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27> 장유의 책벌레 론
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27> 장유의 책벌레 론
  • 독서신문
  • 승인 2012.02.06 11: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장유의 영정(왼쪽)과 『계곡만필』     © 독서신문
 
 
[독서신문] "남들이 소라고 부른든, 말이라고 부르든 책만 읽는 벌레가 되련다."

장유(張維·1587년∼1638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이다. 지은 책으로는 『계곡만필』, 『계곡집』 등이 있다. 아버지는 판서 장운익, 장인은 우의정 김상용, 딸은 효종비 인선왕후다. 권세가의 집에서 태어난 장유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그 중의 하나는 담배, 또 하나는 술, 그리고  정조에 관한 것이다.

효종의 장인인 장유는 조선의 내로라 하는 애연가였다. 그는 담배 예찬론자였다. "술 취한 사람은 술이 깨고, 배 고픈 사람은 배 부르게 된다"고 말할 정도다. 술에 관해서도 재미있는 말을 남겼다. 술에 약한 그는 술꾼들의 비웃음을 샀다고 한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렸고, 이를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고 했다. 그런데 역시 "술 마시고 주정하는 사람은 우습다"는 결론을 내린다.

또 며느리에 대해 이혼 청구를 한다. 며느리가 청나라에 끌려가 실절했다는 이유였다. 명분에만 얽매인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에게 예학은 생명과도 같았다. 예학의 거두인 김장생의 문하생으로 18세에 사마시, 22세에 문과에 급제한 장유는 호당(湖堂)에서 독서했다. 대사헌 대제학을 역임했고, 병자호란 때는 강화론을 주장했다. 천문 지리 의술 병서 등 각종 학문에 능하고, 서화와 문장에 뛰어나 '조선문학의 사대가(四大家)'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는 당시 지배층이 신봉하던 주자학의 편협한 풍토에 대해 "학문의 실익이 없으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마음을 바로 알고 행동을 통하여 진실을 인식하려는 사고가 강했다.

독서에도 이런 경향이 보인다. 그는 평생학습 이력에 "여덟, 아홉 살에 아버지로부터 『시경』과 『서경』을 배운 뒤 열 살 무렵에는 한 자도 틀리지 않았다. 열 여덟살에 한성시에 장원을 하고, 스물 두살에 문과에 합격했다"라고 밝힌 천재다. 그러나 "책읽기에는 지각생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계곡만필』을 읽어보자.
 
예로부터 문장가를 보면, 소년 시절에 재능을 일찍 과시한 경우도 많지만, 늦은 나이에 공부하여 이룬 사람들도 눈에 띈다. 진나라의 저술가인 황보밀은 나이가 스물이 되도록 공부에 관심이 없다가 뒤늦게 글을 시작해 여러 학문에 두루 능통하여 현안선생으로 불리었다. 당나라 문장가인 진자앙은 부유한 집의 아들이지만 십칠팔 세 때까지 글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뜻을 세워 열심히 공부한 끝에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당송팔대가로 추앙받는 소순은 성인이 되어서도 글을 알지 못했다. 그는 27세부터 책을 보기 시작했고, 5, 6년 뒤 명성을 얻었다. 이로써 보면 공부는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지, 일찍 시작하고 늦게 시작하는 것은 논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장유는 집중과 정성에 대해서는 구양수와 백거이를 예로 들어 "옛사람은 문장을 지을 때 반드시 정성을 다하였다"고 했다.

"송나라의 구양수가 자기가 지은 글을 스스로 정리한 게 『거사집』이다. 구양수는 한 편의 글을 두고 몇십 번이나 읽은 뒤, 다시 며칠 동안 그 글을 문집 속에 넣을 지를 고민했다. 유려한 시를 쓰는 당나라 백거이는 글을 다듬느라 고심하는 것과는 관계 없을 듯하다. 그러나 원본은 글을 뜯어고친 흔적이 낭자했다. 결코 허술하게 하지 않았던 옛사람의 글에 대한 태도를 깊이 새겨야 한다."

그의 독서열정은 『계곡선생 문집』에 실린 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반딧불도 보이지 않고, 눈도 도통 오지 않네.
겨울 세달 공부 계획 갑작스럽게  어긋나네.
긴긴 겨울밤 한가로이 누더기만 보듬고 있네.
이웃에 등잔불 기름 빌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창피하구나.

 
장유는 『독서이십운(讀書二十韻)』에서 남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책을 읽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등불이 없으면 불 빛이 있는 이웃집 벽을 뚫고라도 공부해야 하고, 품팔이를 하면서도 허리춤에는 책을 놓지 않을 뜻을 말했다. 또 학자라는 자신의 반평생의 명성은 정말 잘못된 것인데 여러 생을 거쳐 형성된 습관의 벽이 고쳐지지 않음도 한탄했다. 그는 결론으로 이것 저것 다 떠나서 책 속의 좋은 말들에 빠지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클라이막스는 대학자의 체면을 다 던진 "남들이 소라고 부르든, 말이라고 부르든 신경 쓰지 않고 죽으나 사나 책벌레가 되련다"이다.
 
/ 이상주(『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공부 열광』『유머가 통한다』 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