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기념관을 찾아
제인 오스틴 기념관을 찾아
  • 이재인
  • 승인 2007.09.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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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도 정갈한 옛집
인간의 내면을 충족시켜 주는 것들 중에서 매우 소중한 것이 둘이 있다. 그 하나는 독서요, 그 다음은 여행이다. 독서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있는 자 없는 자 고루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의 경우에는 그 체력과 더불어 많은 돈이 소요되므로 누구나 가볍게 떠날 수가 없다. 한계가 있다.
작가의 고향, 그것도 어려서부터 영화나 연극, 책을 통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진 분들의 생가나 유적지를 탐승하는 일은 정말 기쁜 일이다. 작가에 대한 숭엄함과 존경을 느끼는 경우 그것은 일종의 성스러운 순례 기행이다.

▲ 제인 오스틴 & 기념관의 강당에 있는 그의 영화 포스터 앞에서의 필자     © 독서신문

 
이번 필자의 경우에도 청년 시절에 읽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나를 들뜨게 했다. 주인공들의 섬세한 내면 심리가 문학청년인 나에게 ‘아하, 이렇게 내밀하게 묘사해야만 소설이 되는 것이로구나’하고 깨닫게 했다. 그러니 이 책은 간접적으로 나의 스승인 위대한 책인 셈이다.
오스틴은 영국 귀족들의 생활상을 마치 맑은 자백이의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다. 내내 토종인 한국 소설만을 읽어 그 체질이 몸에 배인 나는 제인 오스틴의 글 또한 드라이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나는 가난과 질병과 전쟁의 참담함으로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나서는 오스틴의 소설이 일종의 사치 놀음에 가깝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문학도인 나에게 이것도 공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당시의 마음이었다. 일종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이었다고 할까?
이렇게 과거의 추억을 지니고 있는 나에게 오스틴의 생가 방문은 정말 꿈같은 현실이었다.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동양의 작은 나라, 그것도 노벨상 수상 작가도 배출하지 못한 나라의 작가로서 제인 오스틴의 사후이지만 그의 정신과 체취와 인간적인 향기에 젖어보는 것은 행운이고 사치이다.

▲ 제인 오스틴 기념관장이 방문객들에게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늘 미소를 잃지 않아 좋았다.     © 독서신문

 
더구나 그것이 일반적인 관광객들에게 둘러싸인 게 아니라 겸손한 자세로 작가들의 삶과 문화와 작품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동행했다는 것이 축복이었다. 시인 김후란 선생, 소설가 전상국, 김용만 선생의 동행은 여행의 격을 한층 높여주었다.
영국의 6월 하순은 선선했다. 물론 인솔자의 북유럽 날씨 정보가 이메일을 통해 날아들었지만 통상적으로 6월말 날씨는 덥고 후덥지근하며 끈끈하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간단한 t셔츠에 긴팔 봄잠바를 지참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어제 셰익스피어 생가를 탐방하는 날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씨였다. 비도 우리나라 가랑비 같았다. 가랑비, 그것도 내리다말다 하니 이곳 런던의 비는 나그네에게는 가늠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니 바바리코트가 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영국의 날씨는 방송에서조차 제대로 예보하지 못하는 갈팡질팡의 날씨라는 것이었다. 언제 비가오고 언제 개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겨우 머리만을 가릴 우산을 지참하는 게 지혜라고 했다. 영국의 우산은 아주 작고 가볍고 간수하기 좋게 만들어진 소형이었다.
우리 일행들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내릴 것 같은 예감 속에 여행 장비를 구비하고 길을 나섰다. 어제 가이드의 설명이 약간 있었다. 그 유명한 옛 발전소의 붉은 벽돌 건물 앞을 버스는 지나가게 되었다.

▲ 제인 오스틴(필적)유고 원고     © 독서신문
200여 년 전에 화력발전소로 사용하던 이 큰 건물이 지금은 영국의 이름난 미술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네 같았으면 건물을 헐었거나 다시 짓는 역사를 치렀을 것인데 이를 리모델링하여 세계적인 미술관, 세계적인 미술상가로 만든 영국인들의 지혜는 배울만한 것이었다.
헐고 뜯고 가 습관화된 우리네 문화와 옛것을 중히 알고 그것을 목숨 걸고 지켜나가는 영국인들의 습성은 대조적이었다. 좋은 일은 원형을 보전하고 지켜 전수시키는 것일 것이다. 내가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선조들의 유물을 그들은 목숨 걸고 지키고 또한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유물은 그것이 비록 전쟁 중에라도 약탈하고 탈취하는 버릇이 몸에 밴 민족이었다.

구약시대 성서에 나오는 다윗의 물맷돌에서 그리스 이탈리아 고대 유물이 모두 런던 대영박물관에 전시 보관되어 있었다. 또한 옛 석조각예술이 하도 신기하고 아름다워 손끝만 대어도 어느 틈엔가 쫓아와 이를 제지하는 영국인들이었다.
우리는 빗속에 막가는 한국인 관광객. 한국인들에게는 여행이 마치 무슨 독일군 훈련 같아 혼자 씁쓸하게 미소했다. 여행이란 알맞게 쉬고 먹고 잠을 자면서 목적에 맞게 천천히 돌아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네 여행은 새벽부터 설쳐대는 문화이다. 어디나, 어느 나라에 가서든지 한국인은 이른 새벽부터 움직인다.

때에 따라서 주먹밥이나 김밥도 등장한다. 좋은 문화라고 보이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는 근성이 때로는 타인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한국여행사의 올바른 문화, 이를 알차고 유익하고 교육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혜이리라.
선진국이라는 나라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이곳 유럽을 지내면서 느꼈다. 옛것의 우수함에 목숨 걸고 지키면서 이를 유지 보수 발전시킴이다. 그리고 제도화된 질서 속에 어느 누구도 이를 거부하지 않고 지키려는 문화가 선진국의 문화라고 느껴졌다. 절대 편리주의에 절대 안전주의가 가져다 준 유럽의 공통적 문화였다.
 
▲ 제인 오스틴의 문학 기념관 세미나 실에서 오른쪽 전옥주(희곡작가) 김후란(시인) 김용만 작가 등이 보인다.     © 독서신문

 
박물관들은 작고 알찬 공간
나 자신도 작은 인장박물관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때로는 방문객들이 왜 이렇게 건물이 작고 협소하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당혹스럽고도 불쾌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유럽 선진국 어느 나라에도 국영박물관이나 국영미술관 이외에 개인이나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박물관들은 아주 작고 아담하고 옹골찬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민의 세금을 걷어다가 우선적으로 크고 위압적인 공간 속에 유물은 없고 무슨 놀이터 같은 뮤지엄은 없다. 단출하고 남루하면 남루한 그대로의 건물에 안전과 실효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박물관들이다. 우리네처럼 일괄적으로 입장료를 받는 곳도 더러 있지만 대체적으로 무료입장이다.

국가와 지역의 정부에서 이를 부담해 주고 시설을 보수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니 자연 업무의 전문성을 지니게 되고 관광산업은 활성화된다. 우리네의 관광지에 가면 관광 상품이 사실은 색다른 게 별로 없다. 특화된 상품이 각 지역마다 달라야만 그것이 팔려나가 국위 선양은 물론 부가가치도 한층 높이게 된다.
유럽 선진국의 뮤지엄은 이들이 아트샵을 활용하여 국부를 축적하고 국가이미지 상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특화된 지역문화가 국가의 브랜드를 높이고 이를 돈과 연계시키는 지혜를 우리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제인 오스틴의 생가는 생각보다 10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비가 줄기차게 내렸고 운전기사가 이곳을 찾아오는데 낯선 인솔이라서 그렇다고 가이드는 양해를 구했다. 안내하는 해설사는 주차장에 나와 반갑게 한국의 작가와 그 일행들을 환영해주었다. 토요일 빗속의 여행객은 우리네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는 곳마다 유럽인들도 많았다.
보고 느끼고 즐기는 그곳 사람들한테도 지식기반이 곧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나 만나는 여행객들. 그들에게는 지도와 카메라와 안내서가 들려있었다. 지금 영국의 제인 오스틴이 살아 있더라도 그의 손에 메모장이나 카메라가 들려 있으리라.

▲ 제인 오스틴이 사용하던 컵과 기념품등     © 독서신문
「캔터베리 이야기」의 작가로서, 찰스 디킨스 ts 엘리엇도 마찬가지였으리라….여행은 애국을 생산해 내는 일이다. 그리고 창조와 재생산을 통해 국가기반을 확실히 하는 각성제이기도하다. 여행이 있는 한, 국가와 독재는 견제를 통해 발전하게 된다.
오늘 오스틴의 집을 찾아왔는데도 한국 유학생 셋이 무엇인가 열심히 기록하고 있었다. 이들에 의해 대한민국의 문화의 격이 한층 고양되고 아름답게 전수되리라는 마음이 훈훈했다. 서투른 영어로 아이스크림 세 개를 사서 선물하는 한국의 동행인이 미덥고 느껍게 생각되었다.
회의실 겸 강당에 들어선 우리에게 마이크 시설도 없이 육성으로 집의 유래와 작가가 생활했던 작가의 집을 유창하게 설명해 나갔다. 집필실, 서재, 거실, 부엌, 정원 그리고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 배경을 덧붙였다. 지붕 서까래와 기둥이 알몸 그대로 겉으로 드러난 채 관광객들의 시선을 이끌었다.
자연 그대로가 하나도 남루하거나 부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그가 살던 집의 협소한 통로, 협소한 공간으로 이동 할 때마다 부딪치는 어깨와 어깨들…….누구하나 눈살을 찌푸리는 순례객은 없었다.

작가의 근면성, 작가의 직관력, 작가의 상상력이 어떻게 이 시대의 테마로 떠올라 왔는가를 알고자 찾아든 순례객들의 눈빛이 형형했다. 그것이 오늘의 영국을 반석 위에 세운 것이다. 그 유명한 「헤리포터」 소설과 영화로 인한 수입이 우리나라 삼성전자의 매출과 같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야기가 돈이 된다는 사실. 전자제품, 선박, 제철만이 돈이 된다는 고정 관념을 깨야한다.
서사도 돈이 되고 연극이나 영화도 돈이 된다. 한류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우수한 두뇌가 어느 한 곳에만 집중되면 안 된다. 무차별의 공격적인 문화. 좋은 것이면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드는 슬기로운 민족이 아니던가? 애니메이션, 음악, 레저 어느 것이든 우리는 21세기 디지털 광장에서 후진할 수 없는 일이다.
영국의 힘. 그들은 「신사」라고 한다. 그러나 신사의 브랜드는 상품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다. 신사라는 단어는 우리식으로 번역하면 「선비」이다. 21세기 선비의 사명은 무엇인가? 나는 그의 소설의 배경이 되는 생가에서 작가로서 이 시대에 무슨 이야기로 젊은이들에게 화두를 열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 제인 오스틴 기념관앞에서 필자와 함께한 아들 이호(문학평론가)     © 독서신문

 
빗속의 오스틴 생가는 조촐했다. 빗속의 온갖 영혼의 색깔을 매달고 서 있는 여름 꽃밭에서 나는 이제 많은 경륜과 무디어짐과 느림에 대하여 묵상하면서 사진 한 컷을 찍었다. 그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 곁에서…….
단순과 복잡의 자매의 성격적 대비 정적과 동적인 비교의 인물 속에서 우리는 인생을 배운다. 한국소설이 이처럼 대우받고 한국 작가가 대접받는 영국, 작가의 집이 부러웠다. 영국의 힘은 오늘도 지식기반의 국가임에 틀림없었다.

 
▲ 이재인/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경기대국문학과교수     © 독서신문
제인 오스틴은 1775년에 이 세상에 와서 1817년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의 문학 작품을 두루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그녀의 「분별과 다감」(1811년) 「오만과 편견」(1813년) 「맨스필드 파크」(1814년) 「엘마」(1816년)로 발산되었다.
오스틴의 작품은 한결같이 18세기말의 지방 중산계층의 실생활을 섬세하게 살려내고 있다. 치밀한 관찰력과 유머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나는 오스틴의 생가에서 200여년 동안 그의 유물을 지켜오는 영국의 숨은 힘을 새삼 느꼈다.
 
 
읽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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