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깊이와 활기를 더해주는 ‘지적 향연’ - 『장미의 이름』(움베르트 에코 著)
작품에 깊이와 활기를 더해주는 ‘지적 향연’ - 『장미의 이름』(움베르트 에코 著)
  • 독서신문
  • 승인 2013.11.2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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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안 나오는 원작 이야기 <12>
▲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소설 『장미의 이름』 표지, 영화 포스터(왼쪽부터)    

 
 
 
[독서신문] 『장미의 이름』은 무척이나 어려운 소설이다. 소설 곳곳에 작가의 인문학적 소양이 넘쳐흐른다. 읽다보면 소설을 읽는 건지, 교재를 읽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서양의 성당 구조에 대한 고찰이라던지, 수사들의 수행에 대한 이야기, 갖가지 종교철학과 사회철학 등등….

참고로 필자는 같은 작가의 『푸코의 추』를 읽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일이라, 철없는 시절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자위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은근히 부끄러운 일이다.

『장미의 이름』은 『푸코의 추』보다는 조금 더 쉬운 편이지만(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필자는 그건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려운 건 어려운 거다.

비슷한 계열의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코 빅토르 위고를 꼽겠다. 지난 『레미제라블』 기사에서 언급한 적도 있지만 빅토르 위고도 이런 지적 소양은 넘쳐흐르는 작가라서, 역시 소설과 교재가 반반 섞인 느낌은 마찬가지다. 『노트르담의 꼽추』 같은 경우는 그 해박한 건축학 지식에 짓눌려서 본 이야기를 제대로 못 즐긴 측면도 없지 않다. 또 그뿐이랴. 알랭 드 보통의 일부 소설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미셸 리오의 『불확정성의 원리』 같은 소설은 아예 대화가 비현실적으로 가득차 있다. 킬러 주인공과 저격 대상 여자의 대화가 현대 철학과 현대 과학, 심리학, 뇌구조학 등을 넘나든다. 보통 지식 범위를 가지고서는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도대체 이 작가가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설정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작가는 말한다. “그게 소설 아닙니까?”

유럽 대륙 출신 작가들의 이런 지적 만찬은 역시나 그 지역 출신들에서만 유난히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르네상스 출신, 근대 문명의 효시 지역이라는 자부심이 가득차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독서 폭이 좁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일본 출신 작가들에게서 이 정도의 침작은 보기 힘들다.
 
영화산업은 분명히 문학과는 궤도를 달리 한다. 초창기의 스토리텔링 영화들은 점점 사라져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해가 갈수록 ‘천문학적’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대형 자본이 투입되어감에 따라 점점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영화 산업이 문학을 본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출판계에 오래 몸 담았던 필자의 한 지인은 “내가 본 마지막 문학적 영화는 <대부>야”라고 토로했다. 1972년도 작품 말이다.

이런 측면이 아니더라도, 앞서 언급한 ‘지적’인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스크린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장미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에게 중세 수도사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중세 성당 건축물들의 구조와 신학적 배치는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숀 코너리가 주연한 <장미의 이름>은 흥미진진한 스릴러물로만 인식되는 건 아닌가 문득 생각해본다. 물론 감독과 배우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져서 작품의 무게감은 그리 가볍지 않다. 보고 나면 뭔가 진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임에는 분명한 것이다. 평단의 평가도 꽤 호의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길이 남는 문학 작품은 커다란 흐름 속에서 하나하나의 부품들이 함께 호흡하기에 그 생명력을 유지해간다. 얼핏, 아주 얼핏 볼 때는 별로 필요없는 것 같은 장치인 이런 ‘지적 향연’은 오히려 작품에 더 깊은 생동감과 활기를 더해준다. 그 친절하고 상세한 작가의 배경설명과 묘사가 독자들에게 절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사제복이 붉은 색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겐 검은 색일 수도 있다. 각자의 상상의 영역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런 걸출한 작품들은 아무튼 독자들에게 ‘각자의 그림’을 그리게 한다는 것이다.

감독이 그려주는 그림과 독자가 상상하는 그림의 차이. 별 게 아닌 것 같아도 그 깊이가 꽤 다르다. 영화라는 장르는 분명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이고 예술의 영역으로도 쳐줄 수 있는 것이지만, 역시나 최고의 스토리텔링은 문학이라는 생각이다.

 / 홍훈표 작가(exomu@naver.com)
 
 
■자유기고가 홍훈표
·연세대에서 경제학 전공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 단막뮤지컬 <버무려라 라디오> 극본 집필
·지촌 이진순 선집 편찬요원
·철학우화집 『동그라미씨의 말풍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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