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과 파친코
빈곤층과 파친코
  • 독서신문
  • 승인 2013.04.1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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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지금'
▲ 양정석 특파원    
[독서신문] 파친코 천국 일본이 '파친코 금지'로 시끄럽다.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비록 일개 소도시의 결정이기는 하지만 무심코 넘길 일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파친코 조례를 둘러싼 잡음은 오사카 인근의 작은 도시인 오노시에서 일어났다. 오노시 의회는 지난달 상임위원회에서 생활보호 수당 또는 아동부양 수당을 받는 사람들의 파친코 금지 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지만 본회의 통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생활보호 수당은 생존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정한 최저생계비보다 수입이 적을 경우 그 차액을 세대별로 지급하는 제도로, 그 비용은 국가가 4분의 3, 지자체가 4분의 1을 부담한다. 아동부양 수당은 이혼 등으로 인해 부모 중 1명이 자녀를 돌볼 경우 가정 형편에 따라 월 1만 엔에서 4만2,000 엔까지 지급된다.

국가의 보호를 받는 빈곤층 사람들이 그 돈을 지나친 유흥이나 도박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의 조례이다. 조례에는 시민들이 도박을 하는 생활보호 대상자를 발견할 경우 시에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물론 통보는 강제 규정이 아닌 자율이며, 통보자에게 어떤 대가를 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시민들에게 파파라치의 임무를 규정해 생활보호 대상자들의 씀씀이를 압박하겠다는 셈이다.

조례가 성립되기 전의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의 찬성률은 60%. 하지만 막상 조례가 본회의를 통과하자 조례 도입에 찬성했던 시민들마저 난감해 하는 눈치다. "사람들이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당신 보호 대상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감시냐, 보호냐. 찬반 여론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이번 조례 제정을 추진한 오노시의 호라이 츠토무 시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변하고 있다.

흔히 인권의 두 기둥으로 자유권과 사회권을 꼽는다. 자유권은 말 그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로, 불필요한 간섭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사회권은 인간답게 살 권리로 국가는 이의 실현을 위해 각종 제도를 통해 시민들의 삶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다.

"사회권의 폭넓은 적용을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게 오노시측의 입장이다. 하지만 반대측 시민들과 일부 법률 단체들은 자유권 침해를 주장하며 "헌법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부당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칫 '파친코 조례'가 위헌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의 파친코는 오락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1~2시간에 수만 엔을 잃고 딸 수도 있어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는 빈곤층에게는 그야말로 '한 달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도박이다. 언제 어디서나 출입이 자유로운 파친코로 인해 빈곤층을 더욱 수렁으로 빠트려서는 안 된다는 게 시측의 입장이다.

어쨌든 시끄러웠던 '파친코 조례'는 4월 1일부터 전격 시행에 들어갔다. 혹시, 오노시가 한국에서 성행하고 있는 '파파라치 제도'에서 힌트를 얻은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도 생활보호 대상자들의 씀씀이를 감시하는 오노시와 같은 조례가 도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바탕의 '파친코 소동' 속에서 싱거운 상상을 해본다.

/ 도쿄(일본) = 양정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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