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甲)질
갑(甲)질
  • 황인술
  • 승인 2013.06.1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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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생 와이드 철학논술
▲ 황인술 논설위원     © 독서신문
[독서신문] Ⅰ. 생각해보기

   갑(甲)에 의한 횡포와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을(乙)의 억울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라면 상무, 장지갑 회장, 남양유업, 배상면주가 사건으로 갑과 을의 관계가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바로잡기 어려운 갑과 을의 관계가 우리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그동안 을은 억울함을 하소연하지 못하고 지내왔던 일이다.
  이러한 갑의 횡포에 대해 “막강한 자금력과 정보력을 가진 은행은 금융권의 ‘슈퍼 갑’”,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최악의 ‘갑(甲)질’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 해야”, “매일 갑일 수는 없으니 甲질도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해야지”라는 말들이 뉴스 지면을 채우고 있다.
  드러난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설문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79.5%가 자신을 을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한다. 이는 갑과 을의 문화가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갑은 우월적 지위를 무한정 누리려 하고 을은 억울하고 불리하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을사(乙死)조약이라 한다. 
  아무튼 갑의 횡포가 도를 넘어섰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익을 위해서는 동업자라도 무례하게 대하고, 수치감을 느끼게 하는 폭언과 대책을 세울 시간도 주지 않고 해결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폭력을 일삼는다. 대리점에 대한 상품 밀어내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사람들은 갑(甲)질 한다고 손가락질 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유일자로 일회성 시간을 살아가면서 그에 맞는 품위와 격을 요구하고 요구받는다. 이를 품격이라 한다. 품격이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품위(品位)·기품(氣品)으로 인격을 만든다.
  빌 게이츠와 첫날밤이 어떠했냐고 멜린다 여사에게 물었을 때 멜린다는 “마이크로 소프트” 했다고 했다. 첫날밤이 마이크로(Micro)하고 소프트(Soft)하다는 엉뚱한 대답을 찬찬히 살펴보면 명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첫날밤 분위기에 대해 상스럽지 않고 격(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격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네 격은 어떠한가. 어느 날 힘센 갑이 나타나 甲질하면 인격은 무참히 밟힘을 당하고 만다. 인격이 무참하게 짓밟히면 사람으로 살아갈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오죽하면 자살했겠는가. 갑도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배우자와 가족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친족과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어떤 모습일까?
  세계 최고 수준의 수평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수직사고의 권위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어딘가에 단단히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수평 네트워크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 패러다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직 네트워크의 근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 수도권과 지방, 중앙정부와 지자체, 정부와 국민 관계 또한 여전히 수직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공무원 ‘甲질’ 해도 너무해”,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甲은 정부”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직 네트워크에 숨어 있는 공포의 그림자는 갑(甲)의 오만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지나치게 날뛰고 거만함을 내세워 폭력을 휘두른다면 정의는 사라지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 이제 우리 사회 구석구석 스며있는 방약 무도한 甲질을 걷어내야 한다.
오오, 나의 님이시여,/ 이는 당신께 드리는 나의 축원입니다./ 내 가슴 속에 박혀 있는 가난의 뿌리는 살펴 주시옵소서./ 기쁨과 슬픔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내게 주소서./ 이 몸의 사랑이 당신을 섬기는 데서/ 풍요롭게 열매 맺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결코 가난한 자를 멀리하거나/ 오만한 권력 앞에 무릎 꿇는 일이 없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일상의 덧없는 영위에 내 마음 상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사랑하는 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내게 주소서.
- 타고르, 『기탄잘리』 36.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결코 가난한 자를 멀리하거나/ 오만한 권력 앞에 무릎 꿇는 일이 없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라 했다. 오만한 갑의 힘 앞에 무릎 꿇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경제 민주화가 힘을 얻을 수 있다. 을을 무릎 꿇리는 오만한 갑은 사람에 대한 격을 말할 자격이 없다.

Ⅱ. 생각확대하기
 
1.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가난하지만 즐겁게 살고, 부유하지만 예의를 좋아한다면 멋진 사람 아닌가.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如切與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자왈 가야 미약빈이악 부이호례자야.
자공왈 시운여절여차 여탁여마 기사지위여.
자왈 사야 시가여언시이의 고제왕이지래자.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하면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나 未若貧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자공이 말하였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괜찮으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자 만은 못하다." 하셨다.

子貢曰 詩云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하니 其斯之謂與인저 
  자공이 말하였다. “『시경』에 ‘절단해 놓은 듯 하며, 다시 그것을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며, 다시 그것을 간 듯하다.”하였으니, 이것을 말함일 것입니다.”

子曰 賜也는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자공)는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만 하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주자 올 것(말해주지 않은 것)을 아는구나.”
 * 옥·돌 따위를 갈고 닦아 빛을 낸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학문이나 덕행을 닦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절차탁마(切磋琢磨)는 이 문답에서 유래한다.
- 공자, 『논어』, 학이편, 15장.
 
2. 「송정흥덕지임서(送鄭興德之任序)」
  현감이 낮은 직책이지만, 그래도 한 고을의 주인이네. 한 고을 내 초목, 금수 생명이 어느 것 하나 현감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이 없다네. 하나의 사물이라도 제대로 안정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모두 현감의 책임이니, 하물며 백성이야 어떠하겠는가? 그렇기에 조정에서 크게 쓰이지 못한 선비는 반드시 현감 자리에서 제 뜻을 펴보려고 했었네. 그렇다면 현감이라는 자리가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네.
  옛날에 도잠(陶潛)은 일력(一力)이라는 종을 보내면서, 그 아들을 경계하기를, “이 사람 또한 남의 자식이다. 잘 대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였네. 아아. 이런 마음을 미루어나간다면, 정사에 또한 어긋남이 없을 것이네.
  나의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을 남의 노인에게도 베풀고, 나의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남의 어린아이에게도 베푼다면, 천하를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듯 할 수 있을 것이니, 하물며 한 고을이야 어떠하겠는가? 부디 이 객(客)의 말이 실제와 관련 없다(우활 迂闊/오활 迂闊)고 여기지 말게. 이렇게 한 뒤라야 객의 말이 주인을 저버리지 않고, 주인의 행실이 객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네.
  세상에서는 본래 형벌로 제어하는 것을 현명한 것으로 여기고, 쥐어짜서 긁어모으는 것을 유능한 것으로 여기지만, 이는 내가 감히 알 바가 아니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夫縣宰雖小職。一邑之主也。一邑之內。草木鳥獸之生。無一物命不懸於縣宰。一物失所。皆縣宰之責也。況於民哉。故士之不得大行於世者。必伸其志於縣宰。然則縣宰之責。亦大矣。昔陶潛遣一力。戒其子曰。是亦人子也。可善遇之。嗚呼。推是心。則亦庶幾矣。老吾老。以及人之老。幼吾幼。以及人之幼。天下可運於掌。況一縣乎。幸勿以客之言爲迂也。如此然後。客之言不負於主。主之行無愧於客矣。世固有鉗制爲賢。刮剝爲能者。此則非吾之所敢知也。子以爲何如。
- 주세붕(周世鵬, 1495~1554), 「송정흥덕지임서(送鄭興德之任序)」, 『무릉잡고(武陵雜稿)』 권7.
  
3. 노블레스 오블리주(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
noblesse 귀족 /oblige 어쩔수 없다 ~하게하다
귀족(고귀한 신분, 높은 신분) 이면 꼭 지켜야 할 꼭해야할 일, 의무

1) 노블레스 오블리제란 말의 어원
  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솔선수범과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포에니 전쟁 때에는 전쟁세를 신설, 재산이 많은 원로원들이 더 많은 세금 부담을 감수했다. 그들은 제일 먼저 기부를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레에 돈을 싣고 국고에 갖다 바쳤다. 이것을 본 평민들도 앞 다퉈 세금을 내게 됐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이 나자 전시국채를 발행, 유산계급과 원로원 의원 및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들만 구입토록 했다. 평민들에겐 전비 부담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또 평민들보다 먼저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미덕은 중세와 근대 사회 에서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표본으로 간주됐다.
  한 사회의 상층부가 이렇게 솔선수범하는 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 한다. 프랑스어에서 파생한 이 말은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를 뜻한다.
  경제적 부와 사회적 위세를 독점하는 만큼 이들은 이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제란 상층집단의 규범적 태도이자 전략이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윤리적 덕목과 부의 사회적 환원을 강조해 왔으며, 이것이 다름 아닌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전통을 이뤄왔다

2) 영국의 예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전쟁을 벌일 때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차남 앤드류 왕자가 당시 전쟁에 참전 했었고 헬리콥터에 탑승해서 아르헨티나의 미사일이 영국 전함에 날아오면 헬리콥터로 대신 맞아주는 임무를 맡았다.
  또한 왕위계승 서열 3위인 헤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헬리콥터 전투조종사로 복무했다. 헤리 왕자는 최전방 소총소대장으로 싸우기도 했다.

3) 우리나라의 예
최 부잣집 가훈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셋째,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다섯째,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4.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
 
  젊은 시절부터 사회 고발 소설을 구상했던 위고는 1845년부터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가 16년 만에 망명지인 건지 섬에서 탈고했다. “단테가 시에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을 가지고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 집필 당시에는 제목이 『레 미제르(Les Misères, 비참함)』였지만, 나중에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로 바뀌었다. 주인공 이름 역시 원래는 ‘장 트레장’(Jean Trejean)이었지만, 나중에는 ‘장 발장’(Jean Valjean)으로 바뀌었다.
 
줄거리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던 무렵 장 발장은 홀로 된 누이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부짖는 어린 조카들의 참당한 광경을 그대로 볼 수 없어 한 조각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5년 형을 받는다. 복역 중 장 발장은 누이와 조카들의 굶주림이 걱정되어 탈옥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형별만 누적되어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형기를 마친 후 교도소 생활에서 해방 되어 알프스 산 밑 작은 소도시 디뉘 거리에 나타난다. 그는 누더기 같은 허름한 옷차림,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여인숙과 음식점, 가정집 등을 전전하나 이미 그가 전과자라는 소문이 나돌아 아무도 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교도소에서 조금씩 모은 약간의 돈이 있음에도 매정하게 내쫓긴 것이다. 심지어 개집에서도 사나운 개에게 쫓겨나고 만다. 더 걸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나는 개보다도 못한 신세로구나!’ 탄식하면서 성당의 돌로 만든 의자 위에 쓰려진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일러준 성당 사제관 문을 두드려 미리엘 주교로부터 따뜻한 음식과 쉴 곳을 제공받는다.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과 깨끗한 시트가 깔린 침대에서 쉴 수 있었지만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사제관의 은접시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게 잡혀온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미리엘 주교가 경찰에게 은접시는 그에게 준 것이라 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미리엘 주교는
  “이것을 가져가라, 그리고 정직한 인간이 되어마오. 네 영혼은 내가 사서 하느님께 바쳤다.”고 말하면서 나머지 은촛대까지 얹어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무쇠같이 단단하고 용광로 같이 끓어오르던 장 발장의 증오심과 반항적 기질은 녹아 없어지고 변화된 인간으로 부활하게 된다. 하지만 반성의 눈물을 흘리고 미리엘 주교 집을 나온 장 발장은 다시 유혹에 빠져 가난한 소년이 가지고 있던 은전 한 닢을 도둑질하게 되고 도둑질 한 그 순간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통곡 한다.
  이후 2년여 세월이 흘렀다. 장 발장은 이름을 마드레느라 고치고 과거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게 되며 노력 끝에 공장을 세우고 노동자에게 많은 급여를 주며, 학교와 병원을 짓는 등 사회사업에 힘을 쏟게 된다. 시민들의 존경을 받게 된 마드레느는 시장으로 추대되어 가난한 시민들을 구제하고 보호한다.
  그의 공장 여공 중에 팡틴이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공장에 취직하기 위하여 어린 딸 코제트를 테나르디 부부에게 맡기나 그들은 코제트를 학대하면서 팡틴 부인의 급여를 양육비로 몽땅 빼앗아 간다. 딸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 매춘부로 몸을 팔게 된 그녀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마드레느 시장에게 구출된다.
  마드레느는 코제트도 구해 줄 것을 약속하나 불행히도 장 마르티이유 사건이 일어나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장 마르티이유라는 노인이 앞서 장 발장이 소년의 은화를 훔친 진범으로 몰려 재판을 받게 된 사건이었다. 이 사실을 안 시장 마드레느는 아무 죄도 없이 교도소로 가야 하는 노인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시장의 지위와 영광을 가지고 행복한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장 발장임을 밝히고 벌을 받을 것인가’ 마음속으로 양심과 싸우던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진범이라고 밝힌다. 이 충격으로 팡틴 부인은 숨을 거둔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장 발장은 코제트를 구출하기 위해 작업장에서 교묘히 탈출하여 테나르디 집에서 혹사와 학대받고 있던 코제트를 구출하여 파리 교외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쟈베르 경감에게 추적 당하게 되어 옛날 자신이 도와준 포슐르방 노인의 도움으로 수도원에서 일하게 되고 코제트는 수도원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다.
  이 시기 프랑스에서는 왕당파와 공화당파가 세력을 다투고 있었다. 공화당파 당원인 마리우스 퐁메르시 청년은 공원에서 만난 코제트를 사랑하게 된다. 포슐르방 노인이 죽은 후 장 발장은 코제트를 데리고 수도원을 떠난다.
  1833년 6월 5일 파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폭동 중 장 발장은 쟈베르 경감의 목숨을 구해준다. 끝까지 추적을 거듭하면서 장 발장을 체포하려던 원칙주의자인 쟈베르 경감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장 발장에게 깊은 감동을 느껴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춘다.
  장 발장은 폭동 진압으로 중상을 입고 쓰러진 마리우스 퐁메르시를 등에 업고 하수도를 통해 도피한다. 시가전도 끝나고 마리우스 퐁메르시 상처도 회복되어 코제트와 마리우스 퐁메르시는 결혼한다. 늙고 병든 장  발장은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면서 목숨을 거둔다.
  “너희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아! 빛이 보인다. 나에게 더 가까이 오려므나 나는 즐겁게 숨을 거둘 수 있다.”

Ⅲ. 생각정리하기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 루소    
요약

자유와 평등의 관계
  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 순간부터, 그리고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양식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아차리게 되자마자,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고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광대한 숲은 인간의 땀으로 적셔야 할 들판으로 변했으며, 머지않아 그 들판에서는 수확과 더불어 예속과 비참이 싹트고 증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토지의 점유가 반복되면서 그것은 점차 소유로 전환되었다. 마침내 인간은 탐욕스러운 야심이나 진정한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재산을 늘려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열망 때문에 서로를 해치기 시작했다.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리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사회의 실질적인 창시자다. 말뚝을 뽑아버리고 토지의 경계로 파놓은 도랑을 메우면서 동류의 인간들을 향해 “저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시오. 과일은 모두의 소유이고 땅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당산들은 파멸할 것이오”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죄악과 싸움과 살인, 얼마나 많은 비참과 공포에서 인류를 구제해주었을 것인가?
  그러나 이미 그 무렵에 사태는 더 이상 이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 순간부터, 그리고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양식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아차리게 되자마자,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고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광대한 숲은 인간의 땀으로 적셔야 할 들판으로 변했으며, 머지않아 그 들판에서는 수확과 더불어 예속과 비참이 싹트고 증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마침내 인간은 탐욕스러운 야심이나 진정한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재산을 늘려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열망 때문에 서로를 해치기 시작했다.
  가장 강한 자 또는 가장 궁핍한 자가 그의 힘이나 욕구를 타인의 재산에 대한 일종의 권리로 생각함에 따라 평등은 깨지고 뒤이어 가장 끔찍한 무질서가 초래되었다. 가장 강한 자의 권리와 최초의 점유자의 권리 사이에는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투쟁과 살인에 의해 종식될 수밖에 없었다. 부자는 만인의 적이 되어 홀로 맞서게 되었다. 부자는 절박한 필요에 따라 인간의 정신 속에 일찍이 스며든 적이 없는 가장 교묘한 계획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의 세력 자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하고, 자신의 적대자들을 자신의 방어자들로 만들고, 그 적대자들에게 다른 준칙을 불어넣어 자연법이 자신에게 불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유리한 다른 제도들을 그들에게 부여하는 것이었다.
  “약자를 억압에서 보호하고 야심가를 제지하며 각자에게 소유를 보장해주기 위해 단결합시다.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규칙을 정합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하며, 어느 쪽도 차별하지 않고 강자와 약자를 평등하게 서로의 의무에 따르게 하는, 말하자면 운명의 변덕을 보상하려는 규칙입니다. 요컨대 우리의 힘을 우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돌리지 말고 하나의 최고 권력에 집중시킵시다. 현명한 법률에 따라 우리를 다스리고, 사회의 모든 성원을 보호하고 방위하며, 공동의 적을 물리치고, 영원히 우리를 단합시키는 권력에 집중시킵시다!”
  정치상의 차별은 필연적으로 시민들 간의 차별을 가져온다. 신분과 재산의 극심한 불평등, 정념과 재능의 차이, 무익한 기술과 해로운 기술, 하찮은 학문에서, 이성과 행복과 미덕에 위배되는 무수한 편견이 생겨날 것이다.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말하자면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타인의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철학이나 인간애나 예절이나 고상한 격언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언제나 ‘우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타인에게는 던지되 스스로에게는 묻지 않음으로 우리가 어떻게 기만적이고 경박한 외관, 즉 미덕 없는 명예, 지혜 없는 이성, 행복 없는 쾌락만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자연법을 어떻게 규정하든, 어린애가 노인에게 명령하고 바보가 현명한 사람을 이끌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출처 : 장 자크 루소, 주경복 외 옮김, 『인간 불평등 기원론』, 책세상, 2005.

Ⅳ. 생각 찾아보기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가난하면서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선생님은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물론 훌륭한 사람이지.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겁게 살고, 부유하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못하지 않을까?”
  자공이 다시 말했다. “『시경』에 나오는 ‘옥을 갈고 닦아서 빛을 낸다’는 말은 바로 이 같은 끝없는 인격 도야를 가리키는 것이군요?”
  “너하고는 같이 『시경』을 이야기할 만하구나. 지나간 일을 말했더니 앞으로 다가올 일까지 알아차리는구나!”
  위의 이야기를 참고로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황인술 / 논설위원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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