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복제라는 개념을 철학 개념으로서 접근한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문화와 시대를 넘나드는 비교 연구를 통해 복제의 역사적, 문화적, 철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복제가 왜 우리에게 두려움과 매혹을 선사하는지 탐구한다.
‘복제(copy)'라는 단어의 어원은 '풍부하다, 충분하다, 많다'를 뜻하는 라틴어 코피아(copia)다. 코피아는 풍요의 여신이기도 하다. 인쇄술의 시대를 거쳐 컴퓨터의 시대에 다다른 오늘날, 성행하는 모든 복제 행위는 여전히 코피아 여신을 불러낸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는 복제 행위의 상당수를 풍요가 아니라 절도와 훼손으로 본다.
책은 복제 문화의 기원부터 중세, 산업화 시대, 그리고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추적하며 복제라는 관념 자체가 가변적임을 드러낸다.
저작권법, 상표등록 같은 관점에 갇혀서는 복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저작권법을 어떻게 바꾸자거나, 법률 불복종 운동을 벌이자거나, 법을 초월한 일종의 자유 문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관심사는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있다.
오늘날의 복제 행위를 정의하는 법적 정치적 구조는 다양한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광범위한 모방 과정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따라서 저자는 많은 사회에서 복제를 적대시하고 두려워하는 현상을 논의하고, 이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철학적 사유를 제안한다.
지적재산권 사업이 한껏 과열된 오늘날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에서 복제는 적대시돼 왔다. 하지만 동시에 매혹적이며 본질적임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제와 사본에 둘러싸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아래와 같은 관점에서 탐구하며 답해 나간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복제와 사본에 집착하는 이유는, 우리가 무엇이든 ‘하나 이상’ 만들 수 있으며 ‘하나 이상’ 만들거나 팔거나 살 수 있는 사물에만 관심이 있다는 놀라운 깨달음이야말로 세계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 복제예찬: 자유롭게 카피하기를 권함
마커스 분 지음 | 노승영 옮김 | 홍시 펴냄 | 376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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