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윤빛나
  • 승인 2012.07.25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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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 윤빛나 기자]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를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라고 표현했다. 본업인 소설보다는 아무래도 못할 것이라는 겸손함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우롱차를 목표로 하겠다"며 시원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 이어 새로운 에세이집을 내놨다. 아주 사사하고 소소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기록한 52편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데, 모두 주간 <앙앙>의 인기 연재 ‘무라카미 라디오’ 1년 치를 한데 모은 것이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위트 넘치는 글들에 동판화를 곁들여 글에 묘미를 더했다.

저자는 본인만의 ‘에세이 쓰기’ 방법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고,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고,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화제가 한정되면서,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이야기’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평소 즐기는 취미나 음식 등 개인적인 소재부터, 일본의 신문 휴간일이나 프로야구에 대해 쓴 소리를 던지는 등 사회적인 소재까지 뻗어 가는 그의 이야기들은 마치 라디오 DJ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어렵지 않은 멘트들 같다.

그는 「햄버거」에서 우연히 만난 걸인이 “햄버거를 먹고 싶은데 1달러만 주지 않겠습니까?”라며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이미지를 제시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 기분에 이입돼 반사적으로 1달러를 줬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이른바 미트 굿바이」에서는 주위 사람을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무턱대고 신용해서 서로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며 ‘신뢰하지만 신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명언이라고 장담한다.

아주 사소하고 누구나 겪을 법한 일들이지만, 저자는 ‘인간의 상상력은 어느 정도 한정된 영역이 아니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라거나 ‘사람을 신뢰하면서 신용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것 역시 때로는 고독한 것’이라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다.

매우 솔직한 고백으로 독자들의 웃음보를 자극할 만한 에피소드도 여럿 있다. 저자는 「택시 지붕이라든가」에서 기억에 남는 사인회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경험을 꼽았다. 사인을 받으러 온 여자아이들이 “무라카미 씨, 키스해주세요”라고 하는 바람에 저자는 어쩔 수 없이(거짓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뺨에 키스를 했다고 말한다. 출판사 사람은 시간이 없으니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작가로서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하겠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키스를 원한 것이 스페인뿐이었고, 게다가 멋진 아가씨들까지 많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솔직할 수는 없을 터다.

한편 저자는 각 장마다 내용과는 상관없는 단상 한 문장을 말미에 달아 놓는데, 짧고 강렬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문장들이 대부분이어서 책 읽기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수세식 화장실에 ‘대소’ 레버가 있는데, 그걸 ‘강약’으로 할 수는 없는 걸까?”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 봤을 의문 아닌가?

■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권남희 옮김 |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펴냄 | 220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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