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처로 유명한 크산티페
악처로 유명한 크산티페
  • 신금자
  • 승인 2007.09.04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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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속의 여인들②
                                  
▲ 신금자  [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 독서신문
 차가운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이 맑고 깊다.
그 증명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해 주었다. 희대의 악처로 소문난 그의 아내 크산티페는 허구한 날 소크라테스에게 잔소리와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 와중에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단련시키며 정화해주는 소기의 기능이 있다고 태연히 수용했다. 모름지기 그의 아내 크산티페의 잔소리와 욕설 때문에 못살겠다고 내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참을성 없는 바가지는 손님이 있어도 그칠 줄 몰랐다. 급기야 손님과 담소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에게 그악스럽게 고함을 치고 욕설을 퍼붓다 구정물을 뒤집어씌우자  “허허, 저것 봐 천둥번개가 치더니 비가 오는 것은 당연하지.” 하고 소크라테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 일화는 유명하다. 그 일로 소크라테스만큼 크산티페의 존재도 널리 세상에 알려졌으리라.
 
 고대 그리스사회를 살펴보면 가부장적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반대로 여성은 지위랄 것도 없이 교육조차 받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러니까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하게 차별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방문 앞에 월계관을 만들어 걸지만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평생 집안에 들앉아 바느질이나 뜨개질, 베를 짜야한다는 의미로 천조각인 직물을 걸쳐두었다고 한다. 실제로 여자들은 외출이 허용되지 않아  집안에서 일만 하다 적령기가 되면 합당한 지참금을 챙겨서 남자에게 떠넘겨졌다. 
 이 여성차별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부계를 지나치게 떠들고 과장한 사례로 헤라클레스가 화장더미 위에서 불에 타 죽을 때,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부분은 금세 재로 변했으나 아버지 제우스신에게서 물려받은 부분은 끝내 불타지 않는 전설적인 이야기, 그리고 여성의 자궁을 거치지 않고 남신 제우스의 머리에서 직접 태어난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탄생신화도 그렇다.

 그러니까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권리나 인권 따위는 버려야 했다. 오로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 감히 문화생활은 차치하고라도 외출조차 허용하지않은 것은 어찌 이해를 해야하는가. 하긴 여자도 머리에 지식이 들면 온전히 순종하는데 장애가 될 것은 빤한 이치다.  아내이면서 어머니가 될 여성들을 홀대하면서 몇몇 고급 창녀들은 교육도 받게 하고 자유롭게 나다닐 수도 있었다니 말이다. 이기적인 그들만의 연회에서 남자들의 상대역인 창녀들은 유식해야 했다는 증명이 아니랴.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하는가?” 고 물으면 독신이었던 플라톤도 친족을 일컬어 “같은 가정신을 모시는 공동체” 라고 표현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가부장 즉, 가정신이 끊기면 안 되므로 여성이 아들을 못 낳으면 이혼도 불사했다. 더 고약한 것은 남편이 죽은 후이다. 아이들과 아내가 모두 남편이 지정한 후견인의 보호 아래 놓인다. 말이 좋아 후견인의 보호지 어머니가 아이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다. 좀 심하게 말하면 노예나 다름없다.
 
 어떤 상상 ‘인터뷰’에서 소크라테스에게 결혼관을 물었다.

소크라테스 왈,  “결혼은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온순한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저처럼 사나운 아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수도 있어요. 자신을 힘들게 하는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하면 겸손하게 자신부터 성찰하게 되는 법이지요. 그러면 세상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이렇듯 제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 그 모든 것을 통해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삶의 지혜를 얻다보니 이렇게 철학자가 된 것 같소.”
 그런 의미에서 크산티페는 여장부가 아니랴. 남자와 동등한 배우자가 되기엔 애초에 글렀다는 것을 안 것이다. 남자들처럼 교육을 받지 못한 덕(?)에 훨씬 열등한 반쪽임을 묻고자 그리 돌변했으리라.

 크산티페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철학이라는 이런저런 정신의 사치도 모자라 정신적인 사랑 '에로스' 라는 미명하에 호모가 유행했던 시대였다. 남자들 대부분이 바깥에서 나체로 운동경기나 격투기, 가면극 등을 즐기다 보니 영웅적이고 육감적인 유대감이 생겨서 그리 되었다는 추측이다.
 과연 그 시대를 살다간 소크라테스는 어땠을까? 딱히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전해지는 바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호모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병사들 거의가 20세가 되면 10대 남자 아이들과 짝을 지어 결혼을 하고 재산(말 5마리정도)이 모아지면 이혼을 하고 여성과 다시 결혼을 한다고 했다. 여성과 결혼을 하는 이유는 앞서 밝혔듯 자식을 얻기 위해서일뿐, 3명 정도의 자식이 생기면 다시 남자에게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소크라테스도 비록 이혼은 안했지만 그도 여성 혐오론자였다는 것이다. 만약 크산티페의 핏대 세운 히스테리가 사실이라면 그 원인은 여기서 찾을 수도 있겠다.
 
 소크라테스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알리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지혜를 팔아먹고자 책을 쓰지도 않았고 학교를 설립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그 진리가 훼손될까봐 독당근에서 추출한 독약을 마시면서도 물러서지 않은 위인이다. 지금껏 전해지는 그의 인격이나 이론은 주로 플라톤의 대화편과 그리스의 역사가인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에 관한 <회고록>이 전부다. 크세노폰이 쓴 회고록 어디에도 크산티페가 거칠고 사나웠다는 기록은 없다. 그녀가 악처였다고 전하지만 그녀가 바가지 긁는 여자였다는 증거는 없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크라테스는 모든 시간을 길거리와 시장, 특히 김나지움(고대 그리스의 단련장)에서 보냈다. 나라의 젊은이들과 논쟁을 벌였다. 많은 철학자들이 자기의 이론이 옳다며 돈을 받고 떠들어댔지만 소크라테스는 원칙적으로 자신만이 무지를 깨닫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현명하다고 확신했다.  자연히 추종자들 틈에 그를 평가절하하려는 사람들도 생겼을 법하다. 그러니 아내 입장에서 보면 집안일을 등한시하는 것도 모자라 주제넘고 쓸데없는 일에 간섭하다 반대파들에게 몰리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도 없잖은가. 그 알아듣지도, 밥벌이가 되지도 않는 논쟁을 이해할 길 없는데 무조건 순종하는 것도 모순이 아닐지. 결국 세 아들과 크산티페의 앞날에 드리운 그림자가 우울하기 그지없다.
 
 짐작컨대 조심조심 건너야 할 살얼음판의 시대에 대철학자인 남편을 코너로 몰아붙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녀가 그 시대의 모순을 후세에 알려야하는 악역이랄 수밖에.
 이제 그녀가 이승을 다시 찾으면 얼마든지 넓고 깊은 사유로 죽림의 현자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후적후적 맘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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