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눈물> 합법화된 권력 - 벌거벗은 폭력을 제압하다.
<우상의 눈물> 합법화된 권력 - 벌거벗은 폭력을 제압하다.
  • 조준혁
  • 승인 2007.08.05 23: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상(偶像)이란 숭배와 존경의 대상을 일컫는 말이다. 우상은 사상일 수 도 있고, 특정한 인물일 수 도 있다. 이 우상은 개인이나 혹은 집단에 따라 그 대상이 다르게 나타나며,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번 우상으로 삼게 된 대상에게는 맹목적인 신뢰와 존경이 뒤따르게 된다.
따라서 우상으로 삼은 대상에 대한 비판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는 곧 무소불위의 거대권력인 셈이다.

전상국의 이 작품 역시 그 우상의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상의 눈물이란 제목은 하나의 거대 권력으로 작용하던 우상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우상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맹목적인 대상이었던 우상을 눈물짓게 했던 그 무언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하는 우상보다 더욱더 치밀하고 교활한 존재임을 짐작하게 한다.

소설 속에서 ‘기표’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우상은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무섭다.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이 말은 겉으로 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기표가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이용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반 학생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화자로 등장하는 ‘나’(이유대)에게 린치를 가했던 ‘최기표’는 반을 장악하려는 또 다른 세력에 의해 제압당한다. 그 또 다른 세력이 바로 담임선생님과 ‘임형우’이다. 이들은 반을 이끌어가는 입장으로 반을 자기들 마음대로 주도하려고 하며, 그러한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며,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표로 대표되는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위선적인 권력을 남용한다. 작가가 지적하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공동체의 목표와 이익달성이라는 명분하에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기만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기표의 행동보다는 기표의 행동을 통해 기표일당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담임선생과 형우의 태도에 더 주목해야 한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는 담임선생의 이중적인 면모를 노출시키려는 나(이유대)의 저의를 엿볼  수 있다.

“이제부터 육십육 명이 운명을 함께하는 역사적 출항을 선언한다.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단 한 사람의 낙오자나 이탈자가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아울러 이 시간 분명히 밝혀둘 것은 우리들의 항해를 방해하는 자, 배의 순탄한 진로를 헛갈리게 하는 놈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일 년간 일사불란한 항해를 위해서는 서로 사랑과 신뢰로써 반을 하나로 결속하는 슬기를 보이는 일이다.”
새 담임선생은 과학 교사답지 않게 적절한 비유로써 자기가 맡은 반 아이들에게 뭔가 불어넣으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무사안일 속의 일 년이었던 것이다. <중략>
"선생님, 우리가 탄 이 배의 선장은 누굽니까?“   내가 불쑥 일어나서 말했다.
“이 배의 선장이 누구냐, 그렇게 묻고 있는 사람의 번호와 이름은?”

이 첫 대목에서 담임은 무사안일 중심의 획일적인 교육방향이 나타난다. 동시에 자율이라는 낱말을 ‘담임 자신이 정한 방향대로 순순히 따라온다.’는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따라오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자율이라는 말로 가장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타율에 해당한다.

소설 중반에는 부정행위 사건을 통해 형우가 기표를 무력화시키려는 계락이 드러난다.
2교시 영어시험 시간에 기표에게 컷닝페이퍼를 보내지만, 기표는 부정행위를 거부한다. 그러나 형우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시도한다. 그리고 형우와 결탁한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일어나 자신들이 부정행위를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대목은 사건의 전환을 맞이하는 부분이다. 일전에 형우는 기표일당에게 린치를
의도적으로 당하지만 가해자에 대해 입을 다뭄으로써 학교의 영웅이 된다. 그리고 이 대목에 이르러서 기표의 권위가 무너졌음을 공포하는 것이다.

기표의 권위는 반 아이들의 의리와 우정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대체되고, 기표는 급격하게 권위와 힘을 상실하게 된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기표에게 부정행위를 유도했던 형우의 또 다른 목적이다. 그 목적은 기표가 잦은 결석과 성적부진으로 유급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담임선생과 형우가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할만한 명분을 남겨놓기 위함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무사안일적인 행태와 학생들에게 타율을 강요하는 명분을 기표의 악행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으로 보이나 그 내면에는 위선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더 무서운 악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1980년대의 군사정권을 겨냥하고 있다. 쿠테타를 통해 부정하게 얻은 권력을 유지하기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명분을 제시한다. 그리고 치안확보를 위해 깡패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민주인사들을 탄압하였으며, 언론의 난립을 막겠다는 미명하에 언론통폐합을 추진한다. 결국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는 뒷걸음질 쳤고, 신군부는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치안확보나 정의사회구현, 빨치산 소탕과 같은 명분을 악용하였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러한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설 중반에 나오는 다음의 말은 군사정권이 자행했던 진실을 가장한 합법화된 폭력을 단적으로 찌르고 있다.

“신이 매우 거북하게 생각하는 악마란 바로 네가 말한 놈처럼 착함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런 순수한 악마지. 그러한 순수한 악마만이 신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에 신은 마음속으로 괴로운 거야. 그렇기 때문에 신은 결코 악마를 영원히 추방하지 않아. 항상 곁에 두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일에 그것을 이용할 뿐이야.”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