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셀러와 ‘소설의 힘’
스크린셀러와 ‘소설의 힘’
  • 조석남
  • 승인 2013.02.28 16: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석남 편집국장     © 독서신문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소설의 힘’이 스크린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내는 상승 작용이 사회를 변혁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소설 원작을 스크린에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훼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작 소설의 탁월한 재해석과 연출력으로 관객들에게 어필한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출간된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영화와 뮤지컬로 다양하게 리메이크 되는 『레미제라블』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이 원작과는 다른 매력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스크린셀러’는 영화를 뜻하는 스크린과 베스트셀러를 합친 신조어다. 베스트셀러 원작의 영화가 흥행하면서 덩달아 책 판매 부수도 상승하는 현상에서 비롯됐다. 이들 스크린셀러는 자기계발서와 에세이 열풍 속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스크린셀러는 특히 전자책(eBook)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터파크도서의 2월 셋째주 eBook 차트에선 『7번 방의 선물』이 장기간 1위 자리를 지켰던 또 다른 스크린셀러 『레미제라블 세트』를 밀어내고 새롭게 1위 자리에 올랐다.

『7번 방의 선물』은 영화 개봉과 함께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1위 자리에 오르며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흥행만큼이나 인기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4위 역시 스크린셀러인 판타지 소설 『호빗』이 차지했다.

스크린셀러는 대개 영화의 흥행이 원작 소설의 인기로 이어지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해 ‘응칠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소설로도 출간돼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셀러’라고도 불린다.

스크린셀러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5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외에도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Z>, 『트와일라잇』 시리즈 작가 스테파니 메이어 원작의 <호스트>, 장 마르크 로셰트의 만화를 바탕으로 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등이 연이어 개봉된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출판시장의 정체기는 5년이 넘었다. 출판계와 서점계가 장기간 불황에 빠져 있는 현재 영화와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은 스크린셀러와 드라마셀러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이처럼 이미 출판 시장에서 검증받은 원작으로 만든 영화들은 스토리의 짜임새와 이야기의 재미 측면에서 관객들에게 사전 신뢰도를 형성해 흥행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도 영화나 드라마와 동반 흥행하는 베스트셀러들이 존재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완연한 출판계 트렌드로 자리잡았고 올해 이러한 트렌드가 더 강력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최근 소설의 영화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이유는 아무리 문학성이 뛰어나도 이야기가 약하면 영화화하기 어려운데, 국내 문학계에 ‘이야기꾼’이라고 할 만한 신진 작가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문학계 역시 이런 흐름을 반기고 있다. 소설의 영화화는 출판사에 부가 수익을 안겨줄 뿐 아니라 책 자체의 인지도를 훨씬 높여주는 홍보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문학상 심사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경향 가운데 하나는 ‘영화화를 겨냥한 글쓰기’가 많다는 것. 한 문학상 심사위원은  “좋은 소설이 영화가 될 수 있지만, 좋은 영화가 꼭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이런 추세를 꼬집기도 했다.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오늘날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로 바꿀 목적에서 소설에 달려들고 있다. 소설에서 본질적인 것은 오직 소설에 의해서만 말해질 수 있다. 자신의 소설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것을 각색할 수 없는 방식으로 써야만 한다”는 완고한 ‘소설 불멸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스크린셀러는 기나긴 불황에 신음하는 출판계를 살리는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영화의 힘에 의존하다보면 자칫 소설이 종속변수로 추락할 수도 있다. 책과 영화의 윈윈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도 ‘소설 본연의 힘’을 지키려는 밀란 쿤데라의 말은 새겨둘 만하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