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웨이와 베어커, 결별의 이유 - 『위대한 개츠비』(F.스콧 피츠제럴드 著)
캐러웨이와 베어커, 결별의 이유 - 『위대한 개츠비』(F.스콧 피츠제럴드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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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7.0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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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안나오는 원작 이야기 <5>
▲ 왼쪽부터 F.스콧 피츠제럴드, 소설 『위대한 개츠비』 표지, 2013년 개봉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     ⓒ 독서신문

 
 
 
[독서신문] <위대한 개츠비>(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1974년작은 일단 논외로 하자)는 역시 감독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였다.

뛰어난 영상미와 거기에 어울려 떨어지는 음악의 적당함은 원작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데 일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물랑 루즈> 이후 조용하던 바즈 루어만 감독이 이 베스트셀러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는 인상이 들 정도다.(물론 중간에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영화도 있지만 잊혀져가는 영화라 봐도 될 듯하다)

원작도 그랬고, 영화도 그랬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작품이다. 철저히 닉 캐러웨이의 시점으로만 개츠비를 바라본다. 그러다보니 독자 혹은 관객의 가치관에 따라 개츠비는 위대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과연 개츠비는 위대한가?’라는 질문이 서평과 영화평에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드러낸다.

여기서 흔히 간과하는 점이 있다면 바로 닉 캐러웨이와 조던 베이커의 만남이다. 둘의 만남은 그리 비중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둘이 ‘잠시 데이트하는 정도’로 표현될 정도다. 하지만 사실은 둘의 만남과 이별도 꽤 세심하게 배치된 플롯 중 하나다.


우선 개츠비가 캐러웨이에게 내뱉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라는 요지의 말을 되짚어보자.

실제로 개츠비는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가난을 떨쳐냈고, 완전히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이름마저 제이슨 개츠에서 제이 개츠비로 바꾸었다.
결국 이런 개츠비의 강한 의지는 과거에 놓친 연인 데이지를 되찾으려는 맹목적 헌신으로 나타난다. 개츠비의 모습은 과거는 절대 바꿀 수 없다고 인식하던 캐러웨이에겐 상당한 충격을 남겼을 것이다.

한편 조던 베이커는 외로운 여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골프 선수로서 유명할 때도 있었지만 점점 하락세를 그리고 있었다. 부유한 톰 덕분에 사치란 사치는 다 부리고 사는 단짝친구 데이지와 자신이 비교되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녀도 톰의 바람을 눈치챘을 것이고, 그러하기에 자신을 완벽히 보살펴주면서도 자신에게만 충실한 남자를 이상향으로 바랬을 테다.

이런 베이커 앞에 나타난 캐러웨이는 충분히 괜찮은 연인이었다. 대단한 부자는 아니지만, 이는 극복 가능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유능한 증권맨 아닌가! 4년 후에 찾아올 대공황은 그녀의 예상 밖의 일이다. 거기에 캐러웨이는 충분히 사려 깊고 성실하고 충실해 보인다.

그렇게 둘은 차근차근 만남을 이어가지만 결국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피츠제럴드는 왜 그렇게 둘을 이별시켜야만 했을까?

개츠비의 말이 답이 될 것이다. 캐러웨이는 개츠비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모습은 우유부단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캐러웨이를 각성시켰을 것이다. 그런 캐러웨이에게 조던 베이커의 ‘남자를 쥐고 흔들려는 모습’은 거부감을 주었을 공산이 높다.

캐러웨이가 베이커와 헤어질 때 “다시는 연락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은 붙잡기가 싫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제는 당연히 개츠비의 데이지에 대한 맹목적 헌신이다. 하지만 캐러웨이와 베이커의 만남과 이별도 주제와 함께 흘러가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고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즉 둘의 관계는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장치다.

 / 홍훈표 작가(exom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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