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과 사회적 약자, 그리고 대통합
‘레 미제라블’과 사회적 약자, 그리고 대통합
  • 조석남
  • 승인 2013.01.2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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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영화 <레미제라블>이 뮤지컬영화 최초로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레미제라블>은 1월 17일로 누적관객 5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19일 개봉 후 30일 만의 기록이다. 예스24와 인터파크도서에 따르면 1월 3주차 e-Book 베스트셀러 1위도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의 『레 미제라블』(세트)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레미제라블>의 흥행에서 주목할 점은 이 영화가 2012년 대선에서 야권 후보에게 표를 준 시민들에게 일종의 ‘힐링 무비’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선 패배로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 상태에 빠진 48%의 야권 후보 지지자들이 느낀 상실감과 그에 대한 위로를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의 고통받는 인물들이 영화 엔딩 부분에서 함께 부르는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는 “오늘 우리가 죽으면 다른 이들이 일어서리. 이 땅에 자유가 찾아올 때까지”라는 대사와 어우러져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레 미제라블’은 우리말로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집필 당시 제목은 ‘레 미제레(Les Miseres, 비참함)’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대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 수레바퀴에 깔린 인간 군상들을 세세히 그려낸 대서사시다. 노도와 같은 역사 속에 개인의 삶은 휩쓸려갔지만 ‘인간애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상이 작품을 관통한다.
 
지난 2008년 미국 대선이 끝난 뒤 듀크대 과학자들이 껌 씹기 실험을 했다. 낙선자인 존 매케인을 찍은 사람들은 껌에 묻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뚝 떨어졌다. 꼭 자기가 경기에서 진 것처럼 불쾌하고, 불행하고, 식민지 민족이 된 느낌을 받는 이유가 자신감과 성욕의 묘약인 테스토스테론 감소의 영향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실험을 한다면 감정이 풍부한 우리 국민의 특성상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이 집계한 지난해 화제의 키워드 1위는 ‘멘붕’이었다. 이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인지 TV에선 ‘힐링 캠프’가 새로운 예능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베스트셀러 1위도 힐링해주는 책,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이처럼 힐링이 대세인데도 좀처럼 힐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정치권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최고조의 가치 충돌과 세대ㆍ계층 간 갈등을 겪고 있다. 이를 넘기 위해선 권력자의 관용과 포용이 필요하다. 그것이 소통의 출발이다. 끝까지 추적을 거듭하며 장 발장을 체포하려던 ‘피도 눈물도 없는 법치 맹신주의자’ 자베르 경감도 뒤늦게 고백했듯 법률도 잘못할 수 있다. 현 정부 출범 직후 벌어진 용산 참사나 쌍용차 사태의 경우도 엄격한 법 적용만 외치다 벌어진 비극이었다. 현실이나 열망을 고려하지 않은 권력자의 엄정한 법 집행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혁명과 혼돈의 시기였던 150년 전 ‘레 미제라블’이 던진 메시지는 지금 바로 유효하다.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돼 화제를 불러일으킨 가쿠타 미쓰요의 『8일째 매미』라는 소설이 있다. 인생을 납치 당해 엇나가게 된 두 여자의 불행한 일생을 그린 작품으로 ‘원래 매미는 성충이 돼 7일을 살지만 8일을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미에서 제목이 붙여졌다고 한다.

비정상적이지만 죽지 않고 8일째를 살게 된 매미가 있다면 그 매미는 과연 행복할까? 가족이나 지인을 먼저 보내본 사람은 어렴풋이 알 것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명도 남지 않게 된다면 그 세상은 얼마나 외롭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될 것인지. 7일까지 세상은 시끌벅적한 정겨운 세상이었지만, 8일째는 황폐한 사막에 내버려진 눈물 젖은 세상이 될 것이다. 눈물과 한숨 뿐인 8일째, 어쩌면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소외된 약자’ 모두가 ‘8일째 매미’는 아닐까?

몸은 아픈 곳을 보호하고 치료해야 한다. 사회는 약자를 감싸고 지원해야 한다. 약한 곳이 덧나 몸져눕게 되면 성한 곳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8일째 매미’의 상처를 감싸고 치유해줘야 한다. ‘8일째 매미’가 행복해질 수 있어야 사회도 행복해질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소외되는 사람 없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민대통합이고, 경제민주화일 것이다. ‘비참한 사람들’, 즉 ‘레 미제라블’을 따뜻한 인간애로 보듬어 안고 함께 살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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