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혼자 간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간다
  • 박상희
  • 승인 2007.09.03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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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사람을 혼자 보냈다.
그녀가 살던 마을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동네 집들이 모두 남향으로 지어져 있다.
마을 뒤에는 산이 있어 바람막이가 되어 겨울이면 따뜻하고 여름엔 또 시원한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다.
해가 아직 앞동산 까지 올라오기도 전에 뻐꾸기는 벌써 울어대기 시작 했다.
산 여치도 장단 맞춰 날개를 비비고 참새들의 재잘거림에 잠자던 막내는 홑이불을 당겨 뒤 집어 쓴다.

저 만치 들길에 아직 융자도 덜 값은 경운기가 벌써 쉰 목소리로 이순이 다된 시골마을 젊은이의 손에 끌려 휘청거리며 풋과일 빈 상자 몇 개를 싫고 건너 비알 밭 과수원을 향한다.
농촌 마을에는 젊은이가 없다. 예전 같으면 상노인 대접을 받을 나이가 그 마을 젊은이다

그녀의 택호는 각산댁 이었다. 그녀는 벌써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 마을 한 바퀴 돌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나누고 밤새 안부를 물으며 어제 와 같이 아침 순찰을 마무리 한다.
그녀가 없으면 마을이 조용하다 못해 죽은 마을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던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바쁘고 온 동네 소식을 집집이 다 전해 주고 그의 손에는 늘 푸성귀 하나라도 쥐어져 있었다.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한 움큼 주까” 하고 불쑥 내밀어 어떨 결에 받아 쥐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는 벌써 저만치 뒷모습이 가물 해 진다.

그녀는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그의 남편은 시골 마을에서 미남자라 말을 듣는 풍채가 좋고 성격이 무난하여 누구나 좋아 하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부지런하기 짝이 없는 부인을 둔 덕에 항상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그녀는 자신의 의복은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허술한 옷이 서글퍼 보여 누가 새 옷 하나를 선물해 주면 그는 열 번도 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주는 이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어 만나도 무어라도 하나 또 답례를 하고 작은 고마움에도 두고두고 감사히 생각하는 마음이 맑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받은 새 옷을 입지 못했다. 항상 장롱에다 넣어두고 낡은, 입던 옷을 입고 다녔었다. 그의 허술한 입성은 어쩌면 그의 인생관인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잘 챙겨 입으면 자신의 내면이 더 초라해 진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기로도 그의 남편은 자식을 얻기 위한 핑계 아닌 핑계로 몇 차례 작은댁을 얻어 지낸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뒤늦게 그녀에게 또 들은 얘기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남의 말을 하듯 이야기 하던 그의 눈이 생각난다. 얘기를 하다말고 눈을 비비며 늙으니 이제 눈도 자주 찝찝하다며 거친 손등으로 이슬을 닦으며 얘기를 끝까지 마무리 하던 그때의 모습은, 그 시절 우리 여인들의 한 같은 것이 얼굴에 서려 있었다.
남편의 여자에게 저녁밥을 지어 겸상을 차려 방안에 들여 주고 자신은 부엌 아궁이 앞에서 된장국 한 숟가락 퍼 놓고 밥을 비벼 먹었다고 한다.
단칸방에서 이부자리를 깔아주고 두 사람이 잠자리를 할 때 까지 문밖에서 기다렸다는

지금도 그때 얼었던 발이 겨울이면 자꾸 가렵다던 그녀의 말은 이 시대의 사람이면 누구라도 믿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해를 살고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몇 해를 살아도 그의 집에는 아이의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뒤늦게 알게 된 일이지만 그녀의 남편은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풍류를 즐기던 남편의 뒷바라지도 어느 날 홀연히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날 끝이 나고
그날도 그녀는 무표정이었다.

어느 집에 가서도 누가 먹다 남은 밥이라도 허기질 때는 눈치 없이 달려들어 한술로 속을 채우던 그런 사람, 길 가던 모르는 사람이라도 다른 음식이 있을 땐 불러 한술 먹여 보내던 사람,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뜨기 전에 남편의 집안에서 양자를 하나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름만 양자 일뿐 그녀의 삶에 아무런 의지가 되지못했다.
양자 한 자식은 멀리 경기도에 살고 그녀는 경상도 한 산골마을에서 살았다.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 아침 한 이름 없는 교회에서 주일이라 그녀를 태우려 왔다가
그의 집 일층 네다섯 개의 개단에서 넘어져 숨져 있었다고 신고를 했다.
그녀는 언제 부턴가 교회를 나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차가 와서 그를 태우고 오전 예배를 보고 그곳에서 그나마 혼자가 아닌
점심식사를 먹고 다시 교회차로 오곤 했었다.
하룻밤 사이 그는 싸늘한 시체로 숨을 멈추었다.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사는 옆집 사람은 어젯밤 8시가 넘어서 혼자 밖에 무언가를, 늘 그랬듯이 이리저리 치우기도 하고 서성거리며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훨씬 더 많은 그녀는 언제나 먼저 말을 걸어 아침에 보았던 사람에게도 또 안부를 묻곤 했다.
그녀의 시체는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집을 뒤져 찾아온 누런 종이쪽지 몇 개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전화번호가 바꿔 연결이 안 되는 번호가 몇 개 있었다. 한참을 번호를 눌러 전화를 받는 사람에게 그녀가 죽은 소식을 전했다. 아무도 놀라거나 슬퍼하는 자는 없었다.
정오가 지나도록 병원 영안실 문 앞에서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관할 경찰서에서 타살이 아니니 장례식을 해도 좋다는 서류를 건네주었다.
해가 그름 해 질 무렵 양자 한 자식의 동생이라는 사람이 왔다.
경찰에게 받은 통장과 도장 지폐 몇 장을 건네주었다.
작은 병원 빈소에는 마른 눈물도 한 방울 없었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 즘에 양자란 사람이 왔다. 부인은 아이들과 집에 있다며 혼자 빈소 안에 들어와 물끄러미 서 있다.
잠시 후 죽은 자 보다 더 바싹 야윈 그녀의 여동생 두 분이 오셨다.
영정 사진을 보며 가엽어서 어쩌나 하고 슬피 운다. 진정 뜨거운 눈물로 삶이 무엇이 길래
살아서 서로 만나 한마디 말도 못해보고 다시는 못 올 길을 가셨느냐며 애통하여 우는 울음 앞에 이제야 모두 눈시울을 적신다.
의사의 진단으로 전날 저녁에 죽었다고 한다.
영안실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화장장 차에 실려가 그녀는 한줌의 재가 되었다.
그렇게 아끼던 집도 그렇게 모아 아껴온 몇 푼의 돈도 그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양자 자식은 그녀가 귀히 여기던 모든 것을 챙겨서 돌아가고
아침이 와도 그녀가 다니던 마을길은 조용하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간다.
슬하에 자식이 있는 자도 모두 도회지로 직장을 따라 가 버리고 어머니는 혼자다.
마을엔 빈집이 많다. 사람이 사는 집도 빈집처럼 고요하고 고령의 노인들만이 살고 있다.
그래

이것은 그녀만의 죽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가 죽고 일주일 열흘이 되어도 모를 수도 있는 일이다. 오늘따라 내 어머니가 몹시 가엽다는 생각이 든다.
도회지로 외국으로 자식을 떠나보내고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그립다.
내가 뵌 다음날 돌아가신다면 또 누가 찾아갈 그 빈 공간에 홀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
무언가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도 아무도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훗날 나 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길은 홀로 간다.
그러나 너무 쓸쓸하게 가지 않을 수는 없을까. 따뜻한 미소로 손을 꼭 잡아주며 그렇게 보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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