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26> 허균의 지상낙원론
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26> 허균의 지상낙원론
  • 독서신문
  • 승인 2011.12.2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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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산(蛟山) 허균의 『한정록』(왼쪽)과 1983년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있는 교산시비(蛟山詩碑)     ©독서신문
 
 
[독서신문] “만 권의 책이 있는 곳이 낙원이다.”

허균(許筠·1569∼1618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이다. 지은 책으로는 시평론집인 『학산초담(鶴山樵談)』 등이 있다.

5세 때 글을 배웠고, 9세 때 시를 지을 줄 알았다. 학문을 유성룡(柳成龍)에게서 익히고, 시는 서자 출신인 이달(李達)에게 배웠다. 이달은 허균의 인생관과 문학관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홍길동전』을 지은 것은 스승의 영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로 잘 표현되는 서자의 아픔. 허균은 이 작품을 통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상 이유로 시대를 원망하며 살아야 하는 서자의 차별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허균이 명문 가문의 적자 출신이었음에도 이런 개혁적인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독서의 힘이 크다.

자유분방하고 개혁적인 그는 “글읽기도 술이 있으면 더 좋다”는 한량다운 발언을 한다. 허균은 『한정록(閑情錄)』에서 ‘여름날 사흘 만에 술을 익히는 법’을 적었다. 이어 “태양이 져 서늘해진 저녁 무렵에 이 술 석 잔을 마시면 몽롱해진다. 책읽기로 더위를 이기는 게 아주 좋은 방법인데 술까지 있으니 더 무엇을 표현하랴”라고 했다. 여름사냥을 독서와 술로 한다는 의미다.

그는 최고의 수사로 독서를 찬미한다. “오로지 독서는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고 해로움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자연만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고 해로움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바람과 달, 꽃과 대나무만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고 해로움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단정하게 앉아 말없이 고요하게 지내는 생활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고 해로움을 주지 않는다. 이와 같은 네 가지를 지극한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또 ‘독서를 할 수 있는 곳이 낙원’이라고 했다. 옥에 갇히고 이리저리 내몰리는 상황이라도, 방에 책 만 권을 비치하고 읽는다면 낙원이라는 것이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은 허균은 독서습관을 들일 여건이 매우 좋았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아버지와 예조판서를 역임한 외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책을 물려받았다. 또 책욕심이 많았던 그는 명나라에서 많은 책을 구해왔다. 그에게는 책이 약 4,000권에 이르렀다.

정통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유학을 기본에 두었으나 다양한 책을 통해 불교와 도교의 사상을 접하고 심취한다. 그의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열린 사고는 이같은 다양한 독서 덕분이었다.

그의 독서는 3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책을 읽고, 그중에서 좋은 문장을 메모한다, 다음에 메모된 것을 내용별로 분류해 책을 만들었다. 이렇게 엮어진 게 생활교양서인 『한정록』이다.

한정록에서는 독서에 관한 내용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학문을 하는 데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뜻이 정해지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다.”   - 『근사록(近思錄)』

“학문을 하는 도(道)는 궁리(窮理)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궁리의 요체는 독서(讀書)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 『주자전서(朱子全書)』

“공부는 모르는 데서 점점 아는 것이 생기고, 잘 아는 데서 점점 또 모르는 것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 『공여일록』

 / 이상주(『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 『공부 열광』 『유머가 통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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