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31> 허목의 독서 단계론
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31> 허목의 독서 단계론
  • 독서신문
  • 승인 2012.04.0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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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수 허목     © 독서신문
[독서신문] 허목(許穆·1595∼1682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문보, 호는 미수다. 저서로는 『동사』, 『방국왕조례』 등이 있다.

조선시대 관리등용법은 과거, 음서, 추천제도가 있었다. 유일(遺逸)이 추천제도다. 학식과 인품을 갖춘 경우 과거시험 없이 발탁했다. 허목은 과거가 아닌 추천을 통해 관리생활을 했는데 흔치 않게 우의정에까지 올랐다.

조선은 문치사회, 과거시험의 사회였다. 따라서 음서나 추천을 통한 임용으로는 고위직에 올라가는 게 극히 어려웠다.

실제로 문과 급제자들은 절반 가량이 당상관에 올라 주요 보직을 차지했으나 특채는 80%가 당하관에 머물렀다. 특히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그들 사이의 호칭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교모임에서 문과 합격자는 과거 합격 선배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고위직에 올랐어도 선생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큰사람이라는 뜻의 ‘대인’으로 호칭했다.

따라서 문음이나 추천으로 등용된 사람은 항상 열등감이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황희 정승의 아들인 황수신도 영의정에 올랐으나 선생이라는 호칭을 받지 못해 괴로워 하기도 했다. 허목은 과거를 포기했다. 그 역시 관료사회에서는 대인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의 학문의 깊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서체로는 동양 제1인자로 평가받을 만큼 학식이 풍부했다. 아홉 살에 독서를 시작한 허목은 정언옹, 문위, 정구 등 당시 석학들을 스승으로 모셨고, 정치적으로는 남인을 주도했다. 글씨와 문장, 그림에 고루 능했다.
그의 공부자세는 숙종의 명령으로 간행한 『미수기언』에서 엿볼 수 있다. 제자들의 물음에 대한 답인 「답학자(答學者)」라는 글이 실려있다. 여기에서 허목은 독서에서의 조급한 성취심리를 경계하고 있다. 또 의문이 나면 반드시 묻는 것은 공부 자세임을 말하고 있다.
 
독서에서 가장 크게 걱정할 일은 단계와 순서를 뛰어넘어 빨리 이루려는 마음이다. 이는 개인적인 욕심이 독서의 본뜻을 가리기에 진정한 이해에 다다를 수 없다. 개인적인 욕심을 앞세우고 독서의 목표를 달성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욕심으로 마음이 집중되지 않고 산란할 때 경이로움의 마음이 아니면 무엇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겠는가. 경이로움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에 집중하면 근심과 걱정이 저절로 사라진다. 책을 보는 이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이치를 구한 다음에 앎과 실천이 함께 나아간다. 사람의 길인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과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는 것은 근본이 서지 않은 것이다. 이 때는 기본이 탄탄하지 않기에 갑자기 얻었다가 갑자기 잃게 된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만 넘쳐흘러 아무 이익이 없다. 또 단계나 순서를 뛰어넘어 높은 데를 엿보아서는 안 된다. 샘이 졸졸 흐르고 불이 서서히 타오르는 게 자연의 이치이듯 공부도 마찬가지다.
 
그는 관료사회에 형성된 ‘선생’ 호칭의 선민의식을 은근히 비판했다고 할 수도 있다. 책을 보는 사람의 이치는 단계가 있는 데, 깊이에 앞서 형식에 의존하는 것은 바른 독서자세로 보지 않은 것이다.

허목은 영의정 이원익의 손주사위다. 그러나 서른 두 살 때 인조의 생모 계운궁 구씨의 복상 문제가 발단이 돼 임금으로부터 과거시험 응시 금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뒤에 징계가 풀렸으나 벼슬에 뜻을 끊고 광주의 자봉산으로 들어가 독서에 전념하였다. 56세에 처음 공릉참봉으로 관계에 나선 그는 서인인 송시열과 대립각을 세웠다.

 / 이상주(『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 『공부 열광』 『유머가 통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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