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 성접대’ 파문과 관음증
‘별장 성접대’ 파문과 관음증
  • 조석남
  • 승인 2013.04.0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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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 독서신문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온갖 해괴한 성추문이 온나라를 검게 덮고 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떠도는 얘기를 빌리면 ‘깡패 출신 사업가에게 성관계로 코가 꿰어 큰 돈과 고급승용차를 뺏긴 여인이 갈취한 남자에게 돈과 차를 되돌려달라 하자, 남자는 자기 아내를 시켜서 간통죄로 이 여자를 고소해달라고 하는 뒤통수를 치고, 여인은 안되겠다 싶어 다른 조폭을 시켜 해결해달라고 했는데, 이 조폭이 차를 되찾고 보자, 거기에 재밌고 돈이 될만한 동영상 같은 것들이 들어있어서 다시 이걸 가지고 여자를 협박했다’는…. 그리고 이 문제의 동영상 속에는 공직자 등 사회 고위층 인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한편의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스토리다.

여기에 ‘고위층 별장 성접대 파문 풀스토리’, ‘별장 성접대 연예인’ 등 각종 루머와 변태 성행위 도구, 음란물, 마약 등 갖가지 추잡한 단어들이 SNS 공간을 달구고 있다. 바로 강원도 원주에서 벌어진 ‘별장 성접대’ 파문이다.  
 
이번 사건은 성접대를 매개로 건설업자와 고위 공직자 사이에 각종 공사 수주나 인허가를 둘러싼 ‘검은 거래’가 오갔는지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경찰 수사를 보면 성접대 의혹에만 초점이 맞춰진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따라 성접대를 받은 고위 공직자로 현직 법무차관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되고, 마침내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성접대를 받았다는 공직자 등 지도층 인사들의 명부까지 나도는 등 여론재판의 분위기마저 띠고 있다.

별장 주인이자 사건의 핵심인물인 건설업자 윤모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것으로 거론되는 인물들도 당초 10명 안팎에서 지금은 30명 선으로 늘어나 그 실명이 트위터 등 SNS 망을 타고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속옷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며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삼류 소설 같은 내용도 그렇거니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그러나 우려되는 또 다른 문제는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의 ‘관음증’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에 접근하려는 자세보다 말초적 화제 위주로 관심이 집중되는 듯한 분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레이디 고디바’라는 그림이 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 화가 존 콜리어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백마를 타고 중세 거리를 지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녀는 실존인물이다. 11세기 중엽 영국 코번트리 영주였던 레오프릭 3세의 부인 고디바다. 영주의 두번째 부인인 고디바는 처참한 농민들의 생활을 보고 남편에게 과중한 세금을 줄여줄 것을 요구한다. 부인의 이같은 간청에 영주는 ‘설마’하는 생각에 “당신이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돈다면 그렇게 하겠소”라고 조건을 내건다. 고디바는 고심 끝에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17세의 고디바가 어려운 결심을 실행에 옮기던 날, 감동한 주민들은 부인의 나신을 절대로 훔쳐보지 말자고 결의한다. 모든 주민이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려 그녀의 희생에 보답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재봉사 톰이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약속을 어기고 커튼을 들췄다.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엿보는 톰(peeping Tom)’이란 표현이 여기서 생겼다.

‘관음증’은 ‘훔쳐보기’를 통해 쾌락을 느끼는 증상이다. 사람들에게는 남의 사생활을 들춰보며 짜릿함을 느끼는, ‘관음증’을 즐기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지금, ‘별장 성접대’ 파문에 혀를 차면서도 은근히 재미도 느끼는 희한한 분위기이다.
 
이처럼 갖가지 소문이 확대재생산되는 것은 수사가 제대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의혹을 규명해 줄 결정적 단서로 여겨졌던 동영상은 분석 결과 사실상 증거 능력이 없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도 엇갈리고 있다. 경찰이 요청한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도 대부분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의욕만 앞선 나머지 진상 규명을 위한 증거 확보에는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사건에 쏠리는 의혹을 해소하려면 어떤 인물들이 성접대를 받았는지, 그 결과 사건의 당사자인 윤씨가 어떤 부당한 혜택을 받았는지 명백히 가려져야 한다. 성접대를 받은 공직자 리스트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물론 유력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별장에서 마약파티가 벌어졌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 여부가 한점 의혹 없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마녀사냥’이 되풀이 되서는 안 된다. ‘열 명의 도둑’을 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사실과 다르게 성접대 명단에 올라 ‘주홍글씨’의 낙인이 찍힌 경우가 있다면 반드시 그 누명을 벗겨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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