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천옥 (2회)
소설 춘천옥 (2회)
  • 김용만
  • 승인 2007.09.06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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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옥을 개업할 당시만 해도 서울에 보쌈과 막국수집이 없었다. 보쌈집은 딱 한 군데가 있었지만 그 집과 보쌈고기의 부위가 달랐다. 돼지고기 중에서 가장 맛있고 비싼 부위만을 골라 구입했다. 같은 돈을 주고 샀으면서도 비계는 발라내고 살코기만 담아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춘천옥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에 소문이 퍼졌고, 해외 교포사회에까지 이름이 나는 바람에 체인점 요구가 쇄도했다.
  뉴욕에 갔을 때였다. 우리 일행이 중심가에 있는 한식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40대로 보이는 동포 신사 3명이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인 모양이었다. 한 사람이 앞자리에게 말했다.
  “너 이번에 서울 가면 춘천옥에 꼭 들러봐. 음식도 음식이지만 체인점을 알아보라구.”
  그러자 옆 친구가 말했다.
  “한번만 가볼 게 아니고 여러번 가봐. 음식은 물론 시설과 분위기도 삿삿이 살피라구.”
  “과천 누나 말이 그 집엔 일본 사람들이 많이 간대.”
  “보쌈김치가 매울 텐데?”
  “별로 맵지 않다는 거야. 호고추를 쓰는가봐.”
  호고추 쓰는 것까지 알다니.... 어이가 없었다. 과천에 살고 있을 누나가 춘천옥에 자주 와서 정보를 캐다가 미국 동생한테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휴대용 김치통까지 들고 간대.”
  “기내에서 김치냄새 날까봐 그러겠지 뭐. 그집은 김치만 팔지도 않거니와 되도록이면 음식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잖아”
  “마지못해 일인분 정도만 싸주겠지.”
  “역시 일본애들은 빨라. 틀림없이 그걸 갖다가 분석해볼 거라구. 걔들 요즘 김치 열이 대단하거든. 머잖아 수출도 한다는 거야.
  사실이었다. 한국에 오는 일본인들은 춘천옥에 들를 때마다 도시락통처럼 생긴 플라스틱 용기를 갖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에 보통 열댓 명 정도 찾아오는 일본인 중에는 낯이 익을 정도로 자주 찾아오는 손님도 있었다. 공단에는 재벌을 비롯한 큰 기업체가 많아 일본인 연구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그들은 일본인인데도 보쌈김치와 마늘을 잘 먹었다. 가끔 서양인도 들르지만 춘천옥에는 의자에 앉는 자리가 없어 허리를 까낸 채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먹는 꼴이 웃음을 자아낸다.
  암튼 기막힐 노릇이었다. 수만리 타국에 사는 동포들이 춘천옥 장사 내용을 꿰뚫고 있다니. 나는 옆자리 동포들에게 내가 춘천옥 주인이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외국에까지 소문난 춘천옥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어느 재벌 회사로부터는 자기네가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사업장에 분점을 내달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그것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분점이나 체인점을 내어 기업적으로 확대할 수도 있겠으나 당분간은 춘천옥만 더욱 튼튼하게 키우고 싶었다. 춘천옥은 사업체가 아닌 내 예술작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업원들에게 미침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     © 독서신문

  일에 미치면 예뻐진다. 일에 미친 여자는 미스코리아보다 훨씬 예쁘다. 근로미勤勞美는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운 자태에 비견된다. 홀에서 서빙을 담당하고 있는 능수엄마나 미스 박 같은 여자가 그렇다.
  삼십대 초반인 능수엄마와 이십대 중반인 미스 박은 각각 초등학교와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성실과 근면으로 40여 명 종업원 중에서 가장 신임을 얻고 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을 바치는 종업원이다. 그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의 업무에 미칠 뿐이다.
  바쁜 시간이면 주방도 미치고 홀도 미친다. 주방에서는 보쌈과 막국수를 장만해내기에 미치고, 홀에서는 밀려오는 손님을 맞아들이기에 미친다. 특히 서빙을 담당한 여종업원들의 손님 안내 모습이 환상적이다. 정말 신들린 모습이다.
  처음 춘천옥에서 일을 시작할 때 몸이 굼뜨고 더듬거리던 종업원들도 몇 달만 지나면 날쌔지게 마련이다. 특히 능수엄마와 미스 박의 섬세한 감각은 그들이 춘천옥에서 일을 시작하고 한 달 후부터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내 지도를 받았고 그대로 실천했던 것이다. 물 컵을 드는 방법이나 행주로 상을 닦는 요령부터 시작하여 고도의 감각훈련까지 누구보다 알차게 익혀나갔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야 돼.”
  앞을 보면서도 동시에 등 뒤에 나타난 손님을 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주문을 받거나 음식을 차리면서 뒤를 볼 수 없지만 느낌으로 알아차리라는 말이다. 나는 지금도 능수엄마의 말이 떠오르면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눈이 얼굴에 달렸는데 우째 고개를 안 돌리고 뒤를 볼 수 있는교.”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일에 미치다보면 정말로 뒤통수에 눈이 달린다구.”
  그렇다. 눈은 얼굴에만 달린 게 아니다. 뒤통수에도 달릴 수 있다. 앞에 달린 눈은 신체적인 눈이고 뒤통수의 눈은 정신적인 눈인 게 다를 뿐이다. 항상 뒤에 손님이 서 있다고 의식하면 뒤통수에 눈이 달린다. 영화에서 보듯 검객이 자다가도 적의 비수를 막을 수 있는 건 잠을 잘 때도 가슴을 노리는 적의 비수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에 미쳐야 비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능수엄마와 미스 박은 분명 뒤통수에 눈이 달려 있었다. 나는 미치려는 사람과 미치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할 수 없었다. 미치려는 종업원에게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사랑스러웠다.
  “일에 미친다는 건 춘천옥을 위해서만은 아냐. 바로 여러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예행연습이라구. 남의 업체에서 열성을 바치는 사람이 훗날 자기 사업에서도 성공하게 마련이지. 적당히 눈치껏 약은수를 쓰는 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불쌍한 존재들이야. 나는 자동차 서비스공장에 다닐 때 급한 출고 차량이 있으면 나 혼자 밤을 새우곤 했어. 사장이 말단사원인 나를 별안간 부장으로 승진시키겠다고 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 식당업으로 승부를 내고 싶었거든.”
  일은 체질에서 우러난다. 몸에 배지 않은 일은 일이 아니다. 삽으로 흙을 파는 데도 체질화된 삽질은 모양부터 다르다. 삽으로 흙을 판다고 모두가 진정한 삽질이 아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차려다주는 종업원의 태도를 눈여겨보라. 음식그릇을 나르는 걸음걸이와 음식그릇을 상에 놓는 폼, 그리고 손님을 대하는 인삿새가 어떤지를.
  나는 외식을 할 때마다 먼저 그 업소 종업원들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한다. 여러 종업원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고 섬세한 동작으로 올인하는 여자. 그들은 일에서 낙을 찾고, 자기의 괴로움이나 외로움이나 슬픔을 일로 녹여버린다. 일에 미치면 눈물을 흘릴 여유가 없다.
  “근데요, 사장님은 왜서 체인점을 안 내시는교? 체인점을 하모 더 크게 성공할 거 아입니꺼?” 
  “사업보다 더 중요한 내 인생이 있어서 그래.”
  “그게 먼 데예?”
  “나중에 얘기해주지.”
  “참말로 이상한 분인기라. 왜서 돈 욕심을 안 내시는가 모르겠심더.”
 
  춘천옥 구조는 출입문을 열면 홀이 있고, 홀에서 여러 온돌방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서빙 시스템은 다른 업소와 마찬가지로 홀 팀 각자가 손님을 안내하고 음식을 주문받지만, 저녁 피크타임에는 역할 분담이 달라진다. 즉 홀 팀이 두 패로 갈라지는데, 홀에 들어서는 손님을 방까지 모시고 가서 테이블을 배정해주는 안내 팀과 손님을 인수해서 주문을 받고 음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식을 날라주는 서빙 팀이 그것이다. 능수엄마와 미스 박이 맡은 안내 역할은 손님들이 줄서는 집에서나 필요한 이색적인 직책이다.  
  안내 팀은 100개가 넘는 좌석을 일일이 파악해서 손님 숫자에 맞춰 신속히 좌석을 배정해야 한다. 그리고 멋진 인사로 손님의 기분을 증폭시켜주는 역할도 맡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한테나 안내 역할을 맡길 수 없는 것이다. 손님이 겉잡을 수 없이 밀려올 때 쏜살같이 뛰어다니며 “어서 오세요.”를 외치면서도, 그 인사가 예의치례에 불과한 허례가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진심으로 당신의 왕림을 환영하며 지금부터 당신의 종이 되겠나이다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요즘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 해도 그런 서비스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미덕일 수밖에 없다.
 
읽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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