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와 홀아비 차이
과부와 홀아비 차이
  • 김혜식
  • 승인 2007.07.20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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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E.위스너-행크스의 『젠더의 역사』를 읽고
▲ 김혜식(수필가)     © 독서신문
위기에 처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인지상정 아닌가. 그런 절박함마저 거절한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로 어느 여인의 급박한 상황을 이웃으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일이 있다.
 
 어린 날 집안이 가난하여 서울 중량교 뚝방 판자촌에 살 때 일이다. 어느 겨울 날 새벽녘,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 소리가 찬 공기를 뒤흔들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깬 어머니는 속옷 바람으로 황급히 옆집을 찾았다. 나도 어머니를 따라 얼결에 그 집엘 갔었다. 그 때 임산부의 몸에서 아기가 거꾸로 나오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그녀가 아무리 젖 먹던 힘을 다하여 용을 써도 아기의 앙증맞은 두발만 달랑 나온 채  더 이상 아기의 몸이 산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당황하여 이웃의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 혼자 가까스로 그녀를 손수레에 싣고 급히 근처 병원을 찾았다.

 과부댁인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생계를 위해 노점에서 계란을 팔았다. 그녀 이웃집도 홀아비 신세였다. 그이도 그녀 곁에서 노점상을 벌였다. 같은 처지면서도 장사꾼으로서의 이해관계 때문인지 그 둘은 서로 앙숙이었다. 그 전날도 그녀는 옆집 홀아비와 노점 자리를 놓고 시비가 크게 붙었었다. 그녀가 홀아비의 자리에서 먼저 물건을 판 게 싸움의 발단이 된 것이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홀아비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기까지 이르렀다. 허나 아무도 그 싸움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사람들은 남편 없이 임신한 부정한 여자라고 과부댁을 뒤에서 흉보기에 바빴다. 그러나 평소에 홀아비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마을 사람들은 내 일처럼 달려가 힘을 모으곤 하였다. 몇 달 사이로 홀아비의 여자가 몇몇이 바뀌었어도 어느 누구하나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하다못해 어느 아주머니는 그 홀아비가 여자를 홀리는 남다른 수완이 있다고 추켜세우기 까지 했다. 나는 어린 맘에도 남들의 입질에 오르내리는 옆집 아주머니가 왠지 불쌍했다.
 한편으론 왜 홀아비는 여자를 수없이 사귀어도 허물이 안 되며 과부는 아기를 임신하면 흉이 될까 어린 나는 그 점이 쉽사리 이해가 안됐다.

 뼈저린 가난이 한으로 느껴지던 그 시절, 무엇보다 그녀가 견디기 힘든 것은 여자라는 성 차별이었을 것이다. 옆집 홀아비와 달리 과부라는 이유로 일일이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다. 남편 없이 아일 임신한 죄의 대가로 평생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했던 불쌍한 여인. 지난날 그녀가 여자이기에 받아야 했던 사회적 폄하와 차별의 의미를 비로소 내가 어른이 돼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과부댁의 일이 떠오를 때마다 그동안 여성은 어떻게 차별받아왔을까? 하는 의문마저 일곤 하였다..

 요즘 이런 나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줄 책을 다행히 서점에서 발견하였다. 『젠더의 역사』라는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의 저자 메리 e. 위스너-행크스가 『젠더의 역사』에서 밝혔듯이 기본적으로 역사가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체가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였다.
 
‘젠더(gender)’는 성(性)과 관련해 최근에는 생물학적인 ‘섹스(sex)’ 보다는 사회적인 의미의 용어로 자주 쓰이고 있다. 필자는 이 책에서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정에서 ‘여성다워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으며 그것에 반하는 사고방식과 행동을 제재 당할 만큼 사회구조적으로 차별 받아왔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가장 큰 주범은 종교라고 했다. 하긴 종교는 여성들의 순결, 순종을 강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영향에 의해서일까. 지난날 여성들은 원초적 욕망을 가까스로 숨긴 채 오로지 순결을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야했다. 이는 무엇보다 우리 의식 속에 자리한 유교사상 때문일 것이다.  그 유교 사상이 어쩜 그동안 여성들의 권리를 되찾는데 크나큰 걸림돌이 되였는지도 모른다. 그 과부댁도 그것에 물든 우리네 의식에 의한 피해자 중 한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나름대로 하며 나는 책장을 덮었다.

 지금쯤 중년이 됐을 그 과부댁의 아들은 어머니의 피눈물 나는 지난 삶의 아픔을 헤아리고 있을까. 그도 남성이 아닌가. 어머니의 뼈아픈 과거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스스로 양성평등을 앞당기는 일에 팔을 걷어 주었음 하는 바람을 이 기회에 감히 가져본다.
 
읽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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