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학 시인 첫 소설집 『졸망제비꽃』 내
이윤학 시인 첫 소설집 『졸망제비꽃』 내
  • 김경배 기자
  • 승인 2005.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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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같은 아련한 추억이야기

▲ 『졸망제비꽃』의 저자 이윤학     © 독서신문
그와 만난 곳은 지난 1일 오후 홍대앞 한 출판사였다. 시만 쓰던 그가 등단 15년 만에 처음 썼다는 소설, 『졸망제비꽃』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다. 주당(酒黨)시인이라는 명성에 먹칠하지 않고 나온 그의 모습을 보며 상처를 가진 모든 존재를 쓰다듬는 ‘따스한 미학’의 시인이라는 세간의 평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하지만 자리를 옮긴 근처의 조그만 선술집안에서 그와 부딪힌 술잔 속에는 그의 상념이 물들어갔다. 애잔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졸망제비꽃에 얽힌 사연과 『졸망제비꽃』에 등장하는 미친 여인에 대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선입감과 편견을 조용히 설명한다.
 

감동과 애틋함의 서정성
 처음 『졸망제비꽃』을 대하면서 마치 나는 나의 어린 시골 생활이 떠올랐다. 앞집에 살던 미친 여인과 그녀에 대한 적개심. 나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은 그녀임에도 그녀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가까이 오기를 꺼려했던 사실을.

 과거의 상념에 잠겨 책속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처음 『졸망제비꽃』을 읽으면서 그러한 슬픈 기억에 대한 생각보다는 흥미와 재미에 빠져들었다. 그의 글속에서 간간히 튀어나오는 위트와 재치는 피곤함을 가득 안은 퇴근 길, 지하철 안에 내 웃음소리로 번져나갔다.

 하지만 『졸망제비꽃』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꼈다. 무엇일까? 다시 출근길.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책의 재미에만 빠져있던 자신의 모습 때문이었다. 다시 읽기 시작한 『졸망제비꽃』은 이번에 나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재미에 빠져 등한시했던 작가 이윤학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의 미학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자 한자 정독하면서 그가 그린 언어의 연금술을 만끽하였다. 글자 하나하나 마다, 문장 한마디 한마디마다에 스며있는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그의 글의 젖었다.
 
 30촉 전등이 유란이네 집 마루에서 그네를 타는 걸 보면, 나는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형형색색 금줄이 뽑혀 나와 내게로만 몰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전깃불만 보고 있어도 부자가 되었다(본문 41쪽)
똥산씨의 오른손은 아기의 등을 토닥거리고 있었다. 유란이네 집에 켜진 전깃불이 보였다. 내 눈앞에 금빛 실이 선명했다. 똥산씨가 포대기를 토닥거리고 있었다. 배냇저고리에 쌓인 아가에게서 살 냄새 젖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것 같았다.(본문 13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아쉬움. 단순히 언어적 유희에 빠져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듯했다. 다시 읽기 시작한 그의 책에서 나는 마침내 내가 무엇을 빠트렸는지 알게 되었다.

 진한 감동과 애틋함. 잃어버린 것 같은 과거 속에서 애잔한 손길을 내밀며 다시 끄집어내고 싶은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이윤학의 장점인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그 감동을 재미와 언어적 유회로 인해 빠트려 버릴 뻔했던 것이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순수함
 이윤학. 2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시의 세계에서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그가 처음으로 소설집을 냈다. 『졸망제비꽃』. 이름만치 특이한 이 소설은 그의 어린시절 겪었던 이야기를 동화처럼 엮어나간다.

 이윤학의 글에는 진한 감동과 애정과 사랑이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풍자와 위트 해학이 더욱 돋보이는 것 같다. 『졸망제비꽃』에서 그는 똥산씨를 통해 우리사회에 만연된 가식을 통렬하게 비웃고 있다.

 사회는 똥산씨를 미친년이라면서 그에게 온갖 비난의 화살을 퍼붓길 마다 않는다. 모든 잘못은 그의 몫이며 그럼으로 인해 사회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고 그의 희생을 통해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하지만 똥산씨는 이러한 사회의 비난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 해맑은 그의 웃음은 사회를 향한 냉소와 조소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윤학은 똥산씨의 웃음을 사회를 향한 비난과 조소로 돌리지 않는다. 사회가 똥산씨를 비난하는 것처럼 똥산씨가 사회를 비난하면 같은 부류로 치부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일까.

 여하튼 똥산씨의 웃음은 사회를 향한 비난이 아닌 우리가 애초에 잃어버린 순수함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똥산씨에게도 아픔이 있다. 왜 똥산씨는 미쳤을까. 작가는 아기이불과 포대기에 집착하는 똥산씨의 모습에서 그의 아픔이 무엇인지 유추하게 한다.

 소설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인물은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온 소녀 유란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시골로 내려온 유란이는 노다지 발견의 꿈에 눈이 먼 아버지와 쌀쌀맞은 새엄마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그래서 유란이는 과거로의 회상과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꿈꾼다.

 그래서 일까. 유란이는 현실의 아픔에서 벗어나 항상 웃고 있는 똥산씨와 동류의식을 느끼게 된다. 독한 냄새가 풍기는 똥산씨와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는 이가 유란이다. 유란이는 개울에서 똥산씨를 씻어주면서 묻는다.
“아줌마를 보면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아. 서울 살 때는 아빠가 하시는 일이 잘 풀려 가족이 행복했었는데, 이제는 행복한 모습을 잃어 버렸어. 아줌마는 지난날이 불행했을 텐데도, 그리고 앞으로도 불행할 텐데, 어째서 행복한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아.”

 여기에 가난에 찌들대로 찌들어 도무지 꿈을 꿔볼 수조차 없는, 유란이를 짝사랑하는 천덕꾸러기 소년 기덕이와 담배 한 갑만 주면 어떤 일이든 해내는 마을 일꾼 만득이 아저씨 등이 등장하여 순박한 당시의 시대상을 모자이크 식으로 그려나간다.
 
'동화같은 소설 다루고 싶다'
 어디에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르는 1년쯤 살았던 것 같던 미친 여인 똥산씨. 끊임없이 웃어가면서 뛰어다니던 그의 모습, 그 웃음을 들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한다는 작품 속 선생님의 말처럼 웃음이 사라진 현대인의 세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일까 이윤학은 미친 여인 똥산씨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사람의 웃음은 아직도 생각난다면서 똥산씨의 웃음에 빚을 진 것 같다고 말한다. 시는 ‘오감’이라고 말하는 이윤학. 동화 같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그의 말이 기대를 더하게 한다. 

이윤학
충남 홍성 출신
동국대 국문과 졸업
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청소부>,<제비집>이 당선되어 등단
2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 『먼지의 집』『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외 다수
산문집 『거울을 둘러싼 슬픔』 장편동화 『별』외 다수

독서신문 1392호 [200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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