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고향, 여수
어머님의 고향, 여수
  • 천상국
  • 승인 2007.09.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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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국
  
가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오동도 방파제에 부딪히는 하얀 물거품에 실려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끈적끈적한 금년 여름 날씨를 하루라도 일찍 떨치고 싶은 심정에서 간간히 뿌려지는 안개비를 기다려다는 듯이 기쁨 마음으로 맞으면서 아내와 난 천진스러운 웃음으로 오동도 숲길을 걸었다.

비에 젖은 아내의 머리칼이 오동도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다 바람에 못 이겨 수 없이 흔들리는 뒷모습에서  아주 먼 옛날 나, 어려 을 때 행여 놓칠세라 어머님 치맛자락 부여잡고 칭얼대면서 외가 집에 다녀간 희미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비린내 나는 보따리 한 짐 이고 뭍(남원)으로 시집온 어머니는 순박한 20대 초반 처녀 였다.        

동족상잔 비극 6.25사변을 무사히 넘기고 먹고살기 힘들었던 보릿고개 시절인지라 어머님은 갖은 고생 다 하시면서도 오로지 6남매 배곯이 할까 전전긍긍 하시는데 여념이 없던 터라 좀처럼 친정, 여수를 가지 않으셨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님이 시집오기 전에 이미 돌아가시고 친정에는 외할머니와 오고가는 유일한 혈육이신 오빠(외삼촌) 한분이 계셨다. 지금은 고인이신 외삼촌은 과묵 하셨고 차분한 인상에 정감이 많았던 분으로 기억된다. 여동생(이모) 한분 계셨지만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영영 만날 수 없는 단절된 형제 관계였다. 

오늘은 외종사촌형 큰 아들 결혼식에 참석 하기위해 여수를 찾았다. 물이 아름다워서 여수 인가, 무명 한복 차림 어머님 옷맵시가 고와서 여수 인가. 여수 하면 항상 어머님의 형상이 먼저 그려진다. 이른 아침 오동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푸른 바다는 을씨년스럽기보다는 포근하게 감싸주는 어머님 가슴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고봉산 중턱 몽실몽실 피어오는 연무는 어머님의 따스한 온기에 밀려 이내 금세 사라지고 선명한 자태를 드러내 위엄을 뽐내고 있다.  고봉산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검은 모래, 만성리 해수욕장이 눈에 가물가물 어린 거린다.   

배고픔을 잊은 채 물장구에 정신 빠진 어린 형제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온 어머님은 혼신의 목소리로 소리 쳤다. “애들아 과일 먹고 놀아라.” 손짓하는 어머님의 손은 여인의 손을 넘어 정성의 몸부림 이였다. 주먹만 한 노란 참외를 우리 형제들은 껍질 채 배고픔에 걸신들린 몰골로 게걸스럽게 먹었다. 먹는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먹으라는 어머님의 따뜻한 목소리가 내 귀가에 맴 돌면서 “엄마도 함께 드세요” 이 한 말씀 못한 것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어머님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여생을 삶의 지혜로써 몸소 이겨내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훌륭한 나침반 역할을 해 주셨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날의  영상을 애써 지우기 싫어 동공에 힘을 주어 열었다 슬그머니 닫아보지만 가느다란 선으로 이어졌다 끊어졌다 를 반복 하는 영상은 “여보, 그만 내려갑시다.” 아내 목소리에 놀라 이내 희미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오동도 나무 계단을 한참 내려오니 바위에서 힘겨운 바람을 벗 삼아 낚시하는 강태공들이 있었다.  실낱같은 한 가닥  기대 속에 던져진 낚시 줄을 여러 번 움직이면서 세월의 번뇌를 세찬 바람에 실어 보내는 모습이 예전처럼 보이질 않았다.  찌든 도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우성치는 흉측한 내 모습 보다는 한층 고고한 선비의 자태 였다. 세월의 무거운 짐을 미련 없이 어머님의 고향인 오동도 낚시 줄에 묶어 저 깊은 바다 속에 던져 버리고 싶은 생각은 내 이기의 소치가 아닐 런지, 하염없이 뿌려지는 비, 바람에 내 몸 하나 지탱이 힘들어 부끄러운 마음으로 바위에서 내려섰다.               

예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무렵 바지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대전에 사시는 둘째형 목소리 였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예, 형님 오동도입니다. 어머님 흔적이 있는 오동도 말입니다.” 

천상국  (chun1395@hanmail.net)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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