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도 통합 사상가 '최치원'
유·불·도 통합 사상가 '최치원'
  • 황인술
  • 승인 2012.09.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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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생 와이드 철학논술
▲ 황인술 논설위원 © 독서신문
[독서신문] Ⅰ. 생각해보기
 
  최치원(崔致遠. 857~?)은 신라말기 6두품 출신 학자로 동아시아 최고 문장가이자 유․불․선 3교 통합사상을 지녔던 시대의 선구자였다.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등으로 불리었다.

엄격한 골품제 사회인 신라에서 6두품은 능력이 뛰어나도 17관등 가운데 6등위에 해당하는 아찬 이상의 벼슬에는 오를 수 없었다. 골품제에 묶여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던 많은 6두품들은 당나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최치원도 12세(경문왕8년, 868년)가 되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다. 당나라로 떠나는 최치원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10년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고 하지 말아라. 나 역시 아들이 있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가서 열심히 하거라.”
  “네 살 때 글을 배우기 시작해 열 살 때 사서삼경을 읽었다.”라는 기록이 전할 만큼 총명했던 최치원은 유학 후 7년 만인 874년에 18세 나이로 빈공과(賓貢科)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그 뒤 낙양(洛陽)에서 학문에 몰두했고 876년 율수(溧水) 현위로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사직했다. 878년 회남 절도사 고변의 종사관이 되었다. 881년에 지은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으로 중국 전역에 명성을 떨쳤다.
  최치원은 도통순관 승무랑 전중시어사 내공봉에 임명되고 당나라 황제에게 비은어대까지 하사받는 등 재당 신라인으로 최고 지위에 올랐다가 29세 때인 885년 신라로 돌아온다.
  최치원은 신라에서도 문장가로 인정받았으나 골품제 한계와 국정 문란으로 학문과 사상에 대한 뜻을 펴지 못한다. 이에 스스로 지방관이 되기를 청해 태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태수를 지냈다. 당시 신라사회는 귀족들의 권력쟁탈과 농민봉기 등으로 몹시 혼란스러웠으며, 왕권이 흔들렸고 지방호족은 동요했다. 이에 최치원은 894년 2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 10여조를 올렸으나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 뒤 최치원은 관직에서 물러 나 강해(江海)와 산천에 은거해 나머지 생을 보냈다. 그는 유․불․선 삼교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였으며 빼어난 문장을 남겼다. 저서로는 중국에서 지은 글을 모은 『계원필경』과 『고운문집』 30권, 그밖에 많은 비문과 행장 등이 전해진다.

Ⅱ. 생각 확대하기
 
1. 토황소격문으로 당나라에 이름을 알리다
  과거에 합격한 2년 뒤 876년 율수현 현위로 첫 관직을 맡았으나 이듬해 사직하며, 이후 회남 절도사 고변의 추천으로 관역순관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이 무렵 ‘황소의 난’이 일어났다. 소금장수였던 황소가 장안을 점령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자 고변은 이를 토벌하러 나가면서 최치원을 종사관으로 임명했다. “황소가 읽다가 너무 놀라 침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유명한 글 토황소격문이 쓰인 것은 이때 일이다.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이 도(道)이고, 위험한 때 변통할 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때에 맞게 순순히 따라 성공하고, 어리석은 자는 그 때를 거슬러지고 마는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약속하기 어렵지만 모든 일은 마음으로 그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글은
  “햇빛이 널리 비치고 있는데 어떻게 요망스런 기운을 마음대로 펴겠는가? 하늘 그물이 높게 드리워져 반드시 흉악한 적을 벨 것이다. 하물며 너는 천한 몸으로 태어나서 농사꾼으로 일어나 약탈하고 불을 지르는 것을 좋은 꾀라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으니 셀 수 없이 많은 죄를 짓고, 어진 일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땅 속 귀신들도 벌써 남몰래 너를 베기로 의논할 것이다. 지금은 비록 기세를 빌어 혼이 살아 있으나 이제 곧 넋을 빼앗기리라.
  사람의 일 중에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헛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자세히 듣거라.”
라고 달래기도 한다.
 
2. 유 ∙ 불 ∙ 도 통합을 주장한 사상가
  고운은 유 ․ 불 ․ 도 3교 통합사상가였다. 3교 통합사상은 유교를 중심으로 불 ․ 도 사상을 받아들여 유 ․ 불 ․ 도에 대한 공통점을 찾아내는 사상이다. 유 ․ 불 ․ 도 3교를 통합하려 한 것은 신라가 날로 국운이 기울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념을 통일하여 다시 한 번 국가의 재통일을 이룩하고자 한 데 있었다. 이러한 삼교관은 중국 위진시대부터 일어난 삼교일치론과 삼교조화론에 영향을 받아 유교를 바탕으로 불교와 도교 등과 조화를 이루며 통합하고자 하는 사상에서 시작되었다. 삼교사상은 길은 각각 다르나 도착지는 같다라는 사상으로 모든 사상, 종교, 집단이 대립과 갈등 없이 서로 어울려 화목하게 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긴다.     최치원의 삼교통합관도 위에서 언급한 유교를 바탕으로 불교, 도교사상을 적극 수용하여 삼교가 회답하는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이었으며, 이는 그의 사상과 학문 전반에 걸친 핵심 요소로 가치관과 학문관, 인생관 등을 형성한다.
  최치원이 「사산비명(四山碑銘)」과 「난랑비석」에서 신라를 군자국, 태평국이라 기술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고 거룩한 백성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부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현묘지도인 풍류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등 민족사상에 대한 뿌리를 드러내 밝힌 동유(東儒)로 추앙되고 있다.

3. 토황소격문(격황소서) 전문
  광명 2년 7월 8일, 제도 공검도태위 아무개는 황소에게 고한다.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이 도(道)이고, 위험한 때에 변통할 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때에 맞게 순순히 따라 성공하고, 어리석은 자는 그 때를 거슬러지고 마는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약속하기 어렵지만 모든 일은 마음으로 그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황제의 군대를 이끌고 여기에 왔으니 정벌을 할 뿐 싸움은 없을 것이지만, 군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 먼저이고, 베어 죽이는 것은 뒤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천자의 서울을 되찾고 진실로 큰 믿음을 펴려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임금의 명을 받들어 간사한 꾀를 쳐부수려고 한다.
  너는 본래 먼 시골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해 때를 타고 감히 서울을 어지럽히고 기강을 어지럽게 하며, 황제의 자리를 노려 궁궐을 침범해 더럽혔으니, 죄가 하늘에 닿을 만하도다.
  애달프다. 요순시대부터 묘와 호 따위가 복종하지 않았으니, 너희처럼 양심이 없고 충의가 없는 무리가 어느 시대에는 없었겠느냐. 멀게는 유요와 왕돈이 진나라를 엿보았으며, 가까운 시대에는 안록산과 주자가 우리의 황실을 시끄럽게 하였다.
  그들은 모두 막강한 군사 권력을 쥐었거나 중요한 지위에 있어서, 호령만 하면 우레와 번개가 내리치듯 요란하였던 자들이었다. 그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안개와 연기가 자욱하듯 하였지만, 잠깐 못된 짓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씨조차 모조리 없어지고 말았다.
  햇빛이 널리 비치고 있는데 어떻게 요망스런 기운을 마음대로 펴겠는가? 하늘 그물이 높게 드리워져 반드시 흉악한 적을 벨 것이다. 하물며 너는 천한 몸으로 태어나서 농사꾼으로 일어나 약탈하고 불을 지르는 것을 좋은 꾀라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으니 셀 수 없이 많은 죄를 짓고, 어진 일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땅 속 귀신들도 벌써 남몰래 너를 베기로 의논할 것이다. 지금은 비록 기세를 빌어 혼이 살아 있으나 이제 곧 넋을 빼앗기리라.
  사람의 일 중에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헛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자세히 듣거라.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더러운 것을 용납하는 덕이 깊고, 결점을 따지지 않는 은혜가 커서 너에게 군사를 다스릴 권리를 주고 또 지방을 맡겼거늘, 오히려 짐새와 같은 독을 품고 올빼미 같은 흉악한 소리를 거두지 않는구나. 움직이면 사람을 물어뜯는 짓이 개가 제 분수도 모르고 주인에게 짖는 격이 되어, 마지막에는 천자의 덕화에 등을 돌리고, 궁궐을 침략하여 제후들은 험한 길로 달아나게 되고 임금께서는 먼 지방으로 파천하시게 되었다.
  그런데도 너는 일찌감치 덕에 돌아올 줄을 모르고 그저 흉악한 짓만 늘어가니, 이야말로 황제께서 너의 죄를 용서해 준 은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니 죄가 될 뿐이다. 그러니 반드시 머지않아 너는 죽고 말 것인데, 어찌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하물며 주나라 솥을 옮기는 것을 물어볼 것이 아니요, 한나라 궁궐도 네가 머무를 것이 아니니라. 대체 너의 생각은 끝내 어찌하려는 것이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도덕경에서 이르길 ‘회오리바람은 한나절을 가지 못하고, 소낙비는 하루를 갈 수 없다.’고 하였으니, 하늘의 조화도 이렇듯 오래 가지 못하거든 하물며 사람이 하는 일은 오죽하겠느냐.
  또 춘추전에서는 ‘하늘이 아직 나쁜 자를 놓아두는 것은 그를 복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죄악이 짙어지기를 기다려 더 큰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너는 간사함을 감추고 흉악함을 숨겨 죄악이 쌓이고 앙화가 가득하였음에도, 위험한 것을 편안히 여기고 미혹하여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구나. 그거야말로 제비가 막 위에다 집을 짓고 막이 불타오르는데도 제멋대로 날아드는 것이나, 물고기가 솥 속에서 너울거리지만 바로 삶아지는 꼴을 당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우리는 뛰어난 군사적 계략을 모으고 여러 군대를 모았으니, 용맹스런 장수는 구름처럼 많고, 날랜 군사들은 비 쏟아지듯 많이 모여들었다. 높이 휘날리는 깃발은 초나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잠재우고, 빽빽하게 들어찬 함선은 오나라 강의 물결을 막으려고 한다.
  진나라 도 태위는 적을 날쌔게 쳐부수었고, 수나라 양소는 신이라고 불릴 만큼 엄숙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군대는 널리 팔방을 돌아보고 거침없이 만 리를 오갈 수 있으니, 치열한 불꽃으로 기러기 털을 태우고, 태산을 번쩍 들어 새알을 짓누르는 것과 같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에 물의 귀신이 우리를 맞이한다. 서풍이 불어 말라 죽이는 위엄을 도와주고, 새벽이슬은 혼잡한 기운을 씻어 상쾌하게 하니, 파도는 이미 잔잔하고, 길은 잘 뚫리었다.
  석두성에서 뱃줄을 푸니 손권이 뒤에서 호위하고, 현산에 돛을 내리니 진나라 장수였던 두예가 앞장을 선다. 서울을 되찾기는 적어도 한 달이면 되겠지만,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싫어하는 것은 하늘의 깊으신 덕화요, 법을 늦추고 은혜를 펴려는 것은 국가의 좋은 제도이다.
  나라의 도적을 토벌하는 사람은 사사로운 분한 일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어두운 길에 헤매는 이를 깨우쳐 줄 때는 틀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격문을 보내 거꾸로 매달린 듯한 너의 급한 사정을 풀어 주려는 것이니, 미련한 고집을 부리지 말고 일찍이 기회를 보아 너의 앞뒤의 일을 계획하고 과거의 잘못을 고치도록 하라.
  그렇게 하면 땅을 떼어 받아 나라를 맡고 가업을 물려받아 대대로 부를 이어받게 할 것이다. 만일 네가 몸과 머리가 두 동강이 되는 화를 면하고 뛰어난 공명을 얻기 원한다면, 몹쓸 무리들의 말을 믿지 말고 오직 후손에게 영화를 어떻게 전해 줄 것인가 만을 기억하고 주의하라. 이는 아녀자가 아는 체를 할 일이 아니라 대장부의 할 일이다. 그러니만큼, 어떻게 할 것인지 어서 답을 내릴 것이요, 쓸데없는 의심을 두지 마라.
  나는 하늘을 우러러 명령을 받았고, 맑은 물을 두고 믿음을 맹세하였다. 그렇기에, 한번 말이 떨어지면 반드시 메아리처럼 대답할 것이어서 은혜가 더 많을 것이요 원망이 짙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미쳐서 날뛰는 무리 때문에 취한 잠을 깨지 못하고 마치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맞서듯이 어리석은 고집만 부리다가는, 곰을 치고 표범을 잡는 우리 군사가 한번 휘둘러 쳐부술 것이다. 그러면 너의 오합지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칠 것이며, 너의 몸뚱이는 도끼날에 묻은 기름이 되고 뼈다귀는 수레 밑에 가루가 될 것이며 네 처자식은 잡혀 죽고, 네가 거느리던 사람들은 모두 베어지게 될 것이다.
  옛날 동탁의 배를 불태우던 때처럼 네 처지가 어렵게 된다면, 배꼽을 물어뜯는 후회를 하여도 이미 늦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모름지기 나아감과 물러섬을 잘 생각하고, 일의 옳고 그른 것을 알아서 분별하라. 배반하여서 멸망하기보다 귀순하여 영화롭게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다만, 네가 바라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하라.
  대장부의 할 일을 택하여 표범의 무늬처럼 확실하게 변하여 착한 사람이 될 것을 결정할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을 고집하면서 여우처럼 의심만 품지 마라.

Ⅲ. 생각 정리하기
 
1. 최고운전(崔孤雲傳)
  설화를 집대성한 작품으로 황금 돼지 이야기, 괴적 퇴치 설화, 기아 설화, 해미 설화, 용궁 부연 설화, 입산선유설화 등이 혼합되어 있다. 역사적 실존 인물의 허구화를 통해 전쟁 영웅이 아닌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재(文才)를 과시하고 있으며 영웅적 서사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줄거리
  신라 때 어느 고을에 사또가 부임하면 그날 밤 사또 부인이 까닭 없이 없어지는 괴변이 있었다. 사또가 지원자를 널리 모집하니, 어느 날 한 지원자가 나타나 자기가 사또로 부임하여 괴변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하였다. 사또가 아내와 함께 부임하여 명주실을 구해 아내의 치맛자락에다 명주실 한 쪽 끝을 매어 놓았다. 밤이 깊어 괴이한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지고 아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튿날 사또는 단신으로 비수를 품은 채 아내를 찾기 위해 명주실을 따라 뒷산 바위 속 굴에 이른다. 굴속에서 머리를 산발하고 젖가슴을 드러내 놓은 채 검불더미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내를 만난다. 아내는 사또에게 괴물(도적)의 정체는 금빛 털을 가진 돼지이며 지금 사냥을 나가고 없다고 전한다. 마침 도적이 돌아오니 사또가 칼을 빼어 도적을 퇴치한다. 아내를 부축하여 마을로 돌아왔는데 열달만에 아기를 낳았다. 사또는 부인의 몸종을 시켜 아기를 강물에 띄워 보내라 하였으나 차마 그러하지 못하고 길가에 버린다. 정처 없이 지나가던 어느 고을 노파가 데려다 애지중지 길렀는데 뒤에 훌륭한 인물이 된다. 이 아이가 곧 경주최씨 시조요, 신라의 유명한 대문호 최치원 선생이라 한다.

 조선시대 많은 군담소설(軍談小說)이 전쟁을 소재로 하여 민족의 영웅을 창조하고 있음에 반해, 이 작품은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재(文才)를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역력한 점이 큰 특색이다, 모화사상에서 벗어나 중국을 적대시한 작품으로 주체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루는 중국 황제가 들으니 시 읊는 소리가 하도 낭랑하여 알아보게 한즉, 그것은 신라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즉시 신하를 신라로 보내어 알아보게 했더니, 신라에는 재사가 수백 명이나 된다는 보고에 신하를 보내어 겨루게 했으나 모두 다 당하지를 못했다.
  중국 황제는 석함(石函)에 달걀을 넣고 초로 밀봉한 다음 신라로 보내어, 석함 속의 물건을 시로 지어 보내지 않으면 대국(大國)을 가볍게 본 죄로 다스리겠다고 위협하였다.
  이에 최고운이 “團團石物中(단단석물중) 半白半黃金(반백반황금) 夜夜知時鳴(야야지시명) 含情未吐音(함정미토음) - 둥글고 둥근 함 속의 물건은/ 반은 희고 반은 황금인데/ 밤마다 때를 알아 울려고 하건만/ 뜻만 머금을 뿐 소리를 토하지 못하는도다. -”이라 하여, 이미 그 내용물인 달걀이 병아리가 되었음을 작시(作詩)해 보내니 탄복한 황제는 최고운을 해치려고 중국에 초빙한다.
  최치원은 중국으로 가는 길에 용궁에서 환대를 받고, 노구(늙은이)를 만나 그의 지시로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부적 세 개를 얻게 된다. 낙양에 도착한 최치원은 비범한 재주와 부적을 이용하여 황제의 간계를 모두 물리치고 중원 학자들과의 문장 대결에서도 승리를 한다. 중국에서 장원 급제까지 한 그는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적장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마침내 난을 다스리니 황제는 더욱 감탄한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중국인 신하들의 모함으로 외딴 섬에 유배되어 몇 차례의 위기를 도술로 모면한 뒤에 다시 황제가 부르자 용으로 다리를 놓아 낙양에 돌아온다.
  그 후 최치원은 인재를 몰라보는 중국 황제 곁을 떠나 고국 신라로 무사히 돌아온다. 신라의 왕은 그에게 벼슬을 주었으나 끝내 사양하고, 백발이 된 아내를 소녀로 만들어 가족과 함께 가야산(伽倻山)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2. 통섭
  통섭(統攝, onsilience )은 통일(統一, unification)의 열쇠이다. 나는 이  용어를 ‘정합(整合. coherence)’보다 더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통섭은 정합의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하나만을 뜻할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섭이라는 용어는 그 희귀성 때문에 그 의미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용어는 윌리엄 휴얼이 1840년에 『귀납적 과학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설명의 공통 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하여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귀납의 통섭은 하나의 사실 집합으로부터 얻어진 하나의 귀납이 다른 사실 집합으로부터 얻어진 또 하나의 귀납과 부합할 때 일어난다. 이러한 통섭은 귀납이 사용된 그 이론이 과연 참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시험이라고 말했다.(- 출처 :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 외 옳김, 사이언스북스, 2008, 40쪽.) 즉 통섭(統攝,Consilience)은 “지식의 통합”이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여 통합하고자 하는 학문 이론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본질적 질서를 논리적 성찰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두 관점은 그리스시대에는 하나였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점차 분화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편 통섭 이론의 연구 방향의 반대로, 전체를 각각의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는 환원주의도 있다.
 
Ⅳ. 논제 찾아보기
  다음은 안철수 원장의 대선출마 선언문이다. 이 선언문은 “지금 대한민국은 낡은 체제와 미래가치가 충돌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이제 낡은 물줄기를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바꿔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식산업시대에 역행하는 옛날 방식의 의사결정구조, 이와 같은 것들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는 최치원의 삼교통합사상과 통섭은 그 맥이 서로 닿아있다. 삼교통합사상과 통섭이라는 키워드로 SNS사회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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