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속에서 만난 아바타
흔적 속에서 만난 아바타
  • 독서신문
  • 승인 2013.02.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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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 새로운 생성으로 흔적은 작동한다. 이 세상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곳에 던져져 흔적을 만들며 길을 간다. 그 길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 길은 존재한다. 앞으로도 견고한 영토는 자신만의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를 만들면서 전혀 다른 시각층으로 중첩시키며 지키려 할 것이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과거의 길이 삶의 흔적과 시간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 길이었다면 현재의 길은 스마트폰이 만든 시뮬라크르(simulacre) 길로 우리의 욕망과 그러한 욕망에서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시키는 환원적 ‘길’로 생성하는 흔적이 된다.

환원적 시뮬라크르는 영토화된 욕망을 탈영토화하여 재영토화 시키려 한다. 문제는 욕망의 대상이 본질이 아니라 현실을 왜곡시키는 그림자 이미지이다. 생생히 인식되는 이데아 복제물이 의식과 무의식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가죽 태우며/ 사막 건너온/ 가엾은 저녁이/ 눈 내리는 밤 담아/ 나를 향해/ 기울어져 올 때// 그는 산처럼 불쑥/ 솟아올랐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흐려지며/ 붉은 등 깜박 깜박//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 와/ 거무스름한 파란빛으로/ 별빛 같은 조용한 울음으로/ 가슴 열어/ 높은 탑 보여준 밤하늘이/ 흰 눈 사이로 나를 찾는다
-황인술, 「눈 오는 밤」 전문
 
다양한 욕망과 관계에 의해 집중되어 복제된 뜨거워진 영토화가 ‘살가죽 태우며/ 사막 건너온/ 가엾은 저녁’되어 흩어지고 모이고 있다. 지친 몸을 가지고 돌아온 하얀 눈이 ‘나를 향해/ 기울어져’ 내려오면서 견고한 코드가 아니라 미로처럼 구불거리는 형상으로 탈영토화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때 불쑥 나타난 것은 억압된 욕망으로 ‘영토화’된 깜박이는 비상등이다. 자동차 비상등이 사각 모퉁이에서 ‘붉은 등’ 켜고 깜박이고 있다. ‘붉은 등’은 영토화를 상징하는 기표이다. 이 기표가 ‘산처럼 불쑥 솟아올랐다’가 순간 작아져 버렸다. 위압적인 권위 앞에 스스로 몸을 낮추며 살아온 것이다. 결코 자신을 크게 보이면 안 된다며 큰 키를 애써 작은 키로 만들기 위해 등을 굽히고 살아온 것이다.

사회적 구속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정신적, 공간적 제약의 경계를 벗어나게 해주는 ‘탈영토화’, ‘탈코드화’를 거부하고 욕망의 영토화를 스스로 견고하게 만들며 살아온 것이다. 사회구성체 임무이기 때문에 스스로 억압하며, 욕망을 길들이고, 욕망을 닫힌 구조 안에 영토화한 것이다.

하지만 억압 받는 욕망을 탈영토화, 탈코드화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한 아이 아버지로 한 여자 남자로 한 집안 가장으로 산다는 것은 남의 스타일과 표정을 복사하여 살아가는 베껴 쓴 아바타 삶이다. 이 아바타가 본질 속에서 배회하며 길 위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길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위를 환기시켜주면서 이름과 이름, 얼굴과 얼굴의 만남을 통한 흔적의 이질성을 원형적 동일성이게 만들어준 아바타가 ‘거무스름한 파란빛으로/ 별빛 같은 조용한 울음으로’ 남산타워를 올려다보고 있다.

무한의 깨달음이 ‘가슴 열어/ 높은 탑 보여준 밤하늘’에서 하얗게 내려와 지상에 쌓이고 있다. 白雪(백설)의 흔적위에 아버지가, 남편이 우뚝 서 있다. 유한성을 넘어서게한 ‘흰 눈’ 내리는 밤, ‘나를 찾고’ 있는 눈 오는 밤을 보게 해준 최형준 선생을 흔적 속에서 만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 편집위원 검돌(儉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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