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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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다 치고, 무엇이 그를 베스트셀러 보증수표로 만들었는가? 다시 궁금해진다. 풀리지 않는 태엽(무라카미의 작품 중 『태엽 감는 새』가 있음)같은 아리송함이랄까, 끝없는 우물을 파고 또 파다가 오아시스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때로는 혼란스럽게, 때로는 속이 시원하게 국경을 초월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무라카미이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원생이었을 때 학업을 중단한 채 중·일 전쟁에 나갔다. 그런 가족력 때문인지 그는 늘 일본이 침략국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일본의 보기 드문 지성인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졸업 후에는 직장의 울타리를 견디지 못해 독립한 뒤 재즈 카페를 운영하면서 음악과 요리에 묻혀 살았다. 그러던 중 가슴 속에 꿈틀대는 것들을 풀어 쓴 것이 첫 장편 『양들을 둘러싼 모험』이다.
아직껏 문단에 소속되지 않는 등 공식 자리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그가 지난 5월 6일 교토대학 백주년기념관에서 500여명의 팬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2007년 세상을 떠난 임상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씨를 기념하는 자리였다. 무라카미는 “가와이씨가 유일하게 내 작품을 이해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낯가림이 심한 그를 움직이게 한 이유가 분명했던 셈이다.
무라카미 소설의 키워드는 폭력, 죽음, 상실이다. 그는 전쟁, 지진, 원전사고, 옴진리교, 쓰나미 등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모든 사건, 사고를 폭력으로 본다. 1996년 옴진리교 사건을 접한 그는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죽음과 아픔을 담은 인터뷰집 『언더그라운드』를 출간하기도 했다. 작년에 출간된 『1Q84』 역시 옴진리교 사건이 배경이다.
신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는 2011년 3·11 대지진이 모티프가 됐다. 무라카미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이후 다시 한번 리얼리즘을 시도해 봤다”며 문학성에 대해서는 비평가들의 눈을 다소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지역인 미나미산리쿠의 리아스식 해안과 관련이 있는 주인공 이름, 정오각형 모양의 원자력 발전소를 연상시키는 주인공과 4명의 친구. 작품 속에는 원전, 방사능, 쓰나미 등 3·11을 떠올리게 할 만한 표현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 역시 난해한 비유와 상징으로 얽혀 있다. 무라카미는 “소설은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며 “작가의 의도와 어긋난다 해도 내 소설을 느끼는 독자가 있으면 족하다”고 했다.
야구, 요리, 마라톤을 즐기는 ‘평범남’ 무라카미 하루키…. 하지만 행간의 의미를 읽기 위해서는 파고 또 파고 들어야 하는 미묘한 그의 작품 세계. ‘쓰나미’ 같은 그의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자못 흥미롭다.
/ 도쿄(일본) = 이하빈(르포 작가, 동경싱싱아카데미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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