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살펴보는 2012년 출판계
키워드로 살펴보는 2012년 출판계
  • 윤빛나
  • 승인 2012.12.2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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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2012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국민 독서의 해’였다. 하지만 그 위풍당당한 시작과는 달리, 가뜩이나 하락세이던 출판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1월에는 국내 최대규모 도서 전문유통회사 수송사, 4월에는 체인형 서점 GS북, 그리고 8월에는 35년 역사의 도서 도매상 학원서적이 문을 닫았다. 입지를 굳힌 듯 했던 인터넷서점 대교 리브로도 12월 31일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문화부의 조사에 따르면 1995년 5,449개이던 전국의 동네서점은 10월 말 기준 1,723개만 남았다. 출판 생태계가 눈에 보일 정도로 휘청거린 한 해였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독서 욕구를 불어넣는 뜨거운 키워드가 꾸준히 등장해 평소 독서를 등한시하던 독자들에게 적어도 “이런 책이 있구나”라는 인식 정도는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주저앉고 있는 출판계에 활력소가 돼 준 키워드를 하나 하나 짚어 보며 2012년 출판계를 되돌아 보자.

 
■ 힐링
2010년 12월 출간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필두로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응원하는 힐링 에세이들의 출간 열풍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2년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책인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독서신문 선정 베스트셀러 1위)은 마음과 인생에 대해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한 혜민 스님의 지혜로운 대답을 담은 책이다. 파워 트위터리안인 혜민 스님의 영향으로 초반에는 30대 SNS 사용자 위주로 책이 팔렸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50, 60대로 구매층이 확산됐다. 출간 7개월 만에 밀리언셀러에 오르는 진기록도 세웠다.

정목 스님의 마음 치유 에세이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와 법륜 스님의 청춘 멘토링 『방황해도 괜찮아』, 『스님의 주례사』, 『엄마수업』,  『깨달음』 등 스님 멘토들의 책이 ‘대세’ 흐름을 타고 훨훨 날아 올랐다. 종교라는 벽을 뛰어넘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스님 멘토들의 정갈하고 고요한 조언이 ‘힐링’의 주체로 가 닿은 듯하다.

김난도 교수의 두번째 에세이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독서신문 선정 베스트셀러 5위) 역시 전작에 이어 큰 사랑을 받았다. 청춘의 시련을 견뎌내고 사회에 나와, 행복 대신 전혀 다른 차원의 아픔들을 겪는 ‘어른아이’들에게 갈팡질팡 헤매고 아파했던 자신의 ‘초보 어른’ 시절을 되새기며 각자 ‘나만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조언한다.
이같은 ‘힐링’ 서적의 강세는 자신을 성찰하고 상처 받은 것들을 치유해서 새로운 힘을 찾으려는 독자의 영향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 안철수
7월 19일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독서신문 선정 베스트셀러 2위)은 2012년 출판계의 판도를 뒤집어 놨다. 출간되자마자 『스티브 잡스』가 세웠던 일일 최다 판매량과 최단 시간 최다 판매량 기록을 경신했고, 3일만에 3판을 인쇄하는 등 출판계의 각종 기록을 줄줄이 갈아치웠다. 책이 출간된 시기가 안철수의 대선 출마 여부에 촉각이 곤두세워져 있던 시기인 만큼 책을 통해 안철수가 정말 출마를 할 것인지, 출마를 한다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인지 검증하고 싶었던 독자들이 대거 서점으로 몰린 것으로 보인다. ‘새 정치’에 대한 바람을 안철수에게 불어넣었던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게릴라로 판매를 시작해 더욱 주목을 받았던 『안철수의 생각』 판매량은 7월 23일 SBS TV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안철수가 출연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아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 갔다.

뿐만 아니라 그가 추천한 책들 역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언급한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는 SF소설로 하루 평균 1권도 나가지 않았던 비인기 서적이었지만, 출마선언 후 24시간 내 1백권 이상 팔려나가 출판사 재고가 떨어져 급히 재인쇄에 들어가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 대선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어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이슈가 쏟아진 만큼, 정치 관련 서적이 그 어느 해에 비해 독자들의 손을 많이 탔던 한 해였다. 작년에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영향으로 진보 성향 도서와 <나는 꼼수다> 출연진들의 책이 승승장구했다면, 올해는 그 흐름에 총선과 대선이라는 시기적 영향을 받아 성장세가 더욱 두드러졌다. 『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독서신문 선정 베스트셀러 10위)뿐 아니라 작년에 사랑받았던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 정봉주의 『달려라 정봉주』 등도 인기를 이어 갔다.

소설가 공지영의 르포르타주 『의자놀이』는 노동현장의 현실을 담아 관심을 끌었고, 이상호의 『이상호 기자 X파일』 등 소외된 현장을 고발하는 책들이 독자들에게 눈길을 끌었다. 저자들의 SNS 활동과 북콘서트 등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서 더욱 눈길을 끈 것으로 보인다.

대선 이후에는 박근혜 당선자에 대한 책의 수요가 많아졌다. 지금까지 출간된 박 당선인 관련 서적은 모두 80여종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지난 2007년 출간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를 포함해 당선 직후인 지난 21일 출간된 선거공약집 성격의 『근혜노믹스』, 지난 2000년 발간된 에세이 『나의 어머니 육영수』등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 원 소스 멀티 유즈
2012년 가장 많이 판매된 소설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원작 소설』(독서신문 선정 베스트셀러 4위)이다. 이 책은 드라마 방영 내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2012년 봄을 사로잡았던 박범신의 『은교』,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역시 영화의 매력과 어우러져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원작소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들이 읽던 소설 역시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주인공이 읽던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김연수의 『원더보이』가 그 예다. 가을에는 류승범, 이요원 주연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이 영화의 개봉과 함께 재차 주목 받았다.

원 소스 멀티 유즈 현상으로 인한 원작 소설의 움직임은 놀랍지만, 그 시기가 영화 개봉 전후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장기화되지는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 영향이 새로 나오는 소설과 신인 작가의 작품에 대한 관심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소설의 다컨텐츠화로 인해 독자들의 마음이 스크린셀러와 장르소설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또한 내년에도 <위대한 개츠비>,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등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소식이 있어 판매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전자책
스마트폰 대중화와 저가 전자책 기기의 보급으로 전자책 시장은 매년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올해는 미국에서 2,000만부가 넘게 판매된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가 한국에서 전자책 시장의 큰 수혜자가 됐다. ‘엄마들의 포르노’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미국 아마존에서 최초로 전자책이 100만부 이상 팔려나간 도서로 기록됐으며, 이후로도 전자책 판매가 급증, 전자책 판매 비율이 종이책보다 14% 가량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로도 이어져 출간 이후 한동안 전자책 분야 1위 자리를 고수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8월 시리즈 출간 후 예스24에서는 8월 마지막 주말에 ‘그레이’ 시리즈의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을 넘어서는 등 눈에 띄는 판매량을 보였다.

각 인터넷 서점의 전자책 판매량 순위를 살펴보면, 19금 이상 성인소설이 종이책에 비해 많이 포진돼 있어 눈길을 끈다.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이 타인에게 크게 노출되지 않는 전자책의 특성상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편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보문고 전자책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박범신의 『은교』 역시 영화의 자극적인 홍보 탓에 외설적인 소설이라는 느낌을 주면서,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으로 남몰래 읽는 방법을 택한 독자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보급률이 80%에 육박하고 있는 스마트폰 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는 ‘웹툰’일 것이다. 웹툰의 인기는 단행본으로도 이어져 2012 도서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윤태호의 『미생』은 직장인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관심을 얻었으며, 영화 제작을 계기로 『26년』, 『신과 함께』 등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 강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국민 서적’이 된 이후 강의책의 인기는 꾸준했지만, 특히 올해는 힐링 에세이와 멘토의 영향이 커지면서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강연회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마이클 샌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등 해외 석학들이 진행하는 자유로운 형식의 강연부터 음악, 영상 등을 더해 부드러운 분위기로 진행되는 강연 콘서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의 인기는 곧 책 판매량으로 이어졌다. 스튜어스 다이아몬드 교수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독서신문 선정 베스트셀러 3위),『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독서신문 선정 베스트셀러 9위) 은 ‘인기 강의책’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 멘토들의 ‘강의 파워’도 만만치 않았다. 김난도, 김정운 등 청춘들의 멘토로 신뢰받고 있는 저자들이 방송을 타면 이들의 책은 구간이라도 곧 화제의 중심이 됐고, 최재천, 최인철 교수는 전문 분야를 다룬 TV 특강을 통해 관심을 받았다. 또한 혜민 스님, 법륜 스님 등 청춘들을 위한 강연콘서트가 인기를 끌면서 독자들과 더욱 친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대부분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강연이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강연의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엮는 사례도 늘 것으로 보인다. 
 

■ 40대
베이비부머를 뛰어넘어 최다 인구가 포진돼 있는 40대 역시 올 한해 출판 시장의 핫 이슈였다. 앞만 보고 달리다 문득 지난 생을 돌아보게 된 세대의 마음을 치유하는 책부터, 다시 한 번 도약을 응원하는 책까지 40대와 중년층을 겨냥한 다양한 도서들이 출간되기도 했다.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마흔의 서재』,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김정운의 『남자의 물건』(독서신문 선정 베스트셀러 8위) 은 불안하고 갑갑한 대한민국 남자들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유도해 중년층의 큰 관심을 받았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라고는 정치인 욕하기나 연예인 이야기가 전부인 중년 남자들에게 물건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 시작해 보라고 말한다.

그 밖에 신정근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등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탐구하는 도서들이 주로 관심을 얻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등 경쟁에 지친 독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힘을 주는 자기계발서의 인기는 40대  독자들뿐 아니라 모든 연령층에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정리
올해 출판계를 대표하는 키워드인 ‘힐링’과 일맥상통하는 키워드다. 나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쓸데없는 것을 비우고, 주변을 정돈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그런 의미에서 실제 힐링을 시도할 수 있도록 돕는 ‘정리’ 관련 서적이 인기를 모았다. 흔히 정리 서적은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지만, 국내에서도 ‘힐링’ 열풍에 힘입어 새로운 책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정리 컨설턴트 윤선현의 『하루 15분 정리의 힘』은 그동안 우리가 정리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점들을 바로 짚어주고, 쉽고 간단한 정리습관을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안내해 인기를 얻었다. 그 외에도 저자가 15세부터 연구해 터득한 ‘한 번 정리하면 두 번 다시 어지르지 않는 정리법’ 등을 소개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도 올 한해 동안 사랑 받은 정리 관련 도서였다. 

‘정리’ 열풍은 단순히 물질적, 환경적인 것에서 벗어나 정신적 영역까지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단 나의 주변과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그것들을 잘 정리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지친 나를 깨우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택한 사람들이 많았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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