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진영을 넘어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굳건한 믿음,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미래 세대와 소통하고 교감한 열정 때문이었다.
강력한 슬로건과 레지스탕스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스테판 에셀의 인간적인 매력이 응축돼 있는 자서전이 국내에 출간됐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여 전인 2012년 프랑스에서 발표한 것으로, 번역은 현재 파리에 살고 있는 작가이자 칼럼리스트 목수정이 맡았다.
저자는 자서전에서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 자신의 지난 삶을 낱낱이 회고한다. 자본주의의 폭력과 난맥상을 지켜보면서도 세상은 더 큰 진보의 길로 나아갈 거라고 믿었고, 그것은 자신이 낙관적이거나 좌파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현실주의가 역사의 진화를 명백히 관찰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한 인간이 어떻게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청년으로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한 세기를 줄곧 청년으로 살아 낸 비법 중 하나는 감옥에 갇히거나 안온한 노년의 평화 속에 주저앉지 않고 참여하는 것이었다면, 또 하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책에는 그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자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며 영화 <쥘 앤 짐>의 여주인공 모델이 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부터, 메를로퐁티, 다니엘 컨벤디, 에드가 모랭 등의 사상가들과의 전율 어린 만남, 생애 단 한 번의 동성애 경험 등 아주 특별한 사랑의 연대기도 담겨 있다.
사랑을 놓지 않고 살아온 그이지만, 언제나 원하는 대로 행복을 쟁취하진 못했다.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에 유대인으로 머물러 있었고, 그가 말년에 온 힘을 다해 알리고자 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진보와 희망에 대한 신념을 꺾지 않은 그에게, 현실주의자들은 지나친 이상주의자라고 빈정거린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현실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능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지, 정해진 한계를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오늘을 사는 세대와 앞으로 다가올 세대들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핵심이다.”
개인의 행복도, 자유도, 사랑도, 또 민주주의도 노력해야만 가닿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한 세기에 가까운 삶으로 그 신념을 증명한 스테판 에셀의 마지막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 목수정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300쪽 | 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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