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28> 기대승의 학습 반성문
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28> 기대승의 학습 반성문
  • 독서신문
  • 승인 2012.02.2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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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봉 기대승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광주 월봉서원과 『고봉집』 표지     © 독서신문
 
 
[독서신문] 기대승(奇大升·1527∼1572년)은 명종-선조 때의 문신이다.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이다. 지은 책으로는 『고봉집』이 있다. 퇴계 이황(李滉)과 12년간 편지를 교환하면서 유교 사상을 논한 학자로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 등을 지냈다. 직선적인 성격에 학문에 대한 의욕이 유달리 강했던 그는 임금에게도 공부할 것을 직언한다.

그는 1564년 경연에 참석해 명종에게 말한다. “나라의 안위는 재상에 달려있고, 군주의 덕이 이루어짐은 경연에 달려있다. 경연의 중요성은 재상과 비견된다.”  경연은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다. 강의는 주로 홍문관원이 맡았는데, 교재는 4서 5경과 역사 및 성리학 서적이다. 아침에 한 번 공부가 원칙이었지만 낮과 밤 등 하루 세 차례도 흔했다.
 
임금에게 독서에 소홀함이 없을 것을 진언한 그는 책읽기에 대해 다음처럼 말했다. “독서는 옛사람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다. 반복하여 읽어 마음을 깊이 붙여야 한다. 어느 순간 마음에 얻는 바가 있으면 스스로 알게 된다. 그러니 그 뜻을 언어에만 의지하지 말라.” 읽고 읽어 자구에만 얽매이지 말고 행간을 알라는 것이다.

‘공부하는 이는 읽고 듣고 본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이같은 내용의 글을 책상에 부착하고 아침 저녁으로 읽었다. 부모의 가르침이라는 「과정기훈(過庭記訓)」에서 기대승은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 또 반드시 외워야 하고 슬쩍 넘어가서는 안된다. 읽고 생각한 뒤 글을 짓는 게 순서다. 이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대학자 기대승은 항상 자신을 반성했다. 그 반성을 통해 더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그는 열 아홉 살에 『자경설(自敬說)』을 짓는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반성문이다.
 
나는 여섯 살에 아버지로부터 글을 익혔으나 1년 뒤 어머니를 여의면서 책을 뚝 끊었다. 아버지도 충격에 글을 가르치시지 않았다. 2년 후 다시 글씨도 배웠고, 전염병이 돌아 산으로 피난해 책을 읽었다. 산에서 내려온 뒤 아버지는 서울로 가시고, 나는 서당을 찾아갔다. 『맹자』, 『중용』을 비롯하여 옛 시 등을 두루 읽고 외우고 책을 썼다. 이 때가 열 한 살이었다.

다음 해에는 나를 극진히 보살펴주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팔순이 되어서도 나를 쓰다듬으며 “너는 큰 인물이 될 것이다. 열심히 글을 읽으라”고 격려하셨다. 나는 슬픔을 잊고자 책을 수백 번을 거듭 읽었다. 이 무렵 선배들이 생원진사 시험을 보기 위해 서당에서 합숙을 했다. 나도 공부에 더 매진했으나 열 네살부터 18개월 동안은 마음이 해이해졌다. 마음을 잡으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엄하게 훈계하지 않으셨다.


이 때문에 날이 갈수록 학문은 더욱 떨어졌다. 얼마 후 과거가 있어 공부를 시작했으나 글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수년 동안의 게으르고 방탕함이 습관이 돼 학업이 늘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프기 그지 없다. 그래서 지나간 일들을 적어 한편으로는 경계를 하고 한편으로는 권면을 하고자 한다.
 
 / 이상주(『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 『공부 열광』 『유머가 통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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