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편지-공부열광 _ <12> 세종대왕의 실용융합 독서법
아빠의 편지-공부열광 _ <12> 세종대왕의 실용융합 독서법
  • 독서신문
  • 승인 2013.04.1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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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세종대왕은 인문 고전과 실용서 중에 어느 것에 더 관심이 많았을까요. 둘은 애써 구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계를 물과 불처럼 가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비교한다면 세종은 인문 고전보다는 실용서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는 상대성입니다. 당시 문화가 인문 고전에 치우쳤습니다. 그렇기에 세종의 실용서 강조가 돋보이는 것입니다. 요즘 일부에서 세종을 인문학 공부의 대명사처럼 안내하는데 그리 적절치는 않다고 봅니다. 조선시대의 학자는 거의 예외 없이 인문학에 몰입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종은 인문학 못지않게 실용학을 중시했습니다. 세종의 인문 독서 목적은 실생활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모으는 데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인문학이 아니라 실용학의 대명사로 소개하는 게 더 적절할 듯 싶습니다.

조선의 학자들이 추구한 독서는 '독서공부(讀書工夫)'였습니다. 삶의 자세를 궁극적으로 탐구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이에 비해 세종은 나라를 경영하는 데는 실용학과 인문학이 융합되어야 함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료들에게 실용학인 역사학 공부를 권유했습니다. 역사학 권유를 인문학 공부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종이 말한 역사학은 역사 철학이 아닌 역사의 흥망성쇠 등을 통해 다스림의 인간관계를 터득하는 길이었습니다. 임금의 독서시각은 실용서적이었던 것입니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책읽기였습니다.

실용주의자인 세종은 책을 많이 읽었지만 글쓰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독서를 취미가 아닌 정치의 방법으로 여긴 것입니다. 좋은 방책을 책에서 얻어 실천하려고 했기에 서예나 글쓰기 등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서거정이 쓴 『필원잡기』에서 세종의 독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읽기는 유익하다. 그러나 임금이 글씨를 쓰거나 글짓기를 하는 것은 생각할 바가 있다.'

흔히 세종의 공부에 대해 '백독백습(白讀白習)'이라고 합니다. '백 번 읽고, 백 번 베껴 쓰기를 통해 앎을 넓혀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는 더 고증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알기 위해 필사는 했을 수 있지만 글쓰기는 극히 적었던 게 세종입니다.

세종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습니다. 이중 특히 관심은 '제왕학'과 『좌전』과 『초사』와 같은 역사서였습니다. 세종이 즉위년(1418년) 10월 7일 첫 경연에서 강론한 책이 제왕학인 『대학연의』였습니다. 임금은 제왕의 다스리는 순서를 담은 이 책을 강독하면서 역사에서 현실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환관 문제 등 현실문제가 언급된 『대학연의』를 6개월에 마친 임금은 다시 강독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세종은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려는 목적에서 제왕학으로 저술된 『대학연의』를 현실문제와 연결시켰습니다. 「군아편(君牙篇)」을 읽을 때는 중국의 백성이 생계 유지를 위해 아내를 팔고 자식을 파는 처지에 주목했습니다. 임금은 "이런 아픔을 마땅히 마음 깊이 품어 잊지 않겠다. 내가 궁중에서 자라 백성의 어려움을 잘 알지 못한다"며 "우리나라 백성이 살아가는데 어찌 곤궁한 사람이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또 당나라의 시험 부정을 읽을 때는 조선시대 과거의 폐단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과거시험은 권세 있는 사람의 부탁을 받아 부당하게 취한 사람이 옛날에도 있었기에 지금도 있을 개연성을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평안감사 김점이 그의 아들 때문에 탄핵을 받은 이유를 보고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임금은 제왕의 현실정치를 잘 보필하라는 의미에서 종친과 신하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습니다.

역사서에 심취한 임금은 공자가 쓴 역사책을 해석한 『춘추좌씨전』과 초나라 사람들의 글을 모은 『초사』를 100번 이상 읽었습니다. 그러나 유교의 나라를 세우려는 유학자들은 임금의 역사서 중시에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들은 '유학서인 경서를 다 읽은 뒤 사서를 읽어야 한다'는 시각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임금은 유학서는 이상적인 모델이고, 역사서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았습니다. 임금은 집현전 학사들에게 여러 역사서를 직접 나누어줄 생각을 했습니다. 신료들은 반대를 했습니다. 예문제학 윤회는 "유학서가 먼저이고 역사서는 다음입니다. 오로지 사학만 닦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반대했습니다. 세종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무지를 질타했습니다. "경연에서 역사서에 나오는 내용을 질문했는데 신하들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학에만 매달렸을 뿐 사물의 이치를 깊게 연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한 선비가 없다는 의미"라고 화를 냈습니다.

세종의 공부에 대한 시각은 마흔 한 살 때인 20년(1438년) 3월 19일 경연에서 한 말로 잘 설명됩니다. 『좌전』을 강독한 뒤 말했습니다. "내가 유학서와 역사서는 보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은 나이 탓에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오히려 글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글을 읽는 동안에 정치에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생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이상주는?
『세종의 공부』 저자다. 역사작가이고 조선왕실 전례위원이다. 북(BOOK) 칼럼니스트로 각종 글쓰기, 책쓰기 지도를 한다. '이상주글쓰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10대가 아프다』,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 등이 있다. http://www.이상주글쓰기연구소.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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