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32> 상진(尙震)의 긍정의 눈
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32> 상진(尙震)의 긍정의 눈
  • 독서신문
  • 승인 2012.04.3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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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성안공 상진 묘역     © 독서신문
 
 
 
[독서신문] "세상을 긍정의 눈으로 보라."

상진(尙震·1493∼1564년)은 조선 명종 때의 정치가이다. 본관은 목천이고, 자는 기부(起夫)다. 호는 송현(松峴)으로, 할아버지는 상효충(尙孝忠)이다. 아버지는 찰방(察訪) 상보(尙甫), 어머니는 연안김씨인 박사(博士) 김휘(金徽)의 딸이다. 상진은 긍정의 화신이다. 세상사를 보는 눈이 여느 사람과 달랐다. 다른 사람이 부정의 눈으로 보는 것도 그는 반대편 긍정의 것을 찾았다. 그가 16년 동안 정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상진은 우의정 2년, 좌의정 7년, 영의정 7년을 거푸 지냈다. 영의정 시절 많은 나이를 이유로 몇 차례 사직을 청했으나 71세가 되어서야 허락됐다. 27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46년 간 주요 직책을 담당한 그는 도량이 넓고, 청렴하고 온후했다. 특히 남의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문과 합격후 검열 벼슬 시절, 고향 부여를 찾아갈 때였다. 농군이 소 두 마리를 다루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느 소가 더 좋은가"라고 물었다. 농군은 귓속말을 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마음은 같습니다. 높게 평가되는 소는 좋아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소는 화가 날 것입니다. 어린 소가 더 낫습니다." 상진은 곧바로 용서를 구했다. "그대가 숨어 사는 군자라오. 삼가 가르침을 따르겠소."

크게 느낀 상진은 이후 남의 단점 대신 긍정적인 면을 찾았다. 『대동기문』에 그의 일화가 소개돼 있다. 하루는 다리를 저는 사람이 지나갔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절름바리"라고 했다. 그러나 상진은 "저 사람의 짧은 다리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이네. 다만 한쪽 다리가 길 뿐이야"라고 했다.

긍정의 눈은 시에서도 나타난다. 판서 오상이 '옛날의 아름다운 풍습이 쓸어버린 듯 없어졌도다. 다만 봄바람이 부는 듯한 술잔 속에서 볼 수 있구나'라고 시를 읊었다. 이를 본 상진은 "어쩌면 그렇게도 야박하신가"라고 한 뒤 '옛날의 아름다운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봄바람이 부는 듯한 술잔 속에서 볼 수 있구나'라고 글을 바꾸었다.

상진은 도둑에게도 처벌이 아닌 회계할 시간을 주었다. 그의 집에서 도둑이 잡혔다. 그는 "오죽하면 남의 물건을 훔치려 했겠는가. 앞으로 어려우면 나를 찾아오라. 대신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며 도둑에게 물건을 쥐어 보냈다.

상진이 홍문관수찬 시절이었다. 퇴근 길에 순금술잔 두 개가 쌓인 붉은 보자기를 주었다. 그는 붉은 보자기 주인을 찾는 방을 붙였다. 다음날 궁중 수랏간 별감이 찾아와 엎드렸다. "소인이 자식 혼사 때문에 주방금잔을 빌어 냈다가 잃어버렸습니다." 상진은 이를 둘만의 비밀로 해 별감의 목숨을 살렸다.

청렴한 그는 오두막살이를 했다. 한 번은 정적인 윤원형이 염탐꾼을 그의 집에 보내 먹을거리가 풍족한가를 살피게 했다. 마침 하인이 맷돌에 통밀을 갈고 있었다. 염탐꾼은 저녁거리를 슬쩍 떠보았다. 하인은 "저녁을 죽으로 때운다"고 했다.

재산의 사회환원은 그의 증조부 때에 이루어졌다. 부여 임천의 큰 부자였던 증조부 상영부(尙英孚)는 이자놀이를 했다. 그러나 말년에 차용증서를 모두 불태웠다. 주위의 칭찬에 그는 "좋은 일을 했기에 훌륭한 후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상진이 벼슬이 높아지자 주위에서는 증조부의 선행을 이야기 했다.

모범적인 관료 생활을 한 상진은 어린 시절에는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증조부가 많은 재산을 이뤘지만 어머니를 다섯 살때, 아버지를 여덟 살 때 여의었다. 그래서 큰 누나집에서 자랐다.

소년기에 말타기와 활쏘기에 심취한 그는 15세가 되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웃사람들로부터 "에미, 애비 없는 아이여서 그렇다"는 멸시를 받자 분발을 한 것이다.

그는 꾸준히 읽은 책에 나온 현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천했다. 항상 조심하고 긍정적으로 살았다. 베품과 긍정, 절제의 생활을 산 상진은 자제들에게 바른 인성을 교육했다. 또 공부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음도 훈육했다. 과거합격 여부에 관계없이 큰 뜻으로 살라는 것이다.

상진이 아들들에게 한 말이 『연려실기술』에 실려있다.

'세상에는 과거에 낙제하고 상심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어찌 대장부가 시험관 한 사람의 눈으로 결정한 것을 두고 걱정하고 즐거워하겠는가. 이런 연연함의 폐단이 차츰 차츰 벼슬도 잃을까 근심하는데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릇이 이 정도에 머물면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 이상주(『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공부 열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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