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받지 못하는 것은 죽는 것과 같다 -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 著)
인식받지 못하는 것은 죽는 것과 같다 -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 著)
  • 독서신문
  • 승인 2013.06.1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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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안 나오는 원작 이야기 <4>

 
 
 
[독서신문] 원작을 영화화하겠다는 시도가 난관에 봉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다보니 과제를 부여받은 감독들도 많은 고민을 한다. 최근 개봉작 <위대한 개츠비>나 <레미제라블>처럼 뮤지컬 형식으로 만드는 것도 한 방안이다. 노래의 힘을 빌려 원작의 감동을 전달한다는 시도, 의외로 유용할 때가 많다.

톰 튀크베어 감독은 <향수>를 만들면서 어떤 고민을 했을까? 『향수』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 어떻게 만들어도 비판받을 게 분명했을테니 말이다. 감독의 선택은 ‘나레이션’이었다. 영화 내내 성우 한 명이 ‘친절하게’ 상황 설명을 한다. 여기에 화려한 영상이 더해지니 자칫 ‘잘 만든 영화군’하고 속아 넘어가기 쉽다. 영상화하기 힘든 부분을 직접 ‘언어’로 해결해버렸으니 상황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편리할 수 있었겠다.

하지만 연출력 면에서 의구심을 갖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관객은 이야기를 ‘보러’ 극장을 찾는 것이지, 이야기를 ‘들으러’ 극장을 찾는 것이 아니다. 방대한 이야기를 영화화하기 위한 처절한 시도였겠지만, 오히려 감독 스스로의 부족함을 드러낸 반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런 노력에도 영화는 소설의 가장 중대한 메시지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바로 ‘자존감’의 문제 말이다. 스스로는 아무 냄새가 없는, 하지만 천재적 후각을 가진 그르누이가 마지막에 죽음을 택하는 이유. 영화는 그냥 그르누이의 연쇄살인 행각에 초점이 맞춰져서 아쉬울 지경이다.

그르누이는 시궁창 속에서 존재도 없는 아이로 태어난 인물이다. 온갖 멸시와 구박을 받지만, 향수 제조에 천재성을 발휘하면서 그제야 조금 인정을 받는다.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에 일탈의 길을 걷지만 그것이 그르누이의 인생의 목표였음에 약간이나마 용서는 된다.

끝내 인류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낸 그르누이는 그 향수를 이용해 사형장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그는 그 향수를 이용해 순간이나마 왕, 구세주, 완벽한 남성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살을 선택한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방법으로 말이다.

왜 그르누이는 자살을 택할까? 보통 사람 같으면 그 향수를 갖고 평생을 떵떵거리며 온갖 권력을 다 누리며 살텐데 말이다. 김춘수의 시 「꽃」이 ‘자살의 이유’에 대한 해답을 던져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구절 말이다.
 
그렇다. 그르누이는 자신이 ‘자신이 아닌 존재’로 비치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다만 하나의 몸짓’인 것에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을 펼쳐보자.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 향수를 비웃었다’라는 구절.

그르누이는 ‘최고의 향수’의 덫에 스스로 걸리고 말았다. 향수는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도구였을 뿐인데, 이제 그가 세상에 살아있게 해준 존재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지난번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편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기반 중 하나는 자존감이다. 이 자존감을 상실한 그르누이에게 더 이상 인생의 목표는 없었을 것이다.

 
■ 자유기고가 홍훈표
·연세대에서 경제학 전공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 단막뮤지컬 <버무려라 라디오> 극본 집필
·지촌 이진순 선집 편찬요원
·철학우화집 『동그라미씨의 말풍선』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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