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vs 영화] 영상화된 노시인의 욕망, '은교' ②
[소설 vs 영화] 영상화된 노시인의 욕망, '은교' ②
  • 윤빛나
  • 승인 2012.04.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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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분장한 박해일·신선한 김고은 옷 입은 <은교>는?
▲ 영화 <은교> 정지우 감독(윗줄)과 배우 박해일, 소설 『은교』 박범신 작가, 배우 김무열(아랫줄 왼쪽부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독서신문 = 윤빛나 기자] 소설 『은교』의 인물 심리 묘사는 집요하고 세밀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래서 이적요가 서지우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안타까워 한다는 사실도 더 명확히 드러난다. 특히 스승을 아들보다 더 극진히 모시고, 그의 능력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갖출 수 없는 문학적 재능 탓에 찌질한 열등감을 켜켜이 쌓아 가는 서지우의 심리도 그렇다.
 
서지우가 훔치는 원고도 영화에서는『은교』지만, 소설에서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그 작품이 게재되는 문학 잡지도 유명 잡지가 아닌 신생 잡지고, 서지우는 『은교』를 도둑질한 사실이 발각되자 아름다워서 그랬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문학상을 타고 나자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던 '고귀하신 평론가'들이 설설 긴다는 표현에서는 문학계의 단편까지 묻어난다.
 
 
 
▲ 영화 <은교>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한편 원작에서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영화에서는 자신의 일과를 재잘재잘 늘어놓는 은교는 항상 때묻은 베이지색 컨버스를 신는다. 은교는 때밀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엄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난하다. 때로는 맞기도 한다.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사랑이 고팠던 은교는 자신을 아름답게 그려준 사람으로 '되어 있는' 서지우와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허상 같았던 은교는 영화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이적요의 기록은 영화 속에서 도둑질한 원고로 이상문학상을 받는 서지우를 위한 축사에 등장한다. 강단 위에서, 듣는 이를 서지우로 명확히 겨낭한 듯한 이 대사 속에서 이적요의 분노는 더 촉발된다.
 
 
▲ 영화 <은교>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설도 영화도,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젊음에 대한 욕망을 말한다. 어떤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고, 그리고 떠나가버린 젊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다고. 여고생 '은교'라는 존재는 얼핏 성적 판타지를 뒤집어쓴 어린 여성이나 세 사람의 치정관계를 연상케 하지만, 그보다는 위대한 노시인이 진짜 자신을 보게 하는 존재이자 생애의 마지막 즈음에 빛을 밝히는 '싱그러움'이다. '젊음'이 형상화된 인물이다. 
 
그리고 이적요와 서지우의 서로를 향한 애정과 첨예한 갈등은 영화에선 많이 흐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흥미로운 축이다. 원작에서는 이 부분에 힘이 실려 복잡미묘한 두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또한 영화에는 좀더 능동적으로 변한 은교가 보여주는 한 어린 영혼의 성장담이 추가되면서 소설과 영화의 명확한 차별점이 생성됐다. 이처럼 소설 『은교』와 영화 <은교>는 교집합이 많을 것 같으면서도 세세히 들여다보면 많지 않은, 독특한 특성을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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