잠결에도 조금 실망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잃은 것을 찾으려는 것처럼, 눈을 부시시 떴다. 책상 위에 머리를 쓰러뜨리고 두 손으로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흐릿한 의식이 돌아옴에 따라, 남편의 어깨가 들썩들썩 움직임도 깨달았다. 흑 흑 느끼는 소리가 귀를 울린다. 아내는 정신을 바짝 차리었다. 불현듯이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아내의 손은 가볍게 남편의 등을 흔들며 목에 걸리고 나오지 않은 소리로,
  “왜 이러고 계셔요.“
라고 물어 보았다.
  “......“
  남편은 아무 대답이 없다. 아내는 손으로 남편의 얼굴을 괴어들려고 할 즈음에, 그것이 뜨뜻하게 눈물에 젖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한 두어 달 지나갔다. 처음처럼 다시 출입이 자주로웠다. 구역이 날 듯한 술냄새가 밤늦게 돌아오는 남편의 입에서 나게 되었다. 그것은 요사이 일이다. 오늘 밤에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초저녁부터 아내는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남편을 고대고대하고 있었다. 지루한 시간을 속히 보내려고 치웠던 일가지를 또 꺼내었다. 그것조차 뜻같이 아니 되었다. 때때로 바늘이 헛되이 움직이었다. 마침내 그것에 찔리고 말았다.
  “어데를 가서 이때껏 오시지 않아!“
  아내는 이제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짜증을 내었다. 잠깐 그를 떠났던 공상과 환영이 다시금 그의 머리에 떠돌기 시작하였다. 이상한 꽃을 수놓은, 횐 보(褓) 위에 맛난 요리를 담은 접시가 번쩍인다. 여러 친구와 술을 권커니 잡거니 하는 광경이 보인다. 그의 남편은 미친 듯이 껄껄 웃는다. 나중에는 검은 휘장이 스르르 하는 듯이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더니 낭자(狼藉/ 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러운 모습)한 요리상만이 보이기도 하고 술병 만 희게 빛나기도 하고, 아까 그 기생이 한 팔로 땅을 짚고 진저리를 쳐가며 웃는 꼴이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남편이 길바닥에 쓰러져 우는 것도 보이었다.
  “문 열어라!“
  문득 대문이 덜컥하고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부르는 듯하였다.
  “네.“
  저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급히 마루로 나왔다. 잘못 신은, 발에 아니 맞는 신을 질질 끌면서 대문으로 달렸다. 중문은 아직 잠그지도 않았고 행랑방에 사람이 없지 않지마는 으레 깊은 잠에 떨어졌을 줄 알고 자기가 뛰어 나감이었다. 가느름한 손이 어둠 속에서 희게 빗장을 잡고 한참 실랑이를 한다. 대문은 열렸다.
  밤바람이 선득하게(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있다) 얼굴에 안친다. 문 밖에는 아무도 없다! 온 골목에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검푸른 밤빛이 허연 길 위에 그믈그믈 깃들였을 뿐이었다. 아내는 무엇에 놀란 사람 모양으로 한참 멀거니 서 있었다. 문득 급거히 대문을 닫친다. 마치 그 열린 사이로 악마나 들어올 것처럼.
  “그러면 바람소리였구먼.“
  하고 싸늘한 뺨을 쓰다듬으며 해쭉 웃고 발길을 돌리었다.
  “아니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혹 내가 잘못 보지를 않았나?...... 길바닥에나 쓰러져 있었으면 보이지도 않을 거야.....”
  중간문까지 다다르자 별안간 이런 생각이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대문을 또 좀 열어볼까? 아니야, 내가 헛들었지. 그래도 혹...... 아니야, 내가 헛들었지.“
  망설거리면서도 꿈꾸는 사람 모양으로 저도 모를 사이에 마루까지 올라왔다. 매우 기묘한 생각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에 번쩍인다.
  “내가 대문을 열었을 제 나 몰래 들어오지나 않았나?“
  과연 방안에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사람의 기척이 있다. 어른에게 꾸중 모시러 가는 어린애처럼 조심조심 방문 앞에 왔다. 그리고 문간 아래로 손을 대며 하염없이 웃는다. 그것은 제 잘못을 용서해 주십사 하는 어린애 같은 웃음이었다. 조심조심 방문을 열었다. 이불이 어째 움직움직 하는 듯하였다.
  “나를 속이려고 이불을 쓰고 누웠구먼.“
  하고 마음속으로 소곤거렸다. 가만히 내려앉는다. 그 모양이 ‘이것을 건드려서는 큰일이 나지요.’ 하는듯하였다. 이불을 펄쩍 쳐들었다. 비인 요(침구의 하나. 사람이 앉거나 누울 때 바닥에 깐다)가 하얗게 드러난다. 그제야 확실히 아니 온 줄 안 것처럼,
  “아니 왔구먼, 안 왔어!“
라고 울듯이 부르짖었다.
  남편이 돌아오기는 새로 두 점이 훨씬 지난 뒤였다. 무엇이 털썩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잇달아,
  “아씨, 아씨!“
라고 부르는 소리가 귀를 때릴 때에야 아내는 비로소 아직도 앉았을 자기가 이불 위에 쓰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기실, 잠귀 어두운 할멈이 대문을 열었으리만큼 아내는 깜박 잠이 깊이 들었었다. 하건만 그는 몽경(夢境/ 꿈의 세계. 꿈속)에서 방황하는 정신을 당장에 수습하였다. 두어 번 얼굴을 쓰다듬자 불현듯 밖으로 나왔다.
  남편은 한 다리를 마루 끝에 걸치고 한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워있다. 숨소리가 씨근씨근 한다. 막 구두를 벗기고 일어나 할멈은 검붉은 상을 찡그려 붙이며,
  “어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세요.“
라고 한다.
 “응, 일어나지.”
  나리는 혀를 억지로 돌리어 코와 입으로 대답을 하였다. 그래도 몸은 꿈적도 않는다. 도리어 그 개개풀린(졸리거나 술에 취해서 눈에 정기가 흐려진) 눈을 자려는 것처럼 스르르 감는다. 아내는 눈만 비비고 서 있다.
  “어서 일어나셔요. 방으로 들어가시라니까.“
  이번에는 대답조차 아니 한다. 그 대신 무엇을 잡으려는 것처럼 손을 내어젓더니,
  “물, 물, 냉수를 좀 주어.“
라고 중얼거렸다.
  할멈은 얼른 물을 따라 이취자(泥醉者/ 술에 많이 취한 사람)의 코밑에 놓았건만, 그 사이에 벌써 아까 청(請)을 잊은 것같이 취한 이는 물을 먹으려고도 않는다.
  “왜 물을 아니 잡수셔요.“
곁에서 할멈이 깨우쳤다.
  “응 먹지 먹어.“
하고, 그제야 주인은 한 팔을 짚고 고개를 든다. 한꺼번에 물 한 대접을 다 들이켜 버렸다. 그리고는 또 쓰러진다.
  “에그, 또 눕네.“
하고, 할멈은 우물로 기어드는 어린애를 안으려는 모양으로 두 손을 내어민다.
  “할멈은 그만 가 자게.“
주인은 귀찮다는 듯이 말을 한다.
이를 어찌해, 하는 듯이 멀거니 서 있는 아내도, 할멈이 고만 갔으면 하였다. 남편을 붙들어 일으킬 생각이야 간절하였지마는, 할멈이 보는데 어찌 그럴 수 없는 것 같았다. 혼인 한 지가 칠팔 년이 되었으니 그런 파수(破羞/ 기간)야 되었으련만 같이 있어 본 날을 꼽아보며, 그는 아직 갓 시집 온 색시였다.
  ‘할멈은 가 자게.’
란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입술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마음 그윽이 할멈이 돌아가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좀 일으켜 드려야지.”
가기는커녕, 이런 말을 하고, 할멈은 선웃음을 치면서 마루로 부득부득 올라온다. 그 모양은 마치, ‘주인 나리가 약주가 취하시거든 방에까지 모셔다 드려야 제 도리에 옳지요,’ 하는 듯하였다.
  “자아, 자아.“
할멈은 아씨를 보고 히히 웃어가며, 나리의 등 밑으로 손을 넣는다.
  “왜 이래, 왜 이래. 내가 일어날 테야.“
하고, 몸을 움직이더니, 정말 주인이 부시시 일어난다. 마루를 쾅쾅 눌러 디디며, 비틀비틀, 곧 쓰러질 듯한 보조(步調)로 방문을 향하여 걸어간다. 와지끈하며 문을 열어젖히고는 방안으로 들어간다. 아내도 뒤따라 들어왔다. 할멈은 중간 턱을 넘어설 제, 몇 번 혀를 차고는, 저 갈 데로 가 버렸다.
  벽에 엇비슷하게 기대어 있는 남편은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의 말라붙은 관자놀이(귀와 눈 사이의 태양혈이 있는 곳)에 펄떡거리는 푸른 맥(맥박. 정맥에 일어나는 주기적인 운동)을 아내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남편 곁으로 다가온다. 아내의 한손은 양복 깃을, 또 한 손은 그 소매를 잡으며 화(和)한 목성으로,
  “자아, 벗으셔요.“
하였다.
  남편은 문득 미끄러지는 듯이 벽을 타고 내려앉는다. 그의 쭉 뻗친 발끝에 이불자락이 저리로 밀려간다.
  “에그, 왜 이리 하셔요. 벗자는 옷은 아니 벗으시고.“
  그 서슬에 넘어질 뻔한 아내는 애닯게 부르짖었다. 그러면서도 같이 따라 앉는다. 그의 손은 또 옷을 잡았다.
  “옷이 구겨집니다. 제발 좀 벗으셔요.“
라고 아내는 애원을 하며, 옷을 벗기려고 애를 쓴다. 하나, 취한 이의 등이 천근(千斤)같이 벽에 척 들러붙었으니 벗겨질 리가 없다. 애를 쓰다쓰다 옷을 놓고 물러앉으며,
  “원 참, 누가 술을 이처럼 권하였노.“
라고 짜증을 낸다.
  “누가 권하였노? 누가 권하였노? 흥 흥.“
남편은 그 말이 몹시 귀에 거슬리는 것처럼 곱삶는다.
  “그래, 누가 권했는지 마누라가 좀 알아내겠소?“
하고 껄껄 웃는다. 그것은 절망의 가락을 띤 쓸쓸한 웃음이었다. 아내도 따라 방긋 웃고는 또 옷을 잡으며,
  “자아, 옷이나 먼지 벗으셔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요. 오늘 밤에 잘 주무시면 내일 아침에 일으켜 드리지요.“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야. 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어. 할 말이 있거든 지금 해!“
  “지금은 약주가 취하셨으니, 내일 약주가 깨시거든 하지요.“
  “무어? 약주가 취해서?“
하고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며,
  “천만에, 누가 술이 취했단 말이요. 내가 공연히 이러지, 정신은 말똥말똥 하오. 꼭 이야기하기 좋을 만해. 무슨 말이든지...... 자아.”
  “글쎄, 왜 못 잡수시는 약주를 잡수셔요. 그러면 몸에 축이 나지(축나다 : 몸이 약해져서 살이 빠지다)않아요.“
하고 아내는 남편의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씻는다. 이취자(泥醉者)는 머리를 흔들며,
  “아니야, 아니야, 그런 말을 듣자는 것이 아니야.“
하고 아까 일을 추상하는 것처럼, 말을 끊었다가 다시금 말을 이어,
  “옳지, 누가 나에게 술을 권했단 말이요? 내가 술이 먹고 싶어서 먹었단 말이오?“
 “자시고 싶어 잡수신 건 아니지요. 누가 당신께 약주를 권하는지 내가 알아낼까요? 저...... 첫째는 화증이 술을 권하고 둘째는 ‘하이칼라’(서양의 근대 유행을 따르는 사람)가 약주를 권하지요.“
아내는 살짝 웃는다. ‘내가 어지간히 알아맞혔지요.’ 하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고소(苦笑/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한다.
  “틀렸소, 잘못 알았소. 화증이 술을 권하는 것도 아니고, ‘하이칼라’가 술을 권하는 것도 아니오. 나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따로 있어. 마누라가, 내가 어떤 ‘하이칼라’한테나 홀려 다니거나, 그 ‘하이칼라’가 늘 내게 술을 권하거니 하고 근심을 했으면 그것은 헛걱정이지. 나에게 ‘하이칼라’는 아무 소용도 없소. 나의 소용은 술뿐이요. 술이 창자를 휘돌아, 이것 저것을 잊게 맨드는 것을 나는 취(取)할 뿐이오.“
하더니, 홀연 어조를 고쳐 감개무량하게,
 “아아, 유위유망(有爲有望/ 일을 계획하거나 소망하는 바가 있다)한 머리를 ‘알코올’로 마비 아니시킬 수 없게 하는 그것이 무엇이란 말이요.“
하고, 긴 한숨을 내어 쉰다. 물큰물큰한(물근물근한 : 냄새가 한꺼번에 풍기는) 술 냄새가 방안에 흩어진다. 아내에게는 그 말이 너무 어려웠다. 고만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슨 벽이 자기와 남편 사이게 깔리는 듯하였다. 남편의 말이 길어질 때마다 아내는 이런 쓰디쓴 경험을 맛보았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윽고 남편은 기막힌 듯이 웃는다.
  “흥 또 못 알아듣는군. 묻는 내가 그르지, 마누라야 그런 말을 알 수 있겠소. 내가 설명해 드리지. 자세히 들어요.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화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 났더라면 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나......“
  사회란 무엇인가? 아내는 또 알 수가 없었다. 어찌하였든 딴 나라에는 없고 조선에만 있는 요릿집 이름이어니 한다.
  “조선에 있어도 아니 다니면 그만이지요.”
  남편은 또 아까 웃음을 재우친다.(재우치다 : 어떤 행동이 잇따라 진행되다.) 술이 정말 아니 취한 것같이 또렷또렷한 어조로,
 “허허, 기막혀. 그 한 분자(分子)된 이상에야 다니고 아니 다니는 게 무슨 상관이야. 집에 있으면 아니 권하고, 밖에 나가야 권하는 줄 아는가 보아. 그런게 아니야...... 무슨 사회 사람이 있어서 밖에만 나가면 나를 꼭 붙들고 술을 권하는 게 아냐...... 무어라 할까...... 저 우리 조선 사람으로 성립된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아니 못 먹게 한단 말이요. ...... 어째 그렇소? ...... 또 내가 설명을 해 드리지. 여기 회를 하나 꾸민다 합시다. 거기 모이는 사람놈 치고 처음은 민족을 위하느니, 사회를 위하느니 그러는데, 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으니 아니하는 놈이 하나도 없어. 하다가 단 이틀이 못 되어 단 이틀이 못되어......“
한층 소리를 높이며 손가락을 하나씩 둘씩 꼽으며,
  “되지 못한 명예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내 권리가 많으니 네 권리 적으니...... 밤낮으로 서로 찢고 뜯고 하지, 그러니 무슨 일이 되겠소. 회(會)뿐이 아니라, 회사이고 조합이고...... 우리 조선놈들이 조직한 사회는 다 그 조각이지.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요.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적이 정신이 바로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술밖에 먹을 게 도무지 없지. 나도 전자에는 무엇을 좀 해 보겠다고 애도 써 보았어. 그것이 모두 수포야. 내가 어리석은 놈이었지. 내가 술을 먹고 싶어 먹는 게 아니야. 요사이는 좀 낫지마는 처음 배울 때에는 마누라도 아다시피 죽을 애를 썼지. 그 먹고 난 뒤에 괴로운 것이야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먹은 것이 다 돌아 올라오고...... 그래도 아니 먹은 것 보담 나았어. 몸은 괴로워도 마음은 괴롭지 않았으니까. 그저 이 사회에서 할 것은 주정꾼 노릇밖에 없어......“
  “공연히 그런 말 말아요. 무슨 노릇을 못해서 주정꾼 노릇을 해요! 남이라서.......”
  아내는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 생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흥분이 되어 열기(熱氣) 있는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그는 제 남편이 이 세상에 가장 거룩한 사람이어니 한다. 따라서 어느 뉘보다 제일 잘 될 줄 믿는다. 몽롱하나마 그의 목적이 원대하고 고상한 것도 알았다. 얌전하던 그가 술을 먹게 된 것은 무슨 일이 맘대로 아니 되어 화풀이로 그러는 줄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러나 술은 노상 먹을 것이 아니다. 그러면 패가망신(집안의 재산을 다 써 없애고 몸을 망침)하고 만다. 그러므로 하루 바삐 그 화가 풀리었으면, 또다시 얌전하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떠날 때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이 꼭 올 줄 믿었다. 오늘부터는, 내일부터는...... 하건만, 남편은 어제도 술이 취하였다. 오늘도 한 모양이다. 자기의 기대는 나날이 틀려간다. 좇아서 기대에 대한 자신도 엷어간다. 애닯고 원(寃/ 원망)한 생각이 가끔 그의 가슴을 누른다. 더구나 수척해 가는 남편의 얼굴을 볼 때에 그런 감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지금 저도 모르게 흥분한 것이 또한 무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못 알아듣네그려. 참, 사람 기막혀. 본 정신 가지고는 피를 토하고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하지, 하루라도 살 수가 없단 말이야. 흉장(胸腸/ 가슴)이 막혀서 못 산단 말이야. 에엣, 가슴 답답해.“
라고 남편은 소리를 지르고 괴로와서 못 견디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미친 듯이 제 가슴을 쥐어뜯는다.
  “술 아니 먹는다고 흉장이 막혀요?“
  남편의 하는 짓은 본체만체하고 아내는 얼굴을 더욱 붉히며 부르짖었다. 그 말에 몹시 놀랜 것처럼 남편은 어이없이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 다음 순간에는 말할 수 없는 고뇌(苦惱)의 그림자가 그의 눈을 거쳐 간다.
  “그르지, 내가 그르지. 너 같은 숙맥(菽麥/ 너무 순진하여서 숫기가 없다는 뜻)더러 그런 말을 하는 내가 그르지. 너한테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으려는 내가 그르지. 후우.“
스스로 탄식한다.
  “아아 답답해!“
  문득 기막힌 듯이 외마디 소리를 치고는 벌떡 몸을 일으킨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한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하였던고?’ 아내는 불시에 후회하였다. 남편의 저고리 뒷자락을 잡으며 안타까운 소리로,
  “왜 어디로 가셔요. 이 밤중에 어디를 나가셔요. 내가 잘못하였습니다. 인제는 다시 그런 말을 아니 하겠습니다. 그러게 내일 아침에 말을 하자니까......“
  “듣기 싫어, 놓아, 놓아요.”
하고 남편은 아내를 떠다 밀치고 밖으로 나간다. 비틀비틀 마루 끝까지 가서는 털썩 주저앉아 구두를 신기 시작한다.
  “에그, 왜 이리 하셔요. 인제 다시 그런 말을 아니한대도......”
  아내는 뒤에서 구두 신으려는 남편의 팔을 잡으며 말을 하였다. 그의 손을 떨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담박(단박. 그 자리에서 바로)에 눈물이 쏟아질 듯하였다.
  “이건 왜 이래, 저리고 가!“
배앝는 듯이 말을 하고 휙 뿌리친다. 남편의 발길이 뚜벅뚜벅 중문에 다다랐다. 어느덧 그 밖으로 사라졌다. 대문 빗장소리가 덜컥 하고 난다. 마루 끝에 떨어진 아내는 헛되어 몇 번,
  “할멈! 할멈!“
하고 불렀다. 고요한 밤공기를 울리는 구두소리는 점점 멀어간다. 발자취는 어느덧 골목 끝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시금 밤은 적적히 깊어간다.
  “가버렸구먼, 가버렸어!“
  그 구두 소리를 영구히 아니 잃으려는 것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는 아내는 모든 것을 잃었다 하는 듯이 부르짖었다. 그 소리가 사라짐과 함께 자기의 마음도 사라지고, 정신도 사라진 듯하였다. 심신이 텅 비어진 듯하였다. 그의 눈은 하염없이 검은 밤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 사회란 독(毒)한 꼴을 그려보는 것같이.
  쏠쏠한 새벽바람이 싸늘하게 가슴에 부딪친다. 그 부딪치는 서슬에 잠 못 자고 피곤한 몸이 부서질 듯이 지긋지긋하였다. 죽은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해쓱한 얼굴이 경련적으로 떨며 절망한 어조로 소근거렸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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